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치료가 전부였던 한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엄청난 피드백이 되었고 기쁨이었다. 내가 노래하는 것을 보고 너 좀 노래 잘한다? 노래 좀 하네. 소리를 자주 들었고 너네 반에서 노래 잘하는 애가 누구니? 하면 내가 꼽혔다. 교회를 다녀서 그런 기회가 더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고1 때 우연히 성악의 기회가 있었고 음대를 목표로 공부했지만 아쉽게도 음대는 나에게 더 큰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특별히 가고 싶었던 학교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입시 실패는 일반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이 태어나 가장 처음 겪게 되는 실패의 경험과 좌절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그다음 단계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마치 게임을 시작해서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하고 있는 중에 다음 클리어가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는다. 뭔가 끝판왕을 끝낸 것도 아니고 더 할 일이 있는 것 같은데 그만하라고 한다. 딱, 그런 기분이다.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나는 할 일이 없다. 소속된 곳도 없고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기분. 친구들은 다음 미션을 치르느라 하루하루가 바쁘게 움직여간다고 하는데 나는 혼자 멍하니 방 안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어디 좀 가자고 해주면 좋겠는데 그런 것도 없이 그냥 혼자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몇 년 전 '무한도전'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에서 유재석 씨가 한 말에 난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의 무명시절이야기였다. 하루가 끝나고 밤이 되어 누워서 '내일 뭐 하지?'란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니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까. 멍하니 그런 생각만 했다고 한다. 아주 유명한 노래 처진 달팽이의 '말하는 대로'의 이야기이다. 그 노래가 소개되었을 때 나는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의 당시가 떠올라 정말 많이 울었던 기억이 있다. 딱 내가 그랬다. 밤마다 '나 내일 뭐 하지?',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뭐 해야 하나?' 친정 엄마를 붙잡고 '엄마, 나 대학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오열을 했던 것 같다. 안 되겠다고 판단하셨는지 내 손을 이끌고 나를 노량진 재수학원에 등록시키셨다.
참, 지금 생각하면 정말 웃기는데 재수학원도 내 사진과 이름이 박힌 학원증이 나온다. 내 친구들은 대학교 학생증이 나올 텐데 나는 그 학원증이 좋아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반갑던지. 사람은 어딘가 소속되어야 하고 함께하는 이들이 있어야 하며 삶의 방향성과 목적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체감했다.
그렇게 재수를 결심하고 공부한 결과 수도권 모 4년제 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했고 나도 수도권이지만 대학 캠퍼스를 누리게 되었다. 처음 1,2년은 재미있게 다녔다. 그동안 못해본 여러 가지 대학생으로서의 경험들을 누리며 신나게 다니던 어느 날, 나 지금 뭐 하는 걸까? 나는 음악을 향해 공부했었는데 내가 그렇게 쉽게 포기하고 이렇게 여기서 이 사람들과 있는 게 맞는 걸까? 나는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뭘 할 수 있지? 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가 우연히 '음악치료'라는 한 단어를 보게 되었다. 뭐에 이끌리듯이 검색하고 검색하여 음악치료사가 되는 방법을 찾아내었고 다행히 음악치료사가 되면 대학원 과정을 밟으면 된다는 것까지 알아내었다. 나는 그 대학원을 가기 위해 그곳에서 진행하는 오프라인 특강을 열심히 수강하고 그동안 접어두었던 보컬공부와 피아노 연습도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입시시험인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치르고 합격 결과를 통보받았다. 지금도 그 컴퓨터 화면을 잊지 못한다. 주황색 큰 글씨로 '축하드립니다.'라고 쓰여 있었고 그 밑에는 앞으로의 일정을 깨알같이 설명한 글이었다. 그 학교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성악으로 가고자 하여 입시 시험을 치렀지만 나를 받아주지 않았던 바로 그 학교다. '아, 인생이 이렇게도 역전되는구나. 내가 학부로는 갈 수 없었던 그 학교를 이렇게 석사로 가는구나.' 음악치료 대학원 과정은 그 당시엔 석사 과정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온갖 음대생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비음대생들이 몰려 경쟁률도 치열했고 들어가기 어려웠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갔던 대학원이 음악치료 석사과정 중 가장 최고의 대학원이었다. 그런 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짜릿하고 행복했던가. 열정과 설렘을 가지고 대학원 공부에 임했다.
‘음악치료’라는 학문은 매우 생소하다. 먼저, 음악치료의 정의를 살펴보면 한국음악치료학회에서 ‘음악 치료는 치료적인 목적, 즉 정신과 신체 건강을 복원(rehabilitation) 및 유지(maintenance)하며 향상(habilitation) 시키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라고 정의한다.
음악으로 무슨 치료를 하는 것일까? 음악치료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심리적 영역과 발달적 영역인데, 나는 발달 치료사 정확히는 아동발달 치료사이다. 대학원 5학기 과정 중 마지막 학기에 서울시립 어린이 병원에서 인턴쉽을 하게 되었고 그때 만났던 발달장애 아동들 중 흔히 말하는 ‘서번트 증후군’을 직접 만나 그의 천재성을 보고 음악치료의 진정한 매력에 푹 빠져버렸던 것이 직접적인 계기이다.
