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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라리 Jul 26. 2023

우리는 누구인가?

문명6

인생질문 : 우리는 누구인가?
 

○ 문제의식
    대학생 때 학교 락밴드동아리를 열심히 했다. 그래서 졸업 후에도 신입생 오디션 할 때는 별일 없으면 참석했다. 동아리 지원서에 '좋아하는 밴드'를 적게 했는데 해가 바뀔수록 이 내용이 달라지는 게 신기했다. 2000년도 중반 ~ 2010년 정도까지는 락밴드 하면 영미권이었다. Radiohead, RHCP, RATM, Greenday, Muse가 인기였다. 한국 락밴드는 YB, 자우림, 넬이 아주 가끔 나오는 정도. 영미권 밴드를 적지 않으면 '이 친구는 음악 잘 안 듣네'하는 선입견을 가질 정도였다. 2010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전통 락밴드뿐만 아니라 팝 스타일이 가미된 밴드들이 인기였다. Coldplay, Maroon5, MCR 등등. 한국 밴드는 데이브레이크, 버스커버스커가 추가됐다. 2015년 이후부터는 영미권 밴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다들 한국 가수를 적었다. 혁오, 새소년, 몽니, 쏜애플, 잔나비를 시작으로 밴드라고 할 수 있나 싶은 각종 인디가수들이 등장했다.
     좋아하는 밴드는 개인적인 취향인데, 왜 이런 경향성이 나타났을까? 내가 가진 정체성은 내가 속해 있는 집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표본이 적어 과학적인 통계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로 2015년 즈음해서 한국 문화가 크게 성장하면서 한국인 개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끼친 것이다. 나를 보다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나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한다. 대개 '우리'라는 이름으로 내 선택과는 상관없이 나의 정체성을 일부 결정하고 있다. 가정, 지연, 학연, 민족, 국가 등이 있는데, 가장 많은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국가일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가 개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개인이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
 
○ 학자의 대답 : 우리는 누구인가?
「김대식의 빅퀘스천」, 김대식, 동아시아 / '나는 누구인가' 일부 발췌

     오늘날 한국사회를 짐작이라도 한 듯 정체성이 타인과의 권력 관계를 통해 성립된다고 주장한 헤겔과 달리,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변하지 않는 객관적인 정체성의 존재 자체를 부인했다. 그는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답이 사회적 믿음과 역사적 해석을 통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 해석의 기준은 무엇일까? 문화적, 역사적, 종교적 기준들이라고 니체는 말한다. 그런가하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죽음을 통해서만 인생의 의미와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인생이라는 퍼즐의 의미에 대해 수많은 가설과 희망을 세우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바로 그 순간에서야 무한한 가설과 가능성들이 단 하나의 실재로 변한다는 것이다.
     헤겔, 니체, 하이데거는 모두 독일 철학자이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정체성에 대한 독일인들의 뿌리 깊은 집착의 일면이 엿보이는 듯하다. 독일은 멋진 자동차와 최강 축구팀 덕분에 가장 빠르고 앞서가는 나라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후진적 사회 중 하나였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시작하고 수상이 국회의사당에서 야당의 공격을 받을 때 독일은 여전히 수백 개의 작은 왕국들로 쪼개져 있었다. ‘Made In Germany'라는 의무적 표시가 싸구려 독일 수입품들을 구별하려는 영국 정부의 규정 아래 만들어질 정도였다.
     독일의 지식인들은 프랑스혁명을 지지했고, 독일 왕국을 하나씩 무너뜨린 나폴레옹을 해방자로 환영했다. 하지만 프랑스혁명이 주장한 자유와 평등과 우애의 외침이 프랑스인의 그것만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독일 지식인들은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그동안 남의 음악에, 남을 위한 음식이 나오는, 남의 파티에서 춤추고 있었다는 허탈감. 그렇다면 '독일'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수백 개의 조그만 왕국들에 흩어져 사는 '독일인’의 공통적인 정체성은 존재할까?
     결론은 하나였다. 역사와, 언어, 그리고 공통된 스토리들이 한 민족의 정체성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림 형제는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백설공주〉,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같은 이야기들을 모았고, 현재까지 총 60권으로 정리된 표준 독일어 사전을 처음으로 출간해 수백 개의 언어로 구성된 독일어의 표준화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몸젠Theodor Mommsen 같은 역사학자들은 고대 로마인 타키투스의 저서 『게르마니아』를 통해 2,000년 동안 변치 않은 독일인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나라와 민족의 정체성이 언어와 역사와 스토리로 정해진다면, 결국 한 민족의 정체성은 언제든지 재해석되고 재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변하지 않는 나만의 정체성이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시대의 해석과 조작으로부터 자유롭고 객관적인 ‘민족의 혼’이나 ‘민족의 정체성’이란 환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인가?'보다 ‘우리는 누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과거가 현재를 만들고 현재가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는 현재일 뿐이고 미래는 현재의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는 원하는 미래를 그리고, 그 미래를 정당화할 과거를 만들어내야 한다. '항상 그랬기 때문'이라는 변치 않는 정체성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릴 테니 말이다.

