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의사의 한의학 이야기
이번 글은 어느 환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시작하겠습니다. 소화기 치료로 유명한 동네 내과 원장님이 만성 소화질환자에게 약 처방과 함께 권하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자주 걸으라는 조언입니다. 매일 걷기 운동을 꾸준히 하면 소화질환 치유에 효과적임을 그 원장님은 오랜 임상 경험으로 환자들을 통해 터득한 것이지요. 저는 환자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습니다. 한의학 관점에서도 일리 있기 때문이죠.
비주사말(脾主四末). 소화기는 인체의 팔다리를 주관한다는 한의학 이론입니다. 소화기가 건강해야 팔다리의 움직임이 원활하다는 뜻인데 팔다리를 자주 움직여야 소화기가 튼튼해진다는 의미로도 해석되지요. 이는 만성 소화질환자에게 매일 걸으라는 어느 내과 원장님의 조언과 일맥상통합니다.
한의학에서 소화기, 즉 비위(脾胃)는 인체 생리의 중심입니다. 중심 잡힌 물건이 안정되듯이 소화기가 건강해야 인체 생리가 불안하지 않습니다. 오행(五行) 관점에서 소화기는 토(土)에 해당되는데 땅은 모든 사물이 위치하는 터전이니 토에 속하는 소화기는 인체 생리의 기본 바탕입니다. 나무(木), 불(火), 쇠(金), 물(水) 모두가 땅에 존재하지요. 이는 한의학에서도 마찬가지라 간(肝木), 심(心火), 폐(肺金), 신(腎水)은 소화기가 바탕되어야 건강합니다. 실제 임상에서 보면 환자에게 소화기 문제가 없어야 다른 장부의 질환이 빠르게 치유됩니다. 소화 문제가 없으면 중증의 질병도 속히 치유되지만 소화 문제가 동반되면 질환이 경증일지라도 치유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따라서 저는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 소화기를 가장 중시합니다. 처방할 때에 환자가 한약을 제대로 소화, 흡수하는지 관찰하지요. 약효가 아무리 우수해도 환자가 소화, 흡수시키지 못하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입니다. 환자의 소화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처방했다가 그 한약이 환자의 소화력을 저하시키면 치유는 커녕 병세가 오히려 악화됩니다. 한약으로 인해 소화불량이 생겼거나 설사할 경우 복용을 바로 중단시키는 이유입니다.
약물도 음식처럼 인체에 들어가면 소화, 흡수의 대상입니다. 때문에 만성 소화질환자는 약물 자체를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요. 이런 분들에게 걷기 운동을 권합니다. 산책하듯이 천천히 걷는 행위로 비위(脾胃)를 발동시키면 약물을 무리 없이 받아 들일 수 있는 상태로 소화기가 개선되는데 그래야 약물의 약효가 제대로 발휘됩니다. 음식은 물론이고, 약이나 물조차 먹기 부담되는 분들은 명심하세요. 자신의 체력이 허락하는 범주 내에서 매일 걷다 보면 약 복용이 부담 없는 상태로 호전되고, 그 때부턴 약물의 시너지 효과를 얻어 치유에 가속이 붙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화기 질환을 치료하는 비결이지요.
제주 관자재한의원 특진의 손영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