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히 Jul 18. 2023

등산하다가 알게 된 _NFJ들의 공통점

어쩌다 보니 INFJ들과 함께한 2023년 상반기 등산이야기


벌써 23년 상반기가 다 지나가고 하반기를 맞이했다. 작년 이맘때쯤엔 백수의 신분이라 평일 주말 관계없이 등산을 다니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직장인이라 두 달에 한번 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약속을 주말에 몰아서 잡다 보니 4월 이후엔 등산을 한 번도 가지 못한 채 7월이 와버린 것이다. 아쉬운 마음에 올 상반기에 다녀온 등산의 기억을 쫓아 기록해 보겠다.



마음의 든든함으로 올랐던 겨울 남덕유산


올해 2월 초, 헬짱티처(헬스 트레이너 선생님이었던, 지금은 언니 동생하는 친구사이)와 남덕유산을 다녀왔다. 설산이 가고파서 질척거린 덕에 같이 가게 되었다. 눈은 대부분 다 녹은 상태였다. 그래도 바닥에 뿌려놓은 설탕마냥 남겨진 눈의 흔적을 볼 수 있었고 그걸로 만족했다. 항상 남들보다 빨리 입산해도 늘 꼴찌로 내려오는 우리. 이번에도 역시나! 마지막을 장식했다. 분명 뒤처지는 것도 있지만 등산객들을 다 보내고 천천히 내려가는 게 마음이 편하달까. 무엇보다 같이 오르내리는 헬짱티처가 든든해서 그런지 속도가 느려도 조급하지 않다. 이건 아마 헬짱티처보다 훨씬 짧은 다리를 가진 나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른다.


작년 2월 중순, 헬짱티처와 지리산 천왕봉을 올랐었는데 딱 1년 뒤 남덕유산을 또 같이 오르고 있는 걸 보면서 조금 신기했다. 남덕유산을 말없이 헉헉거리며 오르는 도중에 천왕봉 등산을 위해 등산가방을 세트로 맞추고 장비를 이것저것 사면서 설레어했던 때가 떠올랐다. 확실히 올해, 그때보다는 등력이 좋아졌고 여유가 생겼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차가웠고 얼굴을 꽁꽁 싸매고 겉옷을 잘 여미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은 뒤 돗자리를 펴고 컵라면과 김밥을 먹었다. 따스한 햇빛에 몸이 급 노곤해졌고 잠이 밀려왔다. 딱 한숨만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나 그랬다간 아마 입이 돌아간 채 영영 깨어나지 못할지도. 하산을 하다가 헬짱티쳐와 같이 산을 바라보며 '야호~!!!!' 하고 외쳤다. 살짝 부끄럽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였다면 절대 못했을 텐데 이 또한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하산 후 고깃집에서 삼겹살과 함께 시원한 소맥을 마셨다. 이 날따라 술이 너무 달게 느껴졌고 쭉쭉 들어갔다. 우리는 술과 함께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했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느꼈다. 헬짱티처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과 내가 헬짱티처를 생각하는 마음이 닮아있었다.  내 마음을 편하게 얘기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자꾸만 응원하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사람이다.



'운동'과 '건강'에 대한 마음이 진심인 헬짱티처. 늘 배움을 향해가고 도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 또한 좋은 영향을 많이 받는다.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가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럴까. 등산을 가더라도 다른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그런 든든함이 있다. 체격차에서 오는 든든함 보다도 마음의 든든함이 더 크다.


2023년 2월에 다녀온 남덕유산의 기억을 장마가 한창인 7월에 돌아본다. 새하얀 설산은 아니었지만 초록색 나무 위에 듬성듬성 눈송이들의 흔적이 남아있던 늦겨울의 남덕유산도 충분히 멋있었다. 그렇지만 이번 산행에서는 하산 후의 기억이 더 강렬하다. 편한 옷차림으로 삼겹살에 소맥을 마시며 헬짱티처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던 그 시간이 내 마음에 더 따뜻하게 스며들었다.





