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림책을 만들 줄이야

by ㄹ ㅣ

“모든 아이는 본래 화가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나이를 먹어서도 화가로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꽤나 큰 울림을 준 말이다. 찾아보니 피카소가 남긴 명언이다. 나 역시 어릴 적 화가를 꿈꾼 아이들 중 하나였기에 더 와닿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꿈을 간단하게 포기해 버렸던 순간 또한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어린 시절 아빠는 자주 술자리에 나와 동생을 부르시곤 했는데 그날도 아빠와 지인분의 술자리에 합류했던 날이었다. 포장마차여서 사람들의 얼굴이 주황빛으로 둥둥 떠있었고 간간히 커졌다가 작아지는 어른들의 웃음소리와 뭉근하게 퍼지는 음식냄새에 잠이 달아나는 걸 느끼면서 어쩐지 신이 나 있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아빠가 뜬금없이 물으셨다. 기대감에 찬 눈으로 지그시 나와 동생을 바라보시는 아빠를 보며 나는 마치 알고 있던 질문에 답하는 학생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화가.” 그러자 아빠는 장난스럽게 얼굴을 찌푸리면서 “화가는 돈 못 버는데?” 하곤 소주잔을 비우셨다. 그 뒤에 더 대화가 이어졌던 거 같긴 한데 기억엔 없다.


그렇게 나는 간단하게 화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접었다. 이전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저 좋아서 그림을 그렸지만 그날 이후로는 학교 숙제가 아니면 그리지 않게 되었다. 같은 상황에 다른 아이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누군가는 조용히 계속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는 오기가 생겨서 더 적극적으로 그림에 몰두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때 나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긴 했지만 간절하진 않았다. 다행히 아빠는 그 이후로 내 진로나 꿈에 있어서 어떤 판단이나 평가를 하거나 강요하지 않으셨다. 엄마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나는 아주 가끔씩, 드문드문 연필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을 그릴 때 느꼈던 순수한 기쁨을 다시금 느끼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단지 그리고 싶다는 생각만으로는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는 그랬다. 부릴 수 있는 게으름을 최대한 다 부린 뒤에 못 이기듯, 책상 정리까지 마친 다음 미룬 숙제를 하듯 겨우 시작할 수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인데도 늘 그 모양이고 현재도 그 버릇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글쓰기도 다르지 않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니고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면서 올해 초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들은 건 오로지 창작활동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오래도록 지속하기 위해서였다.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대부분의 수강생이 미술 전공을 하거나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등 현업에서 그림을 그리는 분들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림책 클래스를 통해서 그림 실력을 키우거나 뭔가 대단한 결과물을 바란 건 아니어서 부담은 없었지만 객관적으로 다른 분들의 그림에 비하면 내 그림이 꽤나 부끄러울 수 있겠다는 정도의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약간 주눅이 들긴 했지만 일단 어찌 되었든 끝을 맺어보고 싶었다. 최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들을 곱씹으며 몇 편의 단상을 정리했고 그중 이미지화에 적합하면서 그나마 완결성이 있는 이야기를 하나 골랐다. 스토리보드를 그릴 땐 아무래도 구도나 연출을 신경 써야 했는데 다른 수강생들의 작업물이나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의 작품들을 보면서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또 첫 그림책이니 너무 많은 고민은 하지 않되 의도 전달에 집중하기로 했다. 중간중간 선생님, 수강생들과 작업물의 진행도를 공유하면서 혼자였으면 결코 생각지도 못했을, 서로 도움이 될 만한 피드백을 주고받은 덕분에 내 그림책이 전하고자 했던 바를 더욱 또렷하게 발전시킬 수 있었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수업에 참여하는 수강생들의 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다 막바지 수업에는 수강생 3분의 1 남짓만 모였고, 원래대로라면 마지막 수업날 인쇄된 그림책을 함께 보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선생님께서 마감을 미뤄주셨다. 그러면 조금 여유로워졌을까?


내 그림책은 분량도 적은 편이고 그림도 단순한 데다 배경까지 거의 생략해서 쉬운 편에 속하는 작업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림이 단순하다고 해서 결코 쉽게 그려지지도 않는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나는 늦은 밤까지 그림을 그려야 했다. 어떤 색 조합이 좋을지 챗지피티한테 추천을 받기도 하고 선 하나를 그릴 때도 참고할 좋은 레퍼런스를 찾느라 시간이 걸렸다. 선생님이 야작을 하는 분들도 많다고 하실 때 나와는 무관한 일처럼 태평하게 웃었는데 말이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그림을 그리다 말고 진지하게 자문하고 다시 그리길 반복했다. 솔직히 그림책은 있으나 없으나 내 인생에 크게 영향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걸 이렇게 괴로워하며 하고 있나. 그럼에도 이왕 시작을 했으니 이 녀석을 제대로 된 책으로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우두커니 남아 있었다. 마감날이 다 되어서야 그림을 스캔한 뒤 pdf 파일을 만들 수 있었다.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크게 신경 쓰이는 정도가 아니면 그냥저냥 넘어갔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결과물이 기대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내 눈에 다른 수강생분들의 그림은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 걸려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고 빛나는 재능을 보면서 괜한 부러움도 스멀스멀 올라왔는데 그보다도 한때 나를 스쳐갔던 화가의 꿈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그들의 노력과 열정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뭔가를 해야 하는 때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림책을 만들 거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또 몇 개월 뒤에는 지금 생각도 못한 무언가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것이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길, 진심으로 원한 일이길 바랄 뿐이다. 그럴 때 결과에서 벗어나 과정을 오롯이 즐기고 그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게 될 테니까. 그런데 일단 뭐라도 시작만 하면 어떻게든 할 것 같은데 그 시작이 왜 이렇게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살면서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는가 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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