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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혼부르스 Dec 03. 2022

나와의 첫 번째 약속



갱년기가 오고 신체적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제일  변화는 몸이 뚱뚱해졌다는 것이다.

마법에 걸린 피오나 공주처럼 변해버린  모습을 스스로 인정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마법이 풀리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건지…. 이대로 살아야 하나, 아니면 다이어트를 해야 하나  결심을 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었다.


‘그래, 못하겠다고 푸념은 할 수 있어도 포기는 하지 말자.’


다이어트를 위한 프로그램은 넘쳐난다. 하루 10분을 투자하면 한 달에 5kg 뺄 수 있다는 빡센 운동부터 뭘 먹으면 뱃살이 갈비뼈 속으로 들어간다는 광고까지 나를 유혹하는 매체들은 너무 많다. 나는 이것저것 많은 것을 따라 해봤지만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방식대로


가장 큰 이유는 나는 2, 30대도 4, 50대도 아니고 더군다나 교통사고로 다리가 편치 않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운동법은 짧은 시간 내에 효과를 나타낸다는 것인데 젊은 사람 대상으로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작정하고 시작할 땐 before/after가 확실한 사진을 보고 따라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야박하리만큼 적게 먹어야 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고 오히려 왼쪽 다리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다 찾아낸 운동은 하루 10분이면 충분하다는 문구에 호기심이 생겨 따라 하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내가 벌을 받는 것인지 해병대 훈련을 받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헉헉대며 따라 했지만 가슴보다 더 나온 배는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쯤 되면 한 번쯤은 다이어트 약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비용도 엄청 많이 들고 요요도 빨리 온다는 사실에 고민으로 그쳐야만 했다. 사실, 동생이 다이어트약으로 체중을 3개월 만에 10킬로그램을 감량했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다이어트 전으로 돌아와 버린 동생을 보고 빠르게 포기했다. 결론은 나에게 맞는 운동을 하자였다. 쉽게, 꾸준히, 오래오래 하는 운동으로.

그것은 바로 걷기였다.




시작이 반이다.


내가 걷기를 한다고 하자 일명 귀 동냥 전문가들이 조언한다. 일자로 걸어라, 경보선수처럼 걸어라,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며 걸어라 등등.

나는 그냥 걷기로 했다.


내 생일을 기점으로 시작하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다음 날부터 길을 나섰다.

집에만 웅크리고 있다가 나가려니 쭈뼛쭈뼛 괜히 어색했지만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총총걸음으로 한참을 걷다 보니 움츠렸던 어깨도 펴지고 비로소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홍매화의 몽글몽글한 작은 봉오리들이 어쩌면 그렇게 예쁘던지. 거실 창 아래로 내려다보던 세상과는 확연히 달랐다. 길을 따라 걷다가 되돌아오는 코스는 바닷가 산책로로 택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두 시간은 걸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는지 원.

첫날이라 그런지 몸과 마음이 영 박자가 맞지 않았다. 발목도 시큰거리고 무릎도 뻐근했지만 첫날치고는 잘 완수했다는 나름의 만족감이 들었다. 그렇게 같은 길을 한 달 동안 걸었다.

하지만 몸무게는 줄어들지 않았다. 40~50분 정도 걷기는 그냥 밥 먹고 소화하는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을 좀 더 늘리기로 했다.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좀 더 멀리 가면 대교가 있는데 대교 밑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주로 쉬는 장소이다. 거기까지 걷기로 했다. 1시간 30쯤 걸리는 거리다.

그 다리 밑에는 비둘기들도 쉬는 장소다. 사람들은 비둘기 똥을 맞으면 그날 재수가 좋다고 하지만 아무리 재수 좋아도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날씨는 점점 따뜻해졌고 달라지는 자연의 색감과 진한 바닷바람에 섞여 날아오는 특유의 갯벌 냄새도 싫지는 않았다.  

집에 콕 박혀서 누에고치 속 번데기처럼 있는 동안에 자연은 항상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소리 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편은 걷는 것이 지루할 수도 있으니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걸으라고 알뜰폰 데이터 사용양도 늘려주었다.

하지만 지루할 것만 같았던 걷기는 내가 이것저것 생각할 수 있는 자유시간이 되었고 자연을 흠뻑 느끼며 감동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변한 게 맞지?’


사소하고 작은 것들에게도 눈길이 가고 어딜 가도 널려있는 민들레나 토끼풀조차 예뻐 보였다.

즐거운 걷기를 하다 보니 정말 눈곱 만큼씩 몸무게가 줄기 시작했다. 그렇게 2kg이 빠지더니 멈춰버렸다.

정. 체. 기. 언제까지? 그 후로 석 달 동안!




돌격 앞으로!


날씨도 더워지고 바닷가는 그늘이 없다 보니 더 이상 걷기가 힘들어졌다. 정체기에 날씨까지 게다가 비가 오는 날 등등…. 이런 핑곗거리가 나 자신을 시험했다.

계속할까 잠시 쉴까? 사이에서 두 마음이 나의 의지를 흔들어댔다.


‘안돼! 정신 차려. 정진하라고’-- ‘헉, 정신 번쩍!’


이럴 줄 알았으면 집에서 운동하는 자전거는 중고로 팔지 않았을 텐데. 다시 살 수도 없고….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방법은 있었다.

지하 주차장에서 걷는 것이었다. 지하 주차장은 또 다른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비가 오는 날과 겨울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6개월이 흘렀지만, 몸무게는 총 3kg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언제나 잘 도와주는 남편은 식이요법을 해보라고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아침을 닭가슴살이 들어가는 샐러드로 먹고 있었기 때문에 좀 더 과감한 식이요법이 필요했다. 아침은 그대로 8시에 먹고 점심은 오후 3시 사이에, 그리고 저녁은 건너뛰는 것으로.

저녁이 되면 허전한 기분은 마치 무엇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아기들이 쪽쪽이 찾는 심정이 이랬을까?

한 달쯤 지나고 나니 배고픔이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한 달쯤 지나고 나니 1kg이 빠졌다. 총 4kg이 줄어들고 다시 정체기가 왔다.

그놈의 정체기!




나는 살과의 전쟁 중


그야말로 살과의 전쟁이다.

여자는 평생 다이어트 한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살을 뺀다는 건 쉬지 않고 해야 하고 방심하면 순식간에 되돌아가 버리니 이건 완전히 자신과의 싸움이다.


외로운 싸움…. 결코 대신 싸워줄 수 없는. 하지만 나와의 첫 번째 약속이니 반드시 지킬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 끝내 해냈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면 걸을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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