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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부르스 Nov 23. 2022

예고 없이 찾아온 갱년기


사고 후 찾아온 갱년기는 또 하나의 시련이었다. 교통사고 후유증과 겹쳐서 더욱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왼쪽 다리는 일기예보가 되어갔고 설상가상 찾아온 오십견과 어깨에 돌처럼 박힌 석회 덩어리가 합쳐져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술해서 통증의 날들을 줄일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의사들은 수술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고통의 통원 치료... 휴— 지친다 지쳐.     


갱년기 증상은 사람마다 더 세게 나타나는 것 같았다. 다행히 나는 얼굴이 붉어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았지만, 겨울에도 덥다고 느껴지면 낮이고 밤이고 상관없이 선풍기 앞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얼음을 잘게 부수어 물처럼 꿀꺽꿀꺽 삼켰다.

처음엔 나이가 들면 누구에게나 오는 증상이니까 속상할 것도 억울할 필요가 없다고 가볍게 생각했다. 갱년기는 일종의 늙어가는 증거일 테고 노인으로 가는 길 초입에서 나 혼자 잠시 당황하고 있는 것뿐이니까.    

 

하지만 갱년기는 육체적으로 힘들게 하는 그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사람을 변화하게 하는 듯했다. 마치 못된 바이러스가 내 머리에 침투해서 몸과 마음을 조정하려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나는 서서히 짜증과 불평의 여왕으로 변해갔고 순하고 부드러운 말 보다 맵고 톡 쏘는 말을 내뱉기 일쑤였다.

이런 것들은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생산해 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때도, 외식했을 때도 나는 음식 맛에 대해 평가했다. 누가 보면 입덧이라도 하는 줄. 또 옷에 대해 불평이 생겼을 때 옷장에 걸린 옷들이 다 촌스럽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입을 것이 없다고 투덜대며 급기야 과감히 정리해 버리기도 했었다. 지나고 보니 대상이 없는 화풀이를 음식이나 옷들이 뒤집어쓴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조금만 즐거우면 수다스럽다가도 급 우울해지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치 흔들어 놓으면 잠시 떠 있다가 빠르게 가라앉아버리는 식혜 속 밥풀때기처럼 그날그날 기분은 롤러코스터와 같았다.


이런 증상들은 귀차니즘이 되어버렸다. 일곱 살 어린아이의 이유 없는 반항처럼 집에만 있으면서도 매일 해야 하는 일도 하지 않았고 매사에 ‘싫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이렇게 할래? 해도 싫어. 저렇게 할래? 해도 싫어.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건지…. 내가 생각해도 참 얄미웠을 것 같다. 갱년기가 무슨 벼슬도 아니고. 정말 일곱 살이었으면 꿀밤이라도 맞았을 것만 같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면서 끝없이 아래로 아래로 계속 떨어져 내려가고 있었다.     




이대로 갱년기에 당할 수는 없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은 또 얼마나 답답했을까? 나도 갱년기는 처음 겪는 거라 어쩔 줄 모르겠는데 남편은 내 옆에 있다는 이유로 덩달아 당하는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남편은 어떻게든지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바닥에 드러누워 있는 종이 인형 같은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무능하게 느껴졌다. 흐물흐물한 나에게는 생기가 필요했다.

잠자는 공주의 입술에 후—하고 생기를 불어 잠에서 깨워 일으켜 세우듯 그런 무언가가 필요했다. 나는 다시 ‘달려라 하늬’가 되고 싶었다.     


어느 초여름날, 김 기사를 자청한 남편을 따라 드라이브했다. 푸릇푸릇한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은 따스하면서도 포근했고 아직 띄엄띄엄 남아있는 봄꽃과 여름꽃이 막 피어나는 그 사이에서 배어 나오는 향기와 풀냄새, 바람 냄새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느끼는 행복감과는 달랐다. 자연의 냄새가 이렇게 달콤하고 맛있을까 하는 황홀감에 빠져버렸었다.

차창 밖으로 손을 뻗어 내밀고 다섯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는 바람을 느끼며 피톤치드 마신다며 들숨날숨을 하던 나를 본 남편은 오히려 더 좋아했다.

그후 남편은 자주 나를 자연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나갈 때마다 자연은 나를 순화시키는 것 같았다. 

남편을 따라나섰던 ‘바람 좀 쐐볼까?’ 했던 단순한 나들이는 어쩌면 갱년기 치료에 약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때의 즐거웠던 기억은 종종 타임머신이 되어 나를 과거로 미래로 옮겨 놓았다. 줄 사탕처럼 이어져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순간들은 다시 추억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예를 들면 호박꽃 수술을 따다 달걀 반찬이라며 병뚜껑을 접시 삼아 소꿉놀이했을 때도 그랬고, 사춘기 시절 아버지 사업이 쫄딱 망해 단칸방에 일곱 식구가 옹기종기 살던 그 집 지붕에 쏟아졌던 빗소리도 그랬다.

나는 이런 추억들을 다시 들춰보며 내가 뭘 좋아했는지, 뭘 하고 싶어 했는지 더듬어 보기로했다.

나는 분명히 어릴 적 가정환경 때문에 하고 싶었던 것들을 못 했을 수도 있고 호기심은 있었으나 실천하지 못했던 것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지나갈, 하지만 지금 내게 머물러 있는 힘든 갱년기도 이기고 나면 뜻밖의 은퇴와 그로인해 뒤따라 주어진 많은 시간을 나를 위해 더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늙어간다는 것은 결코 슬프거나 우울한 것이 아니라 지금껏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던 삶을 반추해 보며 지금부터 주어진 자유로운 시간 동안 느긋하나 게으르지 않게 온전한 나 자신을 완성해 가는 시간이라 믿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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