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보는 이유

by ㄹ ㅣ

지난 늦여름쯤 우리 가족은 양평까지 은혜님과 영남님의 부부 전을 보러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멀리까지 간 김에 유명하다는 맛집에서 장어구이도 먹고 물안개가 신비로운 두물머리도 들렀는데 엄마가 다음에 또 오자고 할 정도로 퍽 좋아하셨다. 사실 이전에는 가족들과 전시를 가본 적도 없었고 나 역시 전시를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어서 양평까지의 짧은 여행은 꽤나 실험적이고 낯선 도전이었으나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못할 일도 아니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마침 최근에 전시를 다니는 재미에 눈을 뜬 게 큰 계기가 되었다. 그렇듯 만족스러운 경험들을 통해 전시를 볼 때 꼭 대단한 배경지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예술계에 조예가 깊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런 것보다도 눈앞에 놓인 작품을 들여다보며 그것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순수한 호기심이야말로 전시를 보는 데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그렇지만 나보다도 전시와 거리가 먼 동생과 엄마에게 대뜸 전시를 보러 가자고 하는 데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나마 다행히 소 뒷걸음치다 쥐를 잡는다는 말처럼 가족들이 모두 은혜님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 작가 소개를 건너뛸 수 있었다.


전시장에 도착하니 웬일인지 고소한 기름냄새가 먼저 맞아주었다. 전시 마지막날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한 차례 왔다 간 느낌이었는데 한쪽에 아직 따뜻한 배추전이 일회용 접시에 담겨있었다. 인천에서 양평까지 중간에 휴게소도 가지 않고 커피 음료만 마시다가 도착해서 그런지 노릇하게 구워진 배추전을 보자 갑자기 허기가 지면서 군침이 돌았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배추전을 새콤한 간장에 찍어 입에 넣고 아삭아삭 씹으니 장시간 같은 자세로 굳었던 몸에 따뜻한 활기가 번졌다. 말없이 몇 점을 더 먹다가 몇 번을 권해도 입을 안 데는 동생을 마땅찮게 보고 있는데 엄마가 참 맛있다며 깨끗하게 접시를 비우셨다. 내가 구운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어메이징 아웃사이더 아트센터는 발달 장애인 예술가들의 아뜰리에인데 전시는 1층에서 열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가 아담해서 살짝 아쉬웠지만 오히려 그 점이 엄마와 동생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전시 입구에는 은혜님이 입었던 웨딩드레스, 가족들의 사진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많은 매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인물로 소개되었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견뎌왔던 지난날들이 언뜻 겹쳐 보이기도 해서 괜히 더 뭉클한 감정이 밀려왔다. 한편 은혜님은 내가 예술가를 동경하는 가장 큰 이유인 삶의 결핍과 상처들을 창작이라는 형태로 승화시킨 전형적인 예술가 중에 한 명이어서 더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었다.


직관적이면서 솔직하고 순수한 부부의 작품들을 보면서 이 그림들을 그리며 창작의 고통에 웃기도, 울기도 하면서 수많은 한숨을 내쉬었을 두 분의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서로를 의지하고 지탱해 주며 성숙해질 부부의 새로운 작품이 기대되었다. 그림을 얼추 다 봤을 때 주변을 살피니 엄마는 굿즈를 구경하고 있었고 관심이 영 없는 것 같던 동생은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나중에 카톡 프로필 사진을 전시 그림으로 바꿔둔 걸 보고 내심 뿌듯했다. 그러다 내가 전시를 다니는 이유를 한 번 더 상기했다.


작가들이 노력과 심혈을 기울여 구축해 낸 세계를 보며 작품 그 자체의 완성도와 작품성에 매료되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경지에 오르도록 자신을 예리하게 깎아냈던 단단한 내면이 느껴지기에 전시를 좋아한다. 더불어 가족들에게 전시를 보러 가자고 한 내 본심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 또한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고 어렵다는 걸 모르지 않으면서도 적어도 창작의 고통보다 기쁨이 더 크다는 걸 알기 때문에 엄마에게도, 동생에게도 있을 내면의 창작욕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꼭 많은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작품이 아니어도 자신의 인생을 녹여낸 이야기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정화할 수 있다.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롯이 혼자 있는 순간에도 외로움에 괴로워하기보다는 자신이 아니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이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몰입한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단단하게 자리 잡게 되면 사회에서 부여받는 가면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신이 창조한 진정한 자아라는 존재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작가들의 작품들을 하나씩 살펴보며 먼 훗날 내 이름을 내건 전시를 상상해 본다. 관람객들의 신랄한 평이 걱정되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나를 거쳐 나온 내 것들이 좁은 방구석을 벗어나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것들이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는 순간 말이다. 물론 지금은 그런 빛나는 순간이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계속 글을 쓸 거라 마음을 먹었지만, 가능하면 앞으로 엄마와 동생의 창작욕을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자주 함께 해보려고 한다.

일요일 연재
이전 22화1년간의 봉사활동이 남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