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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Apr 18. 2024

딸의 자존심은 곧 엄마인 나의 자존심(상)

 요즘은 아들보다 딸이다.

아들이 귀하다는 말은 정말 옛말이다.

주변에 누군가 임신했다면 딸인지 아들인지 묻는데 딸이라고 대답하면 매우 긍정적인데 아들이라고 대답하면 짠한 눈길부터 준다.(물론 아들도 하늘이 주신 복덩이가 맞다.) 아들은 아무래도 에너지가 넘치고 어디로 튈지 모르게 빠르고 감당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 아닐까?


 아무튼 나에겐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남편과 얘기하기를 우리에겐 딸이 맞는 것 같다. 딸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이런 얘기들을 자주 한다.


 그런데 이런 딸이 희한하게 어릴 때부터 속을 많이 썩였다. 참.. 아들 같은 딸이라고 해야 하나?


 일단 뱃속부터 남다르긴 했다. 태동이 어찌나 활발한지! 아니 활발한 것까지는 괜찮은데 너무 발길질을 많이 해서? 발버둥을 많이 쳐서? 임신 중에 나도 모르게 ‘으억!’ 소리가 자주 나왔다. 진짜 아팠다. 도대체 뭘로 찌르는 건지 아랫배 끝이 찔리기도 하고 참 별난 아이였다.

 그런데 막상 태어나보니 내 딸은 정말 발길질을 잘하는 아이였다. 침대에서 뒹굴 때면 하나의 활어와 같았다. 친정엄마는 그래서 태동이 남달랐구나. 난 네 엄마가 엄살 부리는 줄 알았단다.라고 하셨다 하하.


 아기가 태어나면 눈 맞춤, 옹알이, 뒤집기, 되집기, 앉기, 배밀이, 기어가기, 서기, 걷기 등의 성장과정을 거친다. 우리 딸아이는 이 과정은 너무 정상적으로 잘 거쳤는데 발화가 잘 터지지 않았다. 돌이 지날 무렵쯤까지 엄마 소리는 무의식적으로 잘 내뱉길래 큰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무언가 상호작용이 약한 모습을 보이고 포인팅도 약했다. 다행히 눈 맞춤은 강해서 좀 더 지켜보자라고 했지만 결국 언어지연이 맞았다.


 어린이집을 돌 즈음에 좀 일찍 갔는데 그게 문제였는가 싶다.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어린이집 담임교사에 의하면 또래에게 관심이 적어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또래에 비해 전반적으로 조금씩 느린 것 같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내 아이가 느려?


 많은 엄마들은 자녀에게 동일시된다. 그래서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으면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것 같다. 내 딸의 자존심은 곧 엄마인 나의 자존심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지기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난 태생부터 남들보다 빠른 애였다. 하다 못해 달리기도 반에서 가장 빨라서 초중고 12년 동안 반대표 계주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럴 리 없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현실을 부정하다가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엄마가 음악치료사인데 엄마가 발달센터 근무자인데 내 아이가 느려?

그때부터 시작된 아이의 상호작용과 언어발달을 위한 노력이 시작되었다.


 발달센터를 처음 방문했을 때는 두 돌 무렵이었고 그때 센터장님의 진단은 이렇다.


“소근육, 지능, 상호작용 다 괜찮은데 대강 보면 모르지만 면밀히 잠시 보니 의사소통 기술이 부족한 게 보이네요.  그래서 아마 언어가 안 터졌을 거예요.

아마 인지영역도 떨어질 건데?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부족한 부분이 드러났을 거예요. “


 아 그거구나~ 그동안 이해되지 않았던 영역이 보였다.

우리 아이는 상호작용의 디테일이 부족하고 인지가 조금 약한 아이였다. 눈치가 떨어진다고 해야 하나?