 
○ 해석
     김대식은 뇌과학을 기반으로 인간 사회의 작동 원리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학자다. 저자에 따르면, 시대의 해석과 조작으로부터 자유롭고 객관적인 변치 않는 정체성을 찾는 것은 환상일 뿐이라고 얘기한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를 상정하고 그러기 위한 현재를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미래, '우리는 누가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는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할까. 이 질문은 민주시민교육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질문이다.
     나는 6년 동안 청소년을 대상으로 민주시민교육 수업을 했다.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게 우리나라 교육의 목적인데, '민주시민'이라는 게 뭔지 대부분의 학생과 시민들은 정확히 알지는 못할 것이다. 강사인 나 조차도 설명하기 쉽지 않다. 선거연수원에 따르면,
"민주시민이란 주권자로서 그 역할을 실천하고, 민주주의 정치체제 속에 살면서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개인의 권리를 향유함과 아울러 국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함" 이렇게 정의한다. 좋은 말이 많이 들어갔는데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해석하자면 민주시민은 민주적인 태도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민주적인 태도가 뭔가 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권리에 지키기 위해 애쓰는 용기 있고 이타적인 사람이면서 공동체의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말만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다. 아마 학교나 회사나 모임 등등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주체적이며 배려심 많고 오지랖과 책임감이 동시에 넓은 멋진 사람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방점은 자발적인 실천과 참여에 있다.
    '우리는 누가 되고 싶은가?'는 다시 말해, 민주시민으로서의 지향과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을 한 번에 묻는 질문이다. 앞으로 '어떤 우리'가 되어야 하는지는 나름의 답이 있지만 현재의 나(우리)는 무엇을 실천해야 하는지 답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게임을 접하고 대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더 이상 "라때는 민주시민교육을 받지 못해서 모르는 거야"라고 변명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이 게임을 소개한다.



게임이 답하다

이름 : 시드마이어의 문명6 (Sid Meier's Civilization Ⅵ) / 12세 이용가
제작사 : FIRAXIS GAMES
장르 : 턴 방식 전략 시뮬레이션
출시일 : 2016년 10월 21일 (최초 출시)
  *게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다른 사이트를 참조하세요
 

전설적인 게임 디자이너 시드 마이어가 개발한 문명 시리즈는 오랜 역사를 버틸 수 있는 제국을 건설하는 턴제 전략게임입니다. 석기 시대부터 정보화 시대에 걸쳐 세계를 주름잡는 문명의 지배자가 되십시오. 전쟁을 일으키고, 외교관계를 조율하며, 문명을 꽃피우고 역사적인 지도자들과 겨루며 세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십시오.
문명 6은 당신의 세계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도시들은 이제 지도상에서 물리적으로 확장하며, 기술 및 문화의 발달이 새로운 능력을 가져오고, 당신이 5가지 승리방식을 두고 싸우는 동안 다른 지도자들은 역사적인 기록에 근거하여 자신만의 목적을 갖고 경쟁에 임하게 됩니다.
- 스팀 게임설명

