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다와 사이드
[2020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5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유리로 된 출입문에 얼굴을 들이대고 안쪽 동정을 살폈다. 회의실 앞쪽에 기자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내 처지가 버려질 파본이라면 유리문 안에 그들은 정성스럽게 꿰매진 양장본 같았다. 호흡을 가다듬으며 도어락에 출입 카드를 갖다 댔다. 문이 열리자 기자 하나가 내 쪽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비웃음일 줄 알았는데 그가 의외의 상황을 전해주었다.
내가 사무실을 나와 있는 동안 오류를 트집 잡는 기사에 반박성 글들이 달렸다고 했다. 불이라도 붙은 듯 동조성 댓글이 늘더니 상황이 역전되면서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설전으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원음주의, 라는 말이 등장했는가 하면 외래어 표기법 과연 이대로 두어도 되나, 그것이 습관을 강제로 바꿔야 할 만큼 대단한 원칙인가, 라는 의견이 상당수였다. 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렇게 불러라 저렇게 불러라 하면 그것이 표준어가 되는 망할 세상이라며 흥분했다.
일부 흥분한 누리꾼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로 자리를 옮겨 혈전을 벌였다. 핫한 댓글들을 읽다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
나는 이제 세상의 중심
그 무엇도 나를 멈출 순 없어
물러설 곳은 없어 한 가지만 생각해
때려서 넘기는 것 뿐야
바로 이거야
누군가의 낙서 같은 글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처럼 보였다.
앞뒤 맥락도 없는 짧은 문장에 붙들려 나는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곤 곧 그게 달빛요정의 노래 가사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내가 그의 노래에 위로받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학계에서는 때를 만나기라도 한 듯 원음주의에 반대하는 소견들을 내놓기 바빴다. 논란이 사그라든 건 한국의 영화감독이 프랑스의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최고의 상을 거머쥐었다는 뉴스 속보가 뜬 뒤였다. 한국 영화 역사 100년 만에 처음 이룬 쾌거였으므로 그의 수상 소식은 순식간에 포털을 달구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몇 달 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4관왕을 휩쓸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거라는 것까지는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다. 어찌 됐건 그를 다룬 뉴스와 영상들이 웹을 메우면서 지난 이슈는 싱겁게 잊혔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사람들의 관심은 그리로 몰렸다. 우리 쪽에선 지면에 정정 기사만 올리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팀장은 나를 조용히 부르더니 실수는 여기까지라며 단단히 못을 박았다.
이후에도 신문사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은 끊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실수에 대한 문책을 받거나 책임을 져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세계적으로 치명적인 감염병이 창궐하면서 국내에서도 감염자가 늘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습관처럼 매인 일상만큼은 변함없이 흘러갔다.
은성 씨 입에서 격려 비슷한 말이 나온 건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뒤의 일이었다.
민형 씨. 앞으로도 그렇게 힘내시면 돼요.
내가 보는 두 번째 웃음이었다. 저기요, 가 아닌 내 이름을 불러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은성 씨가 그랬던 이유를 머지않아 알게 되었다. 얼마간 기약 없는 휴식기를 갖기로 했다는 것인데. 건강상의 이유였지만 나는 더 알려고 들지 않았다. 은성 씨라면 뭐든 잘 이겨내리라 믿었고,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난다고 해도 그때처럼 환하게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후임이 은성 씨의 자리를 대신했다. 잠깐의 어수선함이 있긴 했지만 모두 곧 자신의 자리를 찾은 듯 익숙해졌다. 조안은 여전히 일에 묻혀 바쁜 중에도 예의 그 해맑은 웃음을 흘리며 사옥을 쏘다녔고 가는 곳마다 시끌벅적한 흔적을 남기고 다녔다. 은성 씨가 편집부 사무실을 나가던 날 그녀의 책상 위에는 쓰다 만 핸드크림 하나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걸 내 책상 서랍에 넣어두었다. 서랍을 열 때마다 묵직한 파우더 향이 스며 나오면 기분이 좋아졌다.
새로운 후임에게는 은성 씨가 내게 그랬듯 이런저런 규칙들을 일러주었다. 어디서든 새롭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이 규칙의 특성이었으므로 경력자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임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톡톡 쏘아붙이던 은성 씨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들려주었다. 조금 틀리면 어때요, 라고.
신문사 일이 끝나면 집까지 마냥 걸었다. 비타민 D가 우울감에 좋다는 기사를 본 뒤로는 웬만하면 해가 있을 때 걸어 다녔다. 주말이면 집 근처 공원을 느리게 거닐며 볕을 쪼였다. 한동안은 아무 생각 없이 작정하고 바깥을 쏘다녔다. 집에 돌아오면 여전히 쓰고 지우는 일들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전처럼 백스페이스를 눌러대진 않는다. 어떤 글이든 끄적이는 나로 하여금 시간을 건너게끔 했고, 햇볕을 쬐는 날이 늘수록 뭔가에 사로잡히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친 듯이 먹어대지도 않았다. 적당히 배가 불렀을 때 뇌에서 기분 좋은 기운이 분비된다는 것을, 그런 걸 오랫동안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에 조금은 다른 내일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