반응이 늦다고 해야 하나? 사회적 반사반응이 늦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할 거 같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큰 문제는 아닌데 (장애가 아니란 뜻인 거 같다) 이 부분이 쫙 올라와주면 인지도 올라가고 언어도 트일 거 같아요. 예후가 나쁘지 않고 두 돌 때 왔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예를 들어 사탕을 준다는 선생님이 손을 꽉 쥐고 놓지 않을 때 어? 왜 안주지? 하고 봐야 하는데 그런 게 없이 그냥 사탕을 쥐고 있기만 하거나 포기하는 아이. 그래 그거였다.


 엄마인 나는 그 후로 엄청난 수다쟁이가 되었고 아이의 모든 행동을 말로 표현하여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게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정말 모든 행동에 다 코멘트를 달아서 말해줬다. 간단한 문장으로 주어와 서술어 한 단어씩만 붙여서 말해줬다. 아이의 상호작용에 디테일을 채워주기 위해 모든 걸 나노단위로 쪼개서 말해줬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배꼽 빠지도록 웃겨주는 개그맨이 되기도 했다. 정말 정신줄 놓고 옛날 코미디언 심형래식의 몸개그를 다 보여줬다. 긍정적인 정서를 무조건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나를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집안에 있는 모든 놀잇감들을 총동원에서 한 시간 이상씩 상호놀이를 시도했다. 아이가 집는 건 전부 다 놀이가 되었고 의미가 되어 이야기가 펼쳐지도록 모든 행동에 즉각 반응해 줬다. 말 그대로 밀착케어였다.


 엄마의 노력을 아는지 아이는 그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커갔고 치료 3개월 만에 “엄마”소리를 해줬다. 의미발화였다. 엄마를 찾으며 우는 아이. 그래 그거 의미발화 맞다. 아이가 없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 이후로 보여준 폭풍 성장들 중에는 최고 엄지 척하기, OO이 몇 살? 손가락 세 개로 어설프지만 표현하기, 포인팅 ok, 율동모방 ok 심지어 외우기, 모방발화 한 음절씩 가능, 아빠 발화, 안녕 인사하기, 놀이 유지 지속, 코(고) 입(이), 숫자 모방, 노래 나오면 조금씩 따라 하기, 이거? 이거! 이거~남발하기, 무(물), 도리도리 (싫다는 표현), 엑스 (싫다는 표현), 아냐, 응, 손들고 네~ 하- (할머니), 하! (하하 손모양같이) 등이 있었다.


이렇게 성장하는 아이의 변화에 엄마의 노력이 가장 컸지만 그에 못지않게 큰 요인이 또 있었다. 바로 환경의 변화이다. 우리는 아이가 두 돌 무렵 이사를 했다. 이전보다 더 크고 쾌적한 곳으로 이사를 했는데 집 안의 반경이 넓어지며 아이에게 더 큰 세상을 선사했고 아이는 집 안 곳곳을 누비며 다양한 상호작용과 상황들에 노출되었다.


또, 아이의 방을 놀이치료실처럼 꾸며 마음껏 놀이를 경험하게끔 유도했다. 그랬더니 감격스럽게도 갑자기 상호작용의 디테일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단지 놀이터나 주변 산책코스로 나가 바깥놀이를 충분히 해주고 교회도 새로 등록하여 영아부 예배도 다니게 했다. 다양한 새로운 환경을 몸으로 충분히 접한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30개월쯤에는 단지 내 어린이집으로 옮겼다. 아이에게 다양한 환경적 변화가 득이 되었지만 어린이집마저 옮기는 건 또 다른 문제였기에 5개월을 버티다 버티다 도저히 40분 왕복 라이딩이 힘에 부쳐 옮기기로 결정했다.

또 충분히 아이의 발달이 올라오는 중이라 확신했기에 어린이집 역시 잘 적응해 주리라 믿었다.


새 어린이집에서 만나게 된 원장님과 선생님들은 정말 좋은 분들이었고 따뜻한 분 들 이어서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게 무척 수월했다.


발달이 꽤나 올라오면서 내 아이에 대한 걱정이 조금은 덜어지던 그때였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를 그곳에서 맞닥뜨리고 말았다.

딸의 자존심은 곧 엄마인 나의 자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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