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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Apr 04. 2024

나는 육아우울증, 너는 불안장애

'공황장애', '불안장애' 소위 연예인들이 많이 걸리는 현대인 병. 정신질환이다. 잘은 모르지만 우리 주변에도 이 질병을 앓고 꾸준히 약물을 복용 중인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다.


남편도 그러했다. 이것이 숙려기간 중 우리가 견뎌야 했던 세번째 고통의 요인이다.


부부싸움이 잦았지만 남편이 분노를 폭발시키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부턴가 싸울 때 필요 이상으로 분노를 표출하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처음엔 이건 아니다 싶어 이혼하자고 난리를 치고 어떻게 나에게 그렇게 소리를 버럭버럭 지를 수 있냐고 따지기도 하고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았는데 남편이 공황이 왔다. 정확히는 ‘과호흡’, ‘불규칙한 심장박동’


증세가 나타난 건 꽤 오래전이었다고 하는데 인지하기 시작한 건 음주운전 직후였다. 여러 사건이 한꺼번에 휘몰아쳐 남편의 정신을 병들게 만들었다. 부부싸움도 큰 비중을 차지하니 나의 탓도 없다고 할 수 없다.


한동안은 병원을 꾸준히 다니며 약물을 복용하고 잘 지냈는데 어느 날은 약을 먹어도 분노가 폭발하거나 심한 부부 싸움으로 이어졌고 우리의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남편의 상태를 알면서도 분노가 조절이 되지 않거나 발작이 일어나면 나 역시 감당하기 어려웠고 맨 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더 참고 견뎠어야 했는데 참 어려웠다.


남편의 병명은 공황장애라고 진단하기보다는 불안장애였다. 가끔 자다가 새벽에 깨어나 갑자기 바람 쐰다며 바깥 산책을 나가기도 하는데 옆에서 지켜보는 나로서는 정말 불안했다.


약물 복용 5개월 차쯤, 남편은 최악의 정신 상태를 나타내었고 우리 부부는 정말 심각하게 이혼을 고려했던 날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남편이 자의로 약물을 중단한 것이다. 함부로 약물을 중단해선 안된다고 타일렀지만 약물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며 본인이 극복의지가 강하니 괜찮다고 완강히 약물복용을 거부했다.


이렇게 심한 갈등이 여러 차례 있었는데 와이프인 나 역시도 온전할 리가 없다.


나는 산후, 육아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 어느 날은 갑자기 베란다 밖으로 걸어 나가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어느 날은 아기를 베란다 밖으로 던져버리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했다. 남편과 심하게 싸운 날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야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증세의 시작은 산후우울증이었다. 코로나 시대가 끝난 지금 임신했거나 출산하거나 육아 중인 여자들을 보면 참 좋을 때 애 키운 다라는 꼰대 같은 생각이 바로 든다. 이런 임신, 출산, 육아와 상관없는 사람들도 ’ 코로나블루‘를 겪으며 힘들었던 시기에 아이와 집안에만 있는다는 것은 매우 답답하고 우울한 일이다.


출산 직후 조리원 생활을 2주간 했는데 남편이 출퇴근하며 함께 지낼 줄 알고 계약했건만 코로나는 남편과 나를 만나지 못하게 했고 산후 심신상태가 매우 불안정했던 나는 조리원 2주 동안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제왕절개 수술로 출산하고 남편과 함께한 일주일의 병원생활동안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극도로 높아진 상태로 조리원 입소를 하다 보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고 그 누구와도 말 섞기 어려운 그곳은 창살 없는 감옥 같았다.


조리원 들어가면 조리원 동기 소위 조동들을 많이 사귄다던데. 그렇게 서로 의지하며 즐겁게 생활한다던데. 나는 조동도 사귈 수 없었고 아기 케어도 너무 어려워 매일매일 울었다. (물론 조리원마다 분위기는 다를 수 있지만 그 시기에 출산한 여자들은 조동이 별로 없다.)

그때의 불안한 심리상태가 계속 이어져왔던 것 같다.


여기에 잦은 부부싸움, 남편의 음주운전에 관한 충격과 그 이후의 고통이 연이어지다 보니 육아우울증도 따라붙어 너무 괴로웠다.


남편과 나는 누가 더 불행한가 경쟁하듯이 각자의

절망과 고통을 보여주고 있었다. 서로 싸우고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말이다.


“나는 육아우울증, 너는 불안장애”


내 상태는 다행히도 아이가 커가면서 좋아졌다. 정확히는 아이의 언어발달이 좋아지면서 나도 같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육아우울증’이다보니 아이가 성장해감에 따라 육아의 부담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좋아진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상태가 좋아지니 남편의 불안장애 증세와 음주운전의 여파를 떠안고 갈 수 있었다.


아무튼 남편이 약물을 중단한 뒤 몇 차례나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지금은 약물 없이 비교적 잘 지내고 있다. 앞의 장에서 다루었지만 음주운전 숙려기간이 끝나고 나니 많이 회복된 상태라 그런지 남편의 상태는 눈에 띄게 좋아졌고 나 역시 상태가 함께 좋아져 많은 것을 포용하게 되었고 갈등의 횟수가 현저히 낮아졌다.


남편과 나의 관계를 3편의 글로 적어내려가다보니 우리는 근본적인 문제보다 환경적인 요인이 지대한 문제였구나 싶다. 환경과 상황이 좋아지니 관계가 함께

자연스레 나아지는 것이 참 다행이다란 생각도 든다. 정말 진심을 다해 다행이다.


우리는 결혼식날 신랑, 신부가 직접 듀엣 축가를 불렀다. 음악치료사인 나의 로망이었고 남편도 노래를 곧잘 부르는 편이라 뜻이 맞았다. 히즈윌의 ‘사랑’이라는 곡이었는데 곡의 가사 중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라는 내용이 있다. 그 가사처럼 우리는 우리 부부, 가족이 겼는 고난과 고통, 슬픔도 함께 극복해 나가는 중이다. 우리의 결말이 아직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더 단단해지고 견고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래서 앞으로 어떠한 힘든 일이 올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겨낼 힘과 신뢰가 갖춰져 있다고 굳게 믿으며 함께 한발 한발 내디뎌 나갈 생각이다.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많은 부부들이 수없이 많은 갈등과 고통 속에 허덕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각자 서로의 약한 부분을 덮어주고 가려주고 내가 더 힘이 되어 지탱해 준다면 못할 일도 없다. 내가 느낀 지난 6년이 그랬다. 물론 우리는 지금도 다툰다.


하지만 이제는 다퉈도 이겨낼 방법을 아주 조금은 안다. 이겨낼 의지가 강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기에 두렵지 않다. 수많은 갈등 속에 있는 부부들이 우리 부부와 가족의 이야기로 힘을 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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