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맘 Mar 08. 2024

코로나 베이비가 돼버린 우리 딸

2020년, 우리는 외부와 단절된 삶을 맞았다.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고 ‘비대면’의 시대가 도래하여 함께 사는 사회란 말이 무색하게 접촉을 피하는 일이 많았으며 그 흔한 식당에 가서 식사하는 일이 꿈같은 일이 돼버렸던 때가 있었다.


‘코로나’라는 무서운 전염병. 그때는 누구든 사람과는 거리를 둬야 했고 외출은 자제하는 것이 당연했으며 확진자 관련 문자가 뜨면 모두가 두려움과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렇게 세상이 시끄럽고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을 때 우리 집 꼬맹이가 태어났다. 확진자가 급증했던 따뜻한 봄인 2020년 4월 어느 날에.


축복과 환영 속에 태어났지만 외부와는 단절된 채, 신생아실은 면회가 금지되고 산후조리원에는 산모인 엄마만 입실할 수 있었다. 조리원 퇴소 후에도 아기가 보고 싶다던 일가친척들은 모두 방문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집에 오는 손님이 혹시 코로나 환자는 아닐까 의심하며 거리를 두기도 했다.


그래도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커나갔지만 6개월쯤부터는 바깥공기도 자주 쐬고 사람 구경도 했어야 했는데 여전히 외부는 단절될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그때는 그랬다. 그게 너무나 당연했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외출하는 사람들을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돌도 되지 않은 아기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며 “마스크도 씌우지 않고 그냥 아기를 데리고 나왔어? 어쩌려고 그래! “와 같은 말을 한소리씩 하셨다.


그렇게 집안이 세상의 전부인 줄 아는 우리 아기에게 적절한 자극이 잘 이루어질 리 없었던 것 같다.


2020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발달지연은 아니다. 정상발달된 아이들, 오히려 상위레벨인 아이들도 많지만 실제로 발달센터를 찾는 아이들 중 2020년생이 상대적으로 꽤 많으며 이 중 언어지연되어 발음교정을 받는 아이들이 아주 많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을 소위 ‘코로나베이비’라고 부른다.


우리 딸도 ‘코로나베이비’였다. 생후 17개월쯤, 문득 아이가 말이 느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관찰해 보니 ‘엄마’ 소리도 나오지 않고 흔한 손가락 포인팅도 없었다. 어? 뭐지? 그래도 잘 크고 있다고 생각했다. 뒤집기, 되집기, 기어가기, 서기, 걷기 모두 정상발달이었다. 그런데 왜 단어가 터져 나오지 않고 저렇게 느린 아이처럼 있을까. 출산 전 발달센터 치료사로 근무했던 내 눈엔 초기상담받으면 딱일 것 같았던 우리 딸. 이때부터 내가 육아에 있어 무얼 잘못했을까 어떤 자극을 주지 못한 걸까 자괴하기 시작했다.


맘카페, 블로그, 전문서적 등을 뒤져보면서 아직은 괜찮은 건가? 지금부터 자극을 제대로 주면 되는 걸까? 남편과 매일밤 의견을 나누며 계속해서 대책을 세워나갔고 아이에게 필요한 자극들을 가정에서 채워줬다. 그때 당시에 일을 다시 복귀하기 시작한 나로서는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현실이었다.

일할 때 만나는 발달지연 혹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아동들을 볼 때마다 우리 딸이 생각나서 너무 힘들었다. 매 치료시간이 괴로움의 연속이었고 내가 지금 여기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우리 아이가 컸을 때 내 앞에 있던 치료받는 아이처럼 되어 있으면 어떡하지? 등의 온갖 망상은 날 미치게 했다. 나 자신에게도 치료를 받은 아이에게도 못할 짓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나를 절망에 빠뜨린 건 다른 곳이었다.

아이가 다니고 있던 가정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에서였다.


“어머니, 어머님이 일하는 곳에서 OO 이를 만난다면 치료를 권하실 것 같아요? 아니면 지켜보자고 하실 것 같아요? “


그렇다. 나는 내 아이는 괜찮을 거라며 다를 것이라며 회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으로

“네, 선생님. 제가 그동안 회피했네요. 치료센터 알아보겠습니다.”

아이가 딱 두 돌이 되던 때에 좋아지는 모습은 눈에 띄게 있었지만 전문가에게 맡겨야 안심이 될 것 같아 바로 센터를 찾았고 좋은 언어치료사 선생님을 만나 6개월 치료를 받았다. 나도 치료사이기에 선생님이 하는 말씀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고 치료사가 협력 컨퍼런스하듯이 함께 내 아이에게 맞는 솔루션을 찾아나갔다. 가정에서 연계하여 매일 아침 40분, 어린이집 하원 후 40분, 자기 전 40분 이렇게 상호작용 놀이를 해주었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게 무던히 애썼다.


언어치료를 받은 지 6개월 후 아이의 상호작용 기술은 눈에 띄게 높아졌고 동료 언어치료사가 아이의 상태를 봐주고 가정에서 지원해 줘도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려 센터에 통보하고 자발적으로 종결했다.


치료가 종결되니 오히려 엄마인 내가 더 바빠졌다. 더 많은 상호작용 놀이를 제공했고 아이의 상태를 체크했다. 동료 언어치료사는 3개월에 한 번씩 가정에 방문해 아이 상태를 체크해 주며 도움을 줬다.


그리고,

그간의 노력은 빛을 발했다.

“엄마~이거~“,”엄마~ 가! “

생후 33개월쯤 아이는 짧은 단어와 단어를 이어 문장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직 발음은 어눌하지만 충분히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언어적 소통을 하려는 모습을 보여줬고 이 정도면 정상발달에 속하는 아이구나 싶어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지금 우리 아이는 생후 45개월이 되었고 완벽한 문장을 구사하며 모르는 단어가 없을 정도로 말을 잘한다. 다소 발음은 부족한 상태지만 이 역시도 좋아지리라 믿는다.


아이를 둔 엄마에게 있어 포기란 없다. 내 새끼의 발달과 필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부딪치고 사수해야 한다. 치료사인 내가 아이를 데리고 센터를 방문하는 것, 동료 치료사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얼마나 나를 내려놓는 일인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내 아이에 관해 고민하고 있는 분들께 아이와 어떤 상호적 놀이를 했는지, 어떠한 이슈들이 있었는지, 그리고 말이 제대로 터졌을 때는 어땠는지 앞으로 풀어나가 보고자 한다.


이 글이 이 세상 수많은 ‘코로나 베이비’ 혹은 ‘발달지연된 아이들‘을 가진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