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025년도 이제 몇 주 남지 않았다. 새해에 설레면서도 나름 진지한 마음으로 방 안 곳곳에 기록용 달력을 붙여두었는데, 거기엔 지키고 싶은 습관들을 적어두거나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표시해 두었다.
그러다 3월쯤 야심 차게 품었던 기대는 어딘가로 쏙 들어가 버리고 앞으로 채워가야 할 공백들을 보면서 어서 시간이 흘렀으면 하고 한숨을 내쉰 날들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기다리던 연말이 다가오니 어쩐지 싱거운 기분이다.
열심히 하고자 했고 노력도 했지만 마음만큼 따라주지 않은 부분이 있었고, 칭찬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고쳐야 할 것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뭐랄까 엄청 뿌듯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엄청 후회되지도 않는 미적지근한 한 해였다고 자평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2025년 가장 큰 목표였던 두 가지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다. 나의 첫 번째 목표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이었다. 삶을 바꿀 만한,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상을 주도적으로 보낸다는 것에 꽤나 큰 의미가 있었다. 가장 오래된 루틴은 어느새 7년 차에 접어든 30분 공원 걷기 운동이 있고, 2025년에는 성경 필사와 30분 영어 원서 읽기를 시작한 것이었다.
또 그사이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와 필요들로 기상 후 15분 명상과 간단한 맨몸운동, 영양제 챙겨 먹기가 추가되었다. 아무리 작고 사소한 습관이라지만 뭐든 매일 꾸준히 하기가 참 힘든 법이다. 그래서 루틴관리용 무료 어플의 도움을 받기로 했는데 확실히 기록을 통해 오늘 해야 할 일을 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편했고, 지난 기록도 쉽게 볼 수 있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동기부여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목표는 꾸준히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번연도 초에 브런치북을 처음 발행하면서 한 해 동안 되도록 중단하지 않고 에세이를 올려야겠다는 나름의 다짐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향한 의심이 올라왔던 그 순간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걱정과 의심에도 불구하고 바빴던 달의 경우는 글을 올리지 못한 적이 몇 번 있었지만 나의 브런치북은 멈추지 않고 이어져 어느새 12월에 다다랐다.
에세이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늦여름부터는 생각만 하던 시나리오 수업을 듣게 되었다. 결과물의 퀄리티와는 상관없지만 꼬박꼬박 과제를 제출하고 성실하게 100% 출석을 이루어냈다. 마지막까지 엎어지고 뒤집어지던 시나리오는 여전히 아쉬웠고 감독님께서 꼭 완성을 해보라 응원해 주셨지만 솔직히 마지막 수업 이후로 다시 열어보질 못했다.
그럼에도 새롭게 배운 것들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와 결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비록 많은 관객들이 열광하는, 능력 있는 감독 깜냥은 되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쓴 각본으로 영화를 만들어 볼 작정이다.
여기서 끝날 줄 알았겠지만 이번 해는 은근히 부지런을 떨었다. 늦봄에서 초여름까지 매일 조금씩 단편소설을 썼던 것이다. 오롯이 혼자인 어느 밤 시간,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와 간간이 들렸다가 멀어지길 반복하는 배경음악만 곁에 두고 내 머리와 마음에서 빚어낸 장면들에 언어를 입혔다.
정확하진 않지만 4~5년 전에 쓴 이후로 소설은 오랜만이었다. 그래서인지 더 재밌는 듯도 했으나 언제나처럼 글 쓰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언제부터 내 안에 들어왔는지 가늠조차 못할 정도로 오랜 시간 쌓이기도, 흐르기도 하면서 나와 함께한 작은 기억과 영감의 조각들이 기특하게도 글감이 되어주었다. 잘 따져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지고 다소 가려진 부분들이 있어서 썩 명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순전히 마음이 가는 대로 옮겨 적었다.
그리고 11월 말, 아마도 세 번째 자식인 것으로 추정되는, 내 단편소설을 신춘문예에 응모했다.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체념하면서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올해는 글도 쓰고 성실하게 살았다는, 나 자신에게 보내는 증표쯤으로 여기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 사실 수상을 하거나 팬이 없더라도 이미 글을 쓰는 순간에 그 어떤 기쁨보다 더한 기쁨을 얻었으므로 그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해야 더 맞는 말일 테다. 그렇다면 2025년은 모범납세자 정도는 이룬 셈이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썩 괜찮은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자 왠지 코 앞에 닥친 2026년도 잘 보낼 수 있으리라는 근자감이 차오른다. 그래, 이 정도면 선방했다. 2025년.(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