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저주를 들어보지 않으신 분?
그렇다면 그분은 아주 유순하고 훌륭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사람일 것이다. 리스펙 한다.
하지만 나는 엄마 가슴에 못을 12개쯤 박은 사춘기를 겪었으므로 엄마에게 '너 같은 애 낳아라'는 말을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는데 과연 내가 낳은 아이는 나를 닮았을까?
5살인 아이는 모르는 사람이 봐도 아빠를 찾아줄 정도로 제 아빠를 쏙 빼닮은 외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귀는 나를 좀 닮은 거 같다. 손발도.
"어머어머, 니 어릴 때랑 똑같다! 저거 문 앞에 앉아서 책 보는 거 좀 봐라"
외출 후 집에 들어오자마자 현관 앞에 앉아 책을 읽는 아이를 보고 엄마는 신기한 듯 말씀하셨다. 나는 초등학생 때 학교에 다녀오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현관 앞에 앉아 그날의 숙제를 모두 끝내기 전까지는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현관 앞에 앉아 있는 아이가 24년 전의 나를 생각나게 했는지 엄마는 신기하단 듯 웃음을 띠셨다.
한창 떼를 쓰는 4살을 지나 더 심해진 5살. 도무지 뭘 원하는지 알 수 없는 짜증 속에 결국 영혼까지 탈탈 털린 모습으로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나면 그런 나를 보고 아빠는 킬킬 웃으셨다. "ㅋㅋ 아삼이 못 이기네. 절대 못 이겨" 나는 괜히 발끈해서 대꾸한다. "원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댔거든?"
한마디로 지랄 맞은 성격의 나를 키우며 해탈하신 부모님은 내가 아이에게 업보(?)를 그대로 돌려받는 것이 꽤 즐거우신 모양이다.
나는 내 아이가 나를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 (지랄 맞은) 성격도 그렇지만 나보다 좀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꿈이 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허리가 약한 것도 예민한 성격도 비염도 모두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하지만 비염은 닮아버린 듯하여 슬프다..)
아이를 낳고 보니 비로소 "나처럼은 살지 마라"하던 부모님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나쁜 건 쏙 빼고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 마음. 그런데 안 닮아도 되는 것들까지 다 닮아버려서 미안한 마음.
"엄마, 사댱해요"
"엄마 예뻐"
나에게 폭 안기며 하는 이런 예쁜 말도,
활처럼 휘며 짓는 눈웃음과 보조개도,
내가 아무리 무섭게 정색하며 화를 내도 "미안해요"하고 사과하는 마음씨와
신나면 흥겹게 춤을 추고 무서운 건 무섭다고 말하는 솔직한 감정표현은 나를 닮지 않은 게 틀림없어 다행이다.
보고 있자면 이 5살짜리에게도 배울 점이 참 많아서 나는 벌써 나 같은 애가 아닌 나보다 나은 애를 낳았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 마음이 10년 뒤에도 그대로이길.
그래서 엄마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엄마.
안타깝지만 엄마의 저주는 실패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