 
     게임에 제작자의 이름을 넣는 시도는 많지 않다. 웬만큼 유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름을 넣는 것이 마케팅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수많은 게임들 중 제작자 이름이 들어간 게임 중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은 게임은 시드마이어의 문명, 탐 클래시의 레인보우 식스,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 정도이다. (플레이어언노운스는 배틀그라운드 제작자인 브랜던 그린의 닉네임이다) 시드마이어는 1987년 '시드마이어의 해적'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넣었다. 이 작품이 흥행하면서 시드마이어가 하나의 프랜차이즈가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문명5가 출시한 2011년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게임을 모르는 사람들도 '문명하셨습니다', '간디 유혈사태'는 알 정도로 유명했다.
 
     문명의 발전을 소재로 하는 콘텐츠 중, 이 게임보다
  - 더 훌륭한 서사를 가진 역사소설이 있을 것이다.
  - 더 충실하게 고증한 다큐멘터리가 있을 것이다.
  - 더 매력적인 영상, 음향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객이 아닌 문명을 직접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은 게임뿐이다. 게임은 그 어떤 매체보다도 직접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추가로 이 멋진 경험을 여러 번 할 수 있다는 것도 게임의 큰 장점이다. 똑같은 전개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문명을 바꿀 때마다(기본 18개, DLC 포함하면 최대 50개) 그리고 어떤 승리 목표(지배, 과학, 문화, 종교, 외교)를 정하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각 문명마다 역사적인 요소를 반영한 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과학에, 독일은 상업과 생산에, 로마는 영토 확장에 장점이 있다. 승리 목표에 따라 문명마다의 유불리가 있다. 게임에 점점 익숙해지면 게이머는 유불리보다는 자신만의 목표를 설정하여 문명을 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K-컬처로 세계를 제패하는 국뽕을 느껴보는 역사를 쓰고 싶으면, 한국을 선택하여 '문화'로 세계를 제패하여 승리할 수 있다.                   


     '시드마이어의 문명6'는 현실이 아니라 시뮬레이션이다. 게임에 맞게 역사와 현실을 단순화시켰다. 꼭 필요한 것만 남겼다. 30년의 역사를 거치면서 '시드마이어의 문명6'는 역사 고증과 게임적 재미의 적절한 균형을 맞춰왔다. 각 문명의 특징을 디자인하고 밸런스를 맞춘 것도 대단하지만, 이 게임의 핵심은 발전 테크트리이다. 사회 제도, 기술 발전, 정책(군사, 외교, 경제), 정부 형태로 표현되는 테크트리는 문명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인류가 걸어왔던 발전사를 담고 있다.

고대~중세시대 사회 제도표
르네상스~현대시대 기술 발전표
정책 (군사, 외교, 경제)


정부 형태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듯이 우리는 우리를 자각하기 어렵다. 사회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원래 그렇다고 여기며 변화발전해 온 맥락을 놓치기 쉽다. 맥락을 모르면 앞으로의 나아갈 길을 찾기 어렵고,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현재 할 수 있는 실천 또한 보이지 않는다. 이 게임이 제공하는 문명사 7000여년을 단순하면서 거시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경험은, 인류 문명의 발전을 맥락과 흐름으로 느껴볼 수 있는 아주 귀한 기회다. 덤으로 정부형태에 따라 정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기술 발전과 사회 제도가 어떻게 맞물려서 발전하는지 시뮬레이션으로 체험할 수 있다.
 
p.s. 게임을 하면 호기심이 많아지고 세상에 대해 알고 싶어질 수도 있습니다. 많은 부모님들의 바라는 유니콘 게임(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게임)
 

Q.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가 되고 싶은가?"

A.

"나는 인류 문명의 발전 맥락을 보여줄 수 있어.

너는 민주시민으로서 뭘 보여줄 수 있니?" 

- 문명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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