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서 가장 두려웠던, 네가 세상에 온 그날.
첫 임신이었던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아기는 그냥 뱃속에서 알아서 잘 자라서 40주가 되면 태어나는 줄 알고 있었다.
임신을 하면 뱃속의 태아가 잘 있는지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26주쯤 방문했던 병원에서 초음파를 보고 의사 선생님은 한 가지 진단을 내리셨다. "아기가 좀 작아요. 머리둘레는 괜찮은데.. 팔 길이, 다리 길이, 복부 둘레도 26주 태아치고는 많이 작아요." 이 말을 들을 때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 큰 성인들도 몸무게가 다 다른데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 "소견서를 써 줄 테니 대학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보세요." 이 때도 여전히 생각이 없었다. '아기가 좀 작은 걸로 대학병원을 가라고? 너무 오버 아닌가..' 그때 나의 머릿속에는 조산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었다. 내 아기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1초도 한 적이 없다. 근데 어쩌겠나, 가라면 가야지. 아무 생각 없는 나와 다르게 아기아빠는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내일 당장 가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병원에 근무하시는 시누형님의 찬스를 받아 내일 산부인과를 바로 예약했다. 나는 대학병원이라는 곳 자체를 살면서 한 번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나와 내 주변사람들이 건강했던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한다) 예약을 해서 가야 한다는 것 자체도 모를 정도로 무지했다. 다음 날, 기나긴 대기시간을 거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나 다시 초음파를 진행했다. "지금 아기가 많이 작고요.. 입원하셔야 합니다." "네?" "오늘 당장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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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좀 작다고 입원을 하라니?
"이걸 저희는 성장지연이라고 말합니다. 태아에게 혈류와 영양소가 정상적으로 전달되지 않고 있어요.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기는 그 부족한 혈류를 가장 중요한 뇌에 다 공급하고 있어서 나머지 신체 부분은 정상적인 발달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겁니다. 조산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 당장 입원해서 지켜봐야 합니다. 그리고 아기를 출산할 때까지 퇴원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내가 지금 꿈을 꾸나? 그때부터 현실감각이 사라졌다. 급하게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입원수속을 밟고 병원복을 입고 침대에 누울 때까지의 기억은 흐릿하다. 중간에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아빠.. 아기가 작아서 나 지금 입원해야 된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첫 손주가 위험할 수도 있다니. 아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항상 차분한 목소리에서 조금 흥분한 듯이 말씀하셨다. "그럼 얼른 입원해!" 얼마나 속상한지 그 마음은 모르고 나도 덩달아 소리쳤다. "할 거야! 지금 하고 있어!" 지금 생각하니 코미디가 따로 없지만 정말 그때의 나는 마취주사를 맞고 움직이는 좀비처럼 멍했다.
입원 후 끊임없는 검사를 거쳐야 했다. 질 초음파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일 중 하나지만 어쩔 수 없다. 수많은 레지던트들 앞에서 실험체가 된 기분을 느끼며 하루에 3번씩 검사를 받았다. 입맛이 전혀 없었지만 하루 3끼 나오는 병원밥을 꾸준히 먹었다. 그중에 내가 제일 싫어하는 시간은 태동검사 시간이었는데 새벽 5시를 시작으로 밤 10시까지 중간중간 계속 이루어졌다. 아프지도 않은데 왠지 그 밴드를 배에 감고 있으면 긴장이 돼서 괜찮던 배에 자꾸 자궁수축이 일어나서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싫었다. 다행이어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싫은 시간도 길지 않았다.
입원을 한 지 4일째 되던 날 밤, 그러니까 아기의 주수가 29주 0일에 접어든 일요일 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태동검사 중이었다. 이 검사만 끝나면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오늘도 자궁수축이 일어난다. 좀 아픈데? 갑자기 간호사가 달려오더니 말한다. "지금 자궁수축이 너무 심하게 일어나서 원격으로 담당의사 선생님이랑 의료진들이 같이 지켜보고 있어요" 아.. 시간이 10시가 넘었는데 집에서도 야근들 하시는구나.. 대단하시다.. 10분 정도 지났으려나, 또 다른 간호사가 달려와서 말한다. "선생님이 지켜보신 결과 지금 제왕절개 바로 들어가야겠다고 하시네요. 아기 심박수가 너무 떨어지고 있어요. 응급상황이에요." 패닉이다. 나는 그 말을 듣고 패닉상태에 빠졌다. 아니 이봐요 오늘이 29주 0일이잖아요. 지금 아기를 꺼내야 한다고요? 내 아기 심박수가 왜 떨어지는데요? 머릿속에 수많은 질문이 왔다 갔다 했지만 겨우 입 밖으로 쥐어짜 낸 질문은 이 한마디였다. "지금.. 아기를 꺼내도 살 수 있나요?" "못 살 가능성이 높긴 해요" 썅년. 그때는 패닉이라 아무 말 못 했지만 지나서 생각해 보니 정말 썅년이다. 엄마한테 아기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하다니. 내가 그 말 때문에 얼마나 무서웠는데. 살면서 그날만큼 무서웠던 날은 아직 없다. 보호자로 병원에 도착한 아기아빠의 말로는 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고 했다. 나도 기억난다. 몸이 나도 주체 못 하게 떨리던 그때가. 나는 마치 수술실이 아니라 단두대로 가야 한다는 말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떨며 두려움에 빠졌다. 숨도 제대로 못 쉬어서 산소호흡기를 끼웠다. 그때 내가 가장 무서웠던 것은, 제왕절개로 내가 잘못될 희박한 확률 때문이 아니라 뱃속에 있는 내 아기가 무사히 세상에 태어날 수 있을지 오로지 그 이유뿐이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오는데, 나는 조산에 너무 무지했으므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노력했다. 아기는 엄마의 감정을 읽으니까. 너무 무서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괜찮다고 끊임없이 세뇌했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괜찮아지기 위해 노력했다. 괜찮아져야만 했다. 뱃속에 있는 아기는 두배로 무서울 테니까.
소변줄을 끼우고 급하게 수술 준비를 한다. 소변줄은 끔찍하다. 머리를 묶고 수술침대에 옮겨져 실려갔다. 나는 그때 아기아빠가 소변줄이든 산소호흡기든 내 몸에 있는 줄을 다 떼버리고 나를 둘러업고 여기서 도망쳐줬으면 좋겠다는 기도를 했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내 시야에 수술대기실 천장을 가져다 놓았다. 밤 12시가 가까운 시각. 복도는 컴컴했고 싸늘했다. 몸이 더욱더 주체할 수 없이 떨렸다. 도망치는데 실패한 내 기도는 빨리 마취로 나를 기절시켰으면 좋겠다로 바뀌었다. 원래 수술할 때 팔을 결박하는지, 떨리는 내 몸을 진정시키고자 결박한 건지 모르겠지만 팔을 결박하고 수술에 들어갔다. 곧 나의 기도가 이뤄지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