등산이 10년 만인 친구와 함께한 통영 봄 미륵산


올해 4월 봄, 전직장 동료였던 동생과 통영 미륵산을 다녀왔다. 작년 가을, 동생이 “저도 등산 가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는 순간 꼭 데려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반년이 지난봄이 되어서야 드디어 같이 다녀왔다. 우리는 '미륵사’라는 사찰을 지나 입산을 시작했다. 사찰 입구에는 커다란 겹벚꽃이 만개한 채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초록초록한 나무들 사이에 분홍빛을 띤 벚꽃나무를 보며 한참 동안 사진을 찍어댔다. 이 날은 날씨도 너무 상쾌했고 하늘도 청명하니 맑고 깨끗했다. 남덕유산 이후 2개월 만인 등산이라 그런지 신이 났다. 오솔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며 '이것이 바로 피톤치드인가~'하며 즐겁게 그리고 조금은 힘겹게 산을 올랐다.



등산이 10년 만이라는 그녀. 나는 이번 산행을 꼭 좋은 기억으로 만들어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였고 다행히 그날은 날씨도 뷰도 모든 게 완벽했다. 사방이 바다로 탁 트인 바다뷰가 이때까지 본 뷰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 미륵산은 난이도가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올라갈 수 있다. 처음엔 '크게 힘들지도 않은데 왜 케이블카가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고 보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한려수도의 전경은 단 한 명이라도 더 봐야만 하는 절경이었다. 등산객들만 보기엔 너무나 아까운 광활한 풍경 그 자체였다.


우린 하산을 하며 미륵사에 들렀다. 사진을 찍고 연못에 있는 거북이들을 보며 힐링하는 시간을 가졌다.  열심히 바위를 오르는 거북이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런 우리의 모습이 너무 웃기기도 했고 한편으론 귀여웠다. 퇴사 전에 친해졌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래도 늘 안부를 묻고 주기적으로 만남을 갖는 우리. 하산 후 배말 칼국수와 배말 톳김밥을 먹고 뷰가 끝내주는 카페에서 멍을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둘 다 이런 시간을 좋아하고 비슷한 감성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보다 더더욱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다.



말랑해 보이면서도 강단이 느껴지는 친구. 그동안의 히스토리를 들어보면 대단함이 느껴진다. 하고 싶은 걸 향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응원을 하게 되고 꼭 지금보다 더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 이 친구와 미륵산을 오르며 자연스레 떠오른 사람이 있다. 바로 글쓰기 클래스의 슬기작가님. 원하는 삶을 향해 도전하고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비슷하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남덕유산을 같이 올랐던 헬짱티처, 미륵산을 함께 등반한 전 직동 친구 그리고 그 산을 오르며 떠올랐던 작가님의 공통점을. 모두 MBTI가 _NFJ인 것이다. 이들은 P유형을 가진 나와는 전혀 반대인 계획적인 사람들인데, 하나같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 간다. 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새로움을 느끼고 닮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사실 극강의 P인 나는 전혀 계획적이진 않다. 하지만 나 또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나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서 이들을 보며 힘을 얻는 듯하다.


항상 뭔가를 계획하고 조용히 실행하고 있는 _NFJ. INFP인 내가 이들과 함께 하며 느낀 바를 감히 말해보자면 공감과 배려, 친절이 디폴트로 깔려 있는 유형 같다.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독립적인 시간을 꼭 필요로 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그래서 그런지 누군가와 약속을 계획하고 시간을 내어 함께 하는 것 자체가 이들에겐 친분과 애정의 표시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든다. 정말 고맙게도 말이다.


다시 등산 얘기로 돌아오자면, 나는 함께 산을 타는 것보다는 대부분 혼자 갈 때가 많다. 그렇지만 이번 연도 상반기 등산을 어쩌다 보니 _NFJ들과 다녀온 후 느낀 점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서로의 생각, 가치관을 나누며 오르는 것만의 매력이 있다는 것을. 하나의 욕심을 더 하자면 그 사람들이 등산의 즐거움을 알고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사실 혼자가 낫다고 생각한다. 흥미도 없는데 억지로 끌고 데려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건 꼭 등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모든 것들이 마찬가지다. 이제는 나와의 결이 잘 맞는 사람에게 내 마음을 쏟고 싶다. 그래서인지 내게 먼저 손을 내밀고 또 맞잡을 수 있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더 소중하고 유의미한 시간이 된다. 보이지 않는 마음을 나누고 공유할 수 있는 관계야말로 마음의 등력을 쌓아준다는 걸 알아가는 23년 31.6세가 되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