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상한가? 내가 틀린 걸까요?
각자의 정의대로 행동하는 것뿐이야.
- 왜 내 생각은 다른 걸까요?
- 이대로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 저 면담 좀 요청해도 될까요? "
조심스레 다가온 팀원에게 나는 되 물었다.
" 왜 그래? 뭐 때문에 그래? "
" 이렇게 일 처리 하는 게 맞다고 다들 이야기하는데 저는 이 방법이 너무 강성이고 현세대에는 맞지 않는 방법이니 바꾸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으로 토론을 하면 너무 강하게 아니라고 해서 정말 내게 틀린 걸까? 또 저 방법대로 해서 잘 되면 내가 잘못 생각한 건 아닌지 전 또 후회하고 절 질책하겠죠. 그런데 저 방법이 문제가 있다고 자꾸만 생각이 되어요. "
" 흠,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 나도 네 말에 공감하는 부분이 상당히 있지만 우선 일을 이렇게 추진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고, 당장은 급히 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지금 제동을 거는 건 오히려 역 효과일 것 같아서 동참하고 있긴 하지만 이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아. 일이 끝나고 난 후에는 반드시 다음을 위해 피드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런데 지금은 일을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한 상황이니 잠시 피드백을 멈추는 거야. "
"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하다가는 문제가 반드시 발생될 겁니다. "
" 인정해. 우선은 중요도를 따져서 잠시 말을 아낀 것뿐이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틀린 건 아니야. 너와 내가 생각하는 정의가 비슷해서 내가 동의한 것뿐이야. 결국 각자의 정의대로 각자 자신에게 맞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닐까? 내 정의만 맞다고 할 순 없어. "
우리의 소통이 불통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정의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정의와 다른 사람에 정의는 충분히 다를 수 있다. 사실 대부분에 사람들은 내 생각과 다르다. 단지 내가 귀를 닫고 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내 주위에 두고 있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듣지 못할 뿐인 것이다. 말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나와 충분히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중요도와 남이 생각하는 중요도가 다를 수 있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정의가 타인에게는 아닐 수 있다. 나에게 지켜야 하는 중요한 가치관과 신념이 타인에게는 그다지 삶에 필요 없는 중요하지 않는 부분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다른 생각과 정의를 가지고 살아간다.
"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이해가 안 된다. "
라고 말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사람이니깐 그럴 수 있다. 자신만에 신념과 가치관 그리고 정의를 세울 수 있는 각자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 그래서 역사는 종교문제로 전쟁까지 치르고 목숨까지 던진다. 그건 각자 다른 정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끝까지 지켜야 할 도덕적 윤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윤리는 있을 것이다. 내가 말하는 건 그 너머에 생각과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회사 일이 중요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 난 지금 가정이 더 중요해요.라고 말 할 수 있다. 그건 각자가 가진 삶의 중요도에 문제다. 이걸 이해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에 말이 들리기 시작된다.
또한 하나의 일을 가지고도 어느 부분을 더 부각하고 어느 시각으로 보느냐 하는 관점에 따라 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건 말을 잘 들어야 알 수 있다. 결국 같은 걸 말하고 있는데 나는 이 관점에서 말한 거고, 저 사람은 저 관점에서 말한 것뿐이다. 하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어느 위치에 서서 바라보냐에 따라 서로 말하는 게 다를 수 있다. 즉 같은 코끼리를 말하고 있지만 나는 다리를 부각해서 말한 것이고, 다른 사람은 귀를 부각해서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결국 하나의 같은 코끼리를 가지고 논쟁을 했던 것이다. 이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알 수 있다. 듣는다는 건 상대가 말할 때 다음에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말한 것 중 내가 생각한 부분과 유사한 부분이나 경험을 찾아서 그 부분을 가지고 다음에 내가 할 말을 맞추어서 말할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잘 듣는다는 건 그냥 그 사람에 말을 그대로 듣는 것이다. 내 생각과 경험이나 다음에 할 말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에 말을 집중해서 그냥 듣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아, 결국 같은 코끼리인데 이 사람은 코를 보고 이야기하고 있구나.'라는 걸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 이 사람은 이런 생각을 하고 이런 정의를 내렸구나. "
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다시 생각한다.
" 그래 각자의 정의에 맞게 각자 선택하고 행동하는 거지. "
결국 서로의 삶에 책임은 각자에게 있다. 그걸 내가 강요할 필요도 화를 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회사에는 노조가 있다. 한 번은 노조와 회사가 심하게 부딪쳤다. 본사에 임원들이 나와서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노동자들은 분개하고 있었다. 일초즉발에 상황에서 한 사람이 먼저 건들었다. 그리고 상대는 이에 반응했다. 곧바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보았다. 그 진흙탕 싸움터 정중간에 있는 잔디밭에서 평온하고 서 있는 한 분을 보았다.
' 이분은 도대체 뭐지? '
하는 생각에 나는 쳐다보았고, 그 분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나에게 그분은 말했다.
" 서로 화내지 마요.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하는 거잖아요.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이야기하고 행동하면 되는 거지. 서로 비방할 것도 화낼 일이 아니에요. "
노동자에 입장에서는 자신에 생계가 달렸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 아, 맞네 이게 화 낼 일인가? 저 사람들도 본인들이 맞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한 거고 저게 저 사람들에 정의인 거고, 사실 우리는 각자에게 맞는 정의대로 행동한 거구나. '
나는 조용히 그분 옆에 섰다. 그분은 조용히 내게 말했다.
" 이대로 줄 거 있으면 주고 가면 되고 , 이야기할 거 있으면 이야기하고, 각자 할 말 하고 갑시다. 우리는 그러면 되어요. "
" 네, 그러네요. " 그렇게 전쟁터 한복판 잔디밭에 우리는 멈추어 섰다.
내 정의만 옳다고 생각될 때는 더 이상에 소통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끊어져 버린 소통뒤에는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는 불통에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때부터는 서로 답답해하고 격양되기 시작한다. 그때는 잠시 멈추어 들어 보자.
이 사람은 이런 생각과 정의를 가졌구나.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게 당연한 거 구나.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있는 것처럼 저 사람은 저렇게 살아가는 방식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걸 보게 된다. 그건 대부분 틀렸다고 말하기보다는 서로의 방법이 다른 것 일 수 있다.
내게 와 면담을 요청한 팀원이 조용히 물었다.
" 이대로 이 일이 잘 되면 제 생각이 틀린 걸까요? "
" 서로 간의 생각과 방법이 다르다고 하나는 잘 되고 하나는 못 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냥 서로 다른 거지 틀린 건 아니잖아. 그래서 내 정의만 타인에게 강요할 순 없는 게 아닐까? 내 생각이 틀린 게 아니라 더 큰 대의를 위해 배려하는 마음에 접는 거고, 협업하기 위해 내 정의만 주장하지 않고 물러나 주는 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지금 너의 행동에 대해서는 참 고맙게 생각해. "
내 생각이 중요한 것만큼 타인의 생각도 중요하기에 어느 선에 접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을 맞추기 위해 우리는 대화를 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서로 듣고 다시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우리는 협업을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