쉽게 말해 아동발달 음악치료는 소위 말하는 ‘발달지연된 아이들’과 ‘자폐스펙트럼 장애’, ‘지적장애’, ‘뇌병변 장애’등을 통틀어 ‘발달장애 아동’이라고 부르는데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언어적 지원, 사회적 지원, 정서적 지원, 운동적 지원을 ‘음악’이 매개가 되어 지원하는 것이다.
음악치료사는 ‘음악’을 매개로 언어자극과 상호적 자극을 제공하는데 ‘음악은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반응한다.’라는 motto로 접근하여 치료적 효과를 이루어 낸다. 또, 음악을 통해 음악에 의한 움직임을 자극하여 운동기술을 높이고, 음악을 통해 심미적 변화를 제공하여 긍정적인 정서를 함양하도록 돕는다.
또한, 음악치료는 교육치료로도 사용된다. 발달장애 아동들 특히 자폐스펙트럼 장애아동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음악성과 언어적 높낮이에 꽤나 큰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를 이용한 접근이 음악치료 내에서 사용되는 교육치료로 간단하게 요약하면 피아노, 기타, 드럼 등의 악기를 가르치는 레슨세션이다. 음악치료사들은 발달 장애 아동의 특성에 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인 점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에 대한 기술을 접목하여 발달 장애 아동들이 편안하게 악기를 익히거나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내가 본격적으로 음악치료사로 활동했던 때는 졸업 직후에 일했던 복지관에서의 시간들이다. 장애인 복지관 부설 아동발달센터 음악치료사로 입사하여 그곳에서 월 120에서 130 case 이상 매일 수업하면서 정말 다양한 발달장애 아동들을 만났다. 기타를 배우고 싶어 했던 지적장애 3급 고등학생은 계절마다 그동안 배웠던 곡들을 선보여 작은 연주회를 개최했고, 흥이 많은 다운증후군 꼬마는 치료 내내 드럼을 두드리며 음악 놀이를 누렸으며, 피아노와 음감에 재능을 보였던 자폐 스펙트럼 장애 초등학생은 캐논부터 사랑의 인사 등의 클래식 음악을 치료사의 반주에 맞춰 양손으로 단선연주하여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 아동들도 더러 있었다. 가지고 있는 장점이 매우 높은 아이가 발음지연된 누나로 인한 부모의 양육방식으로 크게 위축되어 있어 자신감을 높이기 위해 무던히 애썼던 경험도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은 현존하는 음악치료사들 조차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귀한 경험들이다. 음악치료의 문이 매우 좁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음악치료사들에게 일자리가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에 이렇게 다양한 케이스들을 주 5일씩 한 기관에서 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나로서는 매우 감사한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발달장애 아이들과의 음악적 소통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다. 언어치료나 놀이치료는 검사 결과가 그 치료적 효과를 증명해 주지만 음악치료는 아이의 성취감을 통한 기쁨이 그 치료적 효과를 증명해 준다. 나는 그 성취감을 통한 기쁨을 아동과 치료사인 나와의 음악 연주 혹은 합주로 남겼다. 필요시 동영상 촬영을 진행하여 부모들에게 보내주었고 아동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도 하였다. 그 치료적 효과를 눈으로 확인한 부모들에게 그 연주 장면들은 그동안 꾹꾹 참아왔던 내 아이에 대한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일 것이다. 한편으로 아동들에게는 누구보다 가장 힘들었을 본인들이 느낄만한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그런 그들의 얼굴을 볼 때 음악치료사로서의 자부심과 소명감이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벅차게 흘러나온다.
음악치료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자랑이었고 자부심이었다. 음악으로 소통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고 사건이다. 그리고 여기에 음악치료사가 있다. 음악치료사는 아동 혹은 내담자와의 관계를 형성하여 이를 바탕으로 음악이라는 매개를 사용하여 음악치료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는 음악을 듣는다'라는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오래된 감각 기관이 귀에서 만큼은 매우 강력하게 남아있는 거니까요. 물론 뇌 속에서도 귀와 운동은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뇌의 관점에서 보면 청각은 뇌의 원초적인 부분에 직접 다다르는 거예요. 그것이 정서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거죠. 이러한 음악의 역할에 치료사라는 관계가 덧입혀 음악치료적 효과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음악치료를 오랫동안 사랑해 온 나는 이제 엄마가 되었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음악치료사보다는 다른 지위가 어울릴지도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내 인생에 있어 '음악치료'는 1순위였는데 이제는 2순위, 아니 어쩌면 3순위, 4순위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음악치료'를 저버릴까 봐 아이가 돌이 지난 후부터는 파트타임 음악치료사라도 놓지 않고 일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1순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밝은 미래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커갈수록 육아가 그나마 수월해지고 나의 개인 시간이 생겨났으며 '음악치료'에 관한 열정이 조금씩 불타오르고 있어 순위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치료를 사랑했던 한 여자가 겪게 되는 결혼의 경험과 육아의 경험을 하나씩 풀어나가며 음악치료사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글로써 완성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