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히 Sep 19. 2023

혼자 산지 3년 차, 내가 독립을 적극 추천하는 이유

각종 공과금이 무서워도 혼자 살래요.


내가 벌써 자취 3년 차라니. 먹고 자고 한 기억뿐인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렀다. 약 3년 전 교통사고가 크게 났고 차를 폐차하면서 출퇴근이 어렵게 되어 독립을 하게 되었다. 28년을 부모님과 함께 붙어살다가 처음으로 혼자 똑 떨어져 나오는 이 날을 얼마나 상상했는지 모른다. 20대 초반부터 내가 오매불망 바래왔던 순간이었는데 막상 큰 집에 혼자 들어서니 기분이 이상했다.



이삿날 텅 빈 거실에서 하얀 캐리어를 테이블 삼아 라면을 끓여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온갖 잡동사니가 정신없이 널브러져 있는 4인용 테이블을 사용하고 있는 세미 프로 자취러. 퇴근 후 집에 들어오는 순간 테이블을 마주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오늘밤에 치워야지, 내일은 꼭 치워야지, 이번 주말엔 꼭 치워야지’ 마음만 먹던 것들이 그 자리에 쌓여져만 간다. 쓰레기도 번식을 하는 걸까? 전날에 먹은 과자봉지도 복리효과를 누리는 건지.. 정말 의문이다.

혼자 살게 되면서 이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내 책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나의 손을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썩어버린다. 그게 식재료든, 음식이든, 빨랫감이든, 과자부스러기든 뭐든.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왔을 때 엉망진창인 집안 꼴을 볼 때면 내 마음 상태도 덩달아 엉망진창일 때가 많다.



가족들과 같이 살 땐 온전히 쉬는 게 정말 침대 위에서 쉬는 거였다면 지금은 밀린 집안일을 하는 게 쉼이 되었다. 가끔은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빨래망에 빨랫감을 넣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푹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대신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같이 살고 싶진 않지만 집안일만 해주는 우렁각시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엄마라는 존재. 엄마는 어떻게 이 모든 걸 퇴근 후 매일 수십 년 동안 해왔던 건지. 그것도 아무런 댓가 없이 말이다. 머리카락 좀 제발 묶고 다니라던 엄마의 잔소리를 혼자 살고 나서부터 이해했다. 치우고 치워도 끝이 없는 머리카락. '뒤돌면 한가닥'이라는 말이 진짜였다. 차라리 한 가닥이면 다행일 정도다. 화장실에 핀 곰팡이와 물때도 마찬가지. 나는 28년 동안 엄마의 노동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며 살았고 모든 게 당연했다. 정말 철이 없었던 거지.

가족들과 함께 살 땐 매일이 전쟁이었다. 성인이 되면서 머리가 크면 클수록 이해할 수 없는 부모님의 말과 행동이 불편했다. 차라리 혼자 사는 게 관계에 있어 더 돈독할 거라 생각했다. 실제로 살아보니  진짜 그렇다. 더 애틋해졌고 어떤 날은 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통화는 자주 하지 않지만. 혼자 살아보니 엄마 아빠의 잔소리가 괜한 잔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나는 그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지금 가족과의 관계가 좋고 앞으로도 더 좋을 예정이다.



나 혼자만의 공간은 정말 필요하다. 내 취향으로 공간을 꾸밀 수 있고 취미 생활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가끔 힘들어서 울고 싶을 때 엉엉 울어도 누구 하나 보는 사람이 없다. 빨개 벗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샤워실에 들어가도, 혼자 누워서 이상한 성대모사를 해도, 밤 12시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어도, 24시간 음악을 틀어놔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 물론 밀린 집안일과 각종 공과금, 생활비에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지만 내 정신과 몸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 자취생활의 가장 치명적인 매력이 아닐까.


나를 챙기는 건 나뿐이며 그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몸이 아플 때 서럽더라도 정신 차리고 뭐라도 더 챙겨 먹게 된다. 내가 멈추면 이 집의 모든 것이 멈추게 되니까.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오직 자신의 집은 자신이 돌봐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 인생을 책임지며 살고 있다. 그 책임의 무게는 독립을 하게 되는 순간부터 더 와닿게 된다. 나는 단 하루라도 빨리 독립하지 않은 게 아쉽다.



혼자 사는 삶을 정말 추천한다. 그 누구에게 방해받지 않고 온전히 쉼의 공간으로써 나를 보호할 수 있다. 규칙적이진 않아 보이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루틴을 발견할 수 있고 나에 대해 더 알 수 있다. 삶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방법 중 하나가 독립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는 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

.

.


나는 내 집이 너무 좋다.

이 집에 살면서 삶의 큰 일들을 겪어내며 조금씩 단단히 성장하고 있다.

그렇다고 믿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글쓰기 10개월 차, 내가 깨달은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