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 제작사들의 새로운 시도를 응원하며
최근 정치권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관련 역사 논란이 만들어졌다. 드러나는 설명만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왜? 굳이 지금 시점에? 대체 누구를 위한 일이지?" 모든 일은 의도를 가진다. 전략적으로 의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논란 자체를 만들기 위한 게 아니라면 대체 무슨 목적인지 모르겠다. 일을 너무 못하고 있다.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제기는 성공하기 어렵다.
홍범도 장군과 독립운동에 관련된 콘텐츠들이 뭐가 있는지 찾아봤다. 책은 수십 권이고 영화, 드라마, 만화 등 다양하다. 그런데 게임은 찾기가 어렵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열심히 검색색해서 1998년에 나온 <8.15>와, 2020년에 모바일 게임으로 나온 <MazM 페치카> 이렇게 겨우 2개를 찾았다. 다른 매체에 비해 너무 없다. 검색 범위를 넓혀 한국사를 다룬 게임을 찾아봤다. <충무공전>, <임진록>, <장보고전>, <거상> 정도가 자주 언급된다.(추가로 광개토대왕, 천년의 신화, 태조 왕건, 삼국통일, 잃어버린 제국 등이 있다) 90년대 후반 ~ 2000년대 초, 내가 어린 시절 했던 게임에 멈춰 있었다. 이후에 한국 역사를 소재로 한 게임은 개발도 거의 없었고 흥행이 되지 않았다. (몇 달 전 이벤트 형식의 웹 게임 '숨은 독립 찾기',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봅시다'가 반짝 인기를 끌었다)
한국사 게임이 왜 이렇게 없는지 검색해 봤다. 일본엔 많은 역사 게임, 왜 한국은 없을까? 기사를 보면, 게임은 수출 중심 산업이기에 한국 시장만 보고 '한국사 게임'을 만드는 것은 수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는데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다.
한국사를 소재로 하는 만화, 영화, 드라마는 많은데 왜 '게임'만 없을까?
* 게임만 제외하면 한국사는 여러 매체들의 단골 소재다. 너무 많아서 주제를 '항일'로만 한정 짓겠다.
영화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천만 관객을 넘긴 <암살>도 있고 수백만 관객 영화도 여럿 있다. 만화도 꽤 있다. 교육이나 공익 목적의 프로젝트나 기획 작품이 많지만 만화가들이 자진해서 만든 것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드라마는 다른 매체에 비해서는 적다. <경성스캔들>, <각시탈>, <미스터 션샤인>, <녹두꽃>, <이몽> 등이 나온다. 각시탈과 미스터 선샤인은 시청률 20% 내외로 성공한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각 매체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결과를 해석할 수 있다. 우선 영화는 대중매체인 동시에 예술로 여겨지기에 '의미'를 담아내기 쉽다. 애초에 관객들도 영화를 선택할 때 상업성과 동시에 작품성을 따진다. 재미를 추구하는 영화가 아니라는 정보가 있더라도, 의미 있는 내용이거나 관람하는 행위가 의미를 갖는 다면 충분히 선택할 수 있다. (좋아하는 배우가 등장하는 것도 관람의 큰 이유일 것이다) 만화는 다른 매체에 비해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원이 훨씬 적다. 출판 문제를 포함하여 몇 명의 의사 결정만으로도 만화가 탄생할 수 있다. 실제로 허영만, 박시백 등 유명한 만화가부터,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은 여러 만화가들이 마음을 내 항일을 주제로 하는 작품을 출판했다. 드라마는 호흡이 긴 콘텐츠기 때문에 영화나 만화에 비해 재미와 상업성이 더 많이 요구된다. 작품수가 적은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흥행한 작품들이 있다. 항일 주제가 대중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소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한국사를 다룬 드라마는 매우 많다.)
