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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맘 Mar 28. 2024

남편이 사고 쳤어요 (하)

우리는 제각각 각자의 생활과 책임을 다하며 무척 잘 지냈다. 호흡이 척척 맞았고 남편은 가정에서 술은 멀리했으며 회식자리도 잘 가지 않았다.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듯 서로에게 예의를 갖췄고 가정에 충실하다 보니 사이는 더 좋아졌다.


모든 부부가 그러하듯 30년을 각자의 방식과 환경에서 살아왔는데 다른 둘이 만나 어찌 갈등이 없을 수 있을까. 신혼 때부터 부부싸움이 잦았지만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강하며 가정생활에 관한 의지 역시 강한 우리는 여태껏 그러했듯이 잘 지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그저 염증이 잠복해 있던 기간이었을 뿐이었다. 화농성 여드름처럼 계속 무언가 만지면 더 아프고 시간이 지나 염증이 본색을 드러내니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사이가 안 좋아졌다. 서로에게 실망했고, 원망했고, 경멸하기까지 했다.


음주운전이 발생하고 약식재판은 약 3개월 후였는데 이미 그전에 회사 회식으로 인해 우리의 신뢰는 깨졌고 부부사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제 술 마시지 않는다며! 그 말 한지 얼마나 됐다고! 아직 약식재판도 안 끝났는데 벌써 이렇게 초심이 무너져?"

나는 온갖 비난을 다 퍼부어댔다. 남편은 회사 사회생활이고 또 워낙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로만 이루어지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테지만 그래도 너무 크게 실망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분명히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돌아올 테니 믿어달라 했는데 그 믿음은 단 하루 만에 깨지고 말았다. 결국 술독에 빠져 다음날 결근하고 퍼져버리는 남편과  심하게 다투고 말았다. 쌓아뒀던 원망과 비난, 해서는 안 되는 말까지 오고 갔다.


"이혼하자."


마음에도 없는 소리. 이성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감정에 의한 소리. 뒤돌아서면 후회할 소리.

그렇지만 이런 식의 다툼이 반복되고 지속되면 진짜 그러고 싶은 마음이 되어 버린다. 남편의 속마음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랬다. 그리고 남편도 크게 다르진 않았을 것이다.


남편의 입장은 이러했다고 한다. 본인이 경제생활을 하는데에 있어서 회사는 무척 중요하고 회사에서 입지가 잘 다져져야 우리 가정이 살 수 있다. 회사에서의 회식도 회사생활의 일부고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으니 아내인 내가 조금만 더 이해해 주길 바란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 나는 이해의 폭이 아주 좁기도 했지만 나중에 얘기하기를 그 술자리가 어찌 보면 사고 직후 힘든 상황의 돌파구이기도 했다고 한다.(그래서 내가 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지옥 같은 일 년을 보냈다. 신혼생활부터 쌓여있던 그간의 서로에 대한 불만 한 스푼, 음주운전에 대한 원망 한 스푼, 육아 스트레스 한 스푼, 앞으로 미래에 대한 부담 한 스푼 이러한 것들이 모두 합쳐져 한꺼번에 터진 시기였다.


그 당시 우리는 약 1년 뒤 분양아파트 입주를 앞두고 있었다. 묵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범칙금과 보험금, 합의금으로 인한 금전적 손해가 막대했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남편이 운전을 하지 못한다는 것도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다독여 주는 중에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앞으로의 결혼 생활을 과연 어떻게 이어나갈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를 무한 반복했던 지난 1년. 어찌어찌하다 보니 입주날이 되었다. 이사준비로 몸과 마음이 바쁘다 보니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이사도 하고 집 정리도 했다. 그렇게 잠깐 사이가 좋았다가 이사에 관한 모든 게 안정되고 나니 또다시 무한 반복의 굴레에 들어서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처럼 서로를 원망하고 경멸하고 미워했다.


금전적 문제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나는 운전경력 10년 차였지만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운전을 1-2년 정도 쉬다 보니 적응이 잘 되지 않았고 남편은 나의 운전습관을 못 미더워했다. 참나! 운전면허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못마땅해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생명과 직결된 일이고 아이도 함께 동승해 있고 본인이 운전을 할 수 없는 답답함까지 겹쳐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것 같다.


우리에게 한 가지 더 답답한 것이 있었는데 아이의 언어지연이었다. 코로나 베이비로 태어난 우리 아이는 30개월이 지나도 말이 터지지 않았다. 세돌이 거의 다 되어서야 말이 터졌는데 그로 인한 스트레스도 부부의 갈등에 한 몫했다. 아이의 육아 문제에 관해서도 서로 예민해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냥 모든 것이 아주 불안정한 아노미, 대혼란의 시기였다.


결국 우리의 안정기는 남편의 숙려기간이 지나 운전면허를 다시 취득한 날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전부터도 분명히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회식이 잦은 그 회사를 떠나 이사한 집 가까운 곳으로 이직을 성공했고, 아이가 말이 터지면서 우리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답답했던 문제들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남편이 운전을 다시 시작하면서 엉켜있던 실타래가 바로 풀려버렸다.


남편은 이틀 만에 공단 운전면허시험을 보고 합격하여 운전면허증을 당당하게 나에게 보여줬고 고생했던 지난날이 떠올라 나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고 말았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운전면허증이 뭐 대수라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고통스러웠던 지난 2년은 내가 울컥할만했다. 남편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항상 미안했고 더 잘하려고 노력했는데 마음처럼 쉽지 않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평소에 그런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여보~ 고생이 많아. 고마워~.”

남편이 살짝 술 취하면 술김에 하는 말이다. 취중진담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평소에도 이런 말을 자주 해주면 좋을 텐데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도 서로를 배려하는 말은 자주 한다.


“내가 할게. 여보 쉬어~.”, “힘들어도 웃자~”

사이가 좋아진 우리가 요즘 자주 쓰는 말이다. 이렇게 서로를 위하는 느낌이 들면 소소한 불만도 사그라든다.


얼마 전 남편이 뜬금없이 음주운전 사고가 났던 그 당시의 심정을 다시 이야기했다. 본인이 가진 책임감과 무게감이 얼마나 막중했는지 느꼈는데 책임져야 할 와이프와 아이가 크게 와닿아서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사람을 쳤거나 차를 크게 훼손했거나 그랬다면 어떡했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참 아찔하다고. 본인은 그때 일이 여전히 생생하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이고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평생 가슴에 품고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다시 들어도 참 고마운 말들이다.


남편이 그때의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얼마나 나에게 아이에게 미안해하는지 그리고 이렇게 버텨온 나에게 얼마큼 고마워하는지 모르지 않는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그동안 속으로 원망했다. 남편의 진심을 외면하고 싶었다. 남편은 가족보다 본인만 아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으며 실컷 미워했다. 그래야 속이 시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주 싸우고 서로를 미워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사이가 좋아진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마법처럼 숙려기간이 끝나자마자 모든 것이 풀려버려 내가 좋아했던 내 남편의 진가와 진심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 내가 평생을 함께하려고 했었는데 하며 새삼 깨닫는다.


숙려기간으로 인한 고통의 요인은 부부싸움, 아이의 언어지연, 그리고 마지막 하나가 더 남아 있다.


남편은 잦은 부부싸움과 음주운전의 충격으로 멘털이 온전하지 못했다. 풀지 못한 숙제처럼 무한 굴레에 빠져있던 지난 2년 중 사실 남편은 그리고 우리는 이것이 가장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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