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혼부르스 Nov 23. 2022

갱년기는 새로운 인생의 반환점


사람은 때를 잘 알고 살아야 한다고 들었다. 학교 갈 때 학교 가야 하고 결혼할 때 결혼해야 하고 아이를 낳을 때 기를 때 등등….

지금 나는 어느 때에 있는 거지? 라고 생각해 보면 갱년기를 극복할 때인 것이다.

토네이도 같은 갱년기가 내 몸과 마음을 흩뜨려놓았지만 나는 결코 부러지거나 쓰러지지 않는 야자나무처럼 잘 견뎌내고 있다.     


갱년기라는 것은 노년기를 잘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관문 같다. 이번 문만 통과 하고 나면 나를 잘 정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엉뚱한 생각인지는 몰라도 여자들의 임신기와 갱년기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들은 아이를 임신했을 때 보통 좋은 생각만 하려고 노력하고 좋은 것만 먹으려고 노력하고 좋은 이야기만 들으려고 노력하고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 


갱년기도 비슷한 것 같다. 

어차피 내 몸을 내가 다스리는 일이라면 귀한 늦둥이 하나 품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웃음이 나면서도 갑자기 내가 너무 소중해지는 것이다.

그동안 왜 이런 생각을 못 했을까?     

생각이 바뀌면서 그깟 갱년기가 뭐라고 하는 대담함이 생겼다. 결코 갱년기에 내 몸을 점령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워털루 전쟁에서 진격을 외치는 나폴레용 한테 뒤지지 않았다.

그동안 구질구질했던 나의 모습을 뱀 허물 벗듯 말끔히 벗어버렸다.     

맨 먼저 나 자신을 칭찬했다. 손으로 머리를 쓰담쓰담 하면서.


“잘했어. 그동안 고생했어. 많이 사랑해.”


혼자 중얼거리기만 했는데 왜 눈물은 났는지...     

생각을 바꾸니 죽음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나는 이때부터 철들기 시작했나 보다.

남편은 태도가 바뀐 나를 보고 “리 여사, 사람됐데이.” 하며 놀렸다.

키다리 아저씨 집에 어린아이들이 마당에서 놀기 시작하자 마당에 꽃이 피고 새가 찾아와 지저귄 것처럼 우리 집도 그랬다.


그동안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뒤꿈치 들고 걸어 다니던 남편의 얼굴도 밝아졌고 내 눈치 살피던 아들딸들도 밥을 먹자며 찾아왔다.     

아들과 딸은 여러 가지를 제안했다. 


“이제부터는 엄마만 생각하면서 살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말야.”

“그래, 그래야지.”


막상 대답은 했지만 당장 무얼 해야겠다는 것까지는 생각을 안 했던 것 같다. 

남편은 공부해야 답이 나온다며 배우는 것이 모두 공부라고 했다.


맞다. 

공부도 여러 가지가 있다. 책과 씨름하는 방법도 있을 테고,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서 배워가는 방법도 있을 테고, 오래전에 했던 것을 다시 시작해보는 방법도 있으니까.

남편은 같이 노력하자며 오래전에 그만둔 일본어를 다시 시작해보겠다고 했다. 아마도 내게 동기를 유발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딱히 눈에 띄게 잘하는 것은 없었지만 찔끔찔끔 해본 것들이 생각나서 그중에 한 가지를 골라 시작해볼까 하는 용기도 생겼다.     


우선 살 빼기에 도전하기로 했다. 갱년기로 인해 갑자기 늘어난 몸무게 때문이다. 마법에 걸린 피요나 공주처럼 지금은 그렇지만 천천히 하다 보면 지금보다는 나을 테니까.

그다음은 무엇을 할지 고민하고 실천에 옮기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즐거움은 곧 행복함이다. 마음에 관심 하나 품고 사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간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예고 없이 찾아온 갱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