게임은 영화처럼 대놓고 의미를 담아내기는 쉽지 않고 만화처럼 제작이 간단하지 않다. 재미와 상업성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은 드라마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이 많지 않을 수는 있지만 이렇게 아예 없다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한국의 영화, 만화, 드라마를 찾는 사람은 있지만 '한국' 게임을 일부로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게임은 제작사의 국적이 중요하지 않은 콘텐츠기 때문이다. Blizzard가 미국 회사인 것, Ubisoft가 프랑스 회사인 것, CD Project가 폴란드 회사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물론 게임에도 문화적 배경이 담기기는 하지만 거슬릴 정도가 아니면 그게 해당 게임을 선택하거나 하지 않는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게임 제작사 입장에서는 한국 사람들조차도 유입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사 게임을 만들 이유가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한국사 게임이 꼭 있어야 하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경제 규모와 문화적 영향력을 생각했을 때, 그리고 다른 문화 콘텐츠와 비교했을 때, 이 정도로 없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다.
유독 한국 게임은 재미와 상업성에 치중되어 있다. 게임의 작품성으로 승부하기보다는 '캐주얼함'과 '중독성'으로 승부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게임 세계시장 점유율 4위지만 온라인과 모바일 중심이다. 게임의 작품성으로 승부한다고 볼 수 있는 콘솔 게임은 1.7%에 그친다. (이 수치마저도 북미와 유럽의 '검은 사막'(온라인 게임)의 콘솔 유저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한국의 음악, 영화, 드라마는 세계 시장에서도 인정하는 스타와 감독이 있다. 반면 게임 분야에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게임과 제작사는 없다. (크래프톤이 배틀그라운드로 반짝 뜨긴 했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상업적 성공에 더 쏠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갓겜'이라고 인정하는 게임들의 공통점은 재미는 물론이고 플러스알파가 있다. 게임의 경험이 단순한 즐거움, 스릴, 쾌감 이상의 여운을 남긴다. 인기 있는 한국 온라인, 모바일 게임들은 떠올려 보면 재미와 중독성 말고 어떤 플러스알파를 추구하는지 모르겠다. 한국사 소재 게임이 20여 년 동안 없다시피 한 이유는, 장사가 될 법한 시도만 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최근 국산 게임 제작사들의 새로운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 모바일, 온라인 게임 위주였던 국내 게임 제작사들이 연달아 패키지 게임을 출시하거나 출시를 앞두고 있다. 패키지 게임(일정 금액을 내고 게임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출시한다는 의미는 작품성과 완성도로 승부한다는 의미다.
크래프톤에서는 지난해 12월 <칼리스토 프로토콜>을 출시했다. 평가가 그리 좋지 않아 아쉽지만 'KRAFTON, Inc'가 적힌 게임을 플레이스테이션에서 보게 된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넥슨은 <데이브 더 다이버>를 출시하여 역대 국산 게임 중 최고의 메타크리틱 점수(90점)를 받고 100만 장 이상 판매했다. 그리고 다음 주인 9월 19일 출시를 앞둔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으며 기대를 이어가고 있다. 펄어비스는 2019년부터 <붉은 사막>, <도깨비> 개발 소식을 알려왔다. 붉은 사막은 내년 출시를 예상하고 있다. 그밖에 좋은 게임을 만들려는 수많은 인디 제작사의 도전도 현재 진행형이다.
또 하나의 특별한 시도가 있었다. 펄어비스에서 전 세계에서 서비스 중인 MMORPG <검은 사막>에서 조선을 배경으로 하는 새 지역 '아침의 나라'를 23년 3월 말에 업데이트했다. 해외 시장이 주력인 게임이라 이런 도전이 더 의미 있고 멋지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진 않겠지만 제작사들의 새로운 시도를 독려하고 발전적인 피드백을 남기다 보면 멀지 않은 시기에 한국사를 소재로 하는 게임도 등장하고 세계적인 한국 게임도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계속해서 구입으로 응원할 예정이다.
* 참고자료
- 이원희 기자. "[겜문학개론] 왜 한국에는 '갓겜'이 없을까". <데일리게임>, 2020.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