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엄마와 두 번째 데이트를 했다. 한 달 전쯤 공원에서 걷기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다 가끔 눈에 들어오던 가로수 배너에 눈길이 멈추었다. 환하게 웃는 김창옥 씨의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방송에서 워낙 자주 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도 유튜브를 통해서 영상을 찾아보고 했기에 친근감이 느껴졌다.
검색을 해보니 마침 토크쇼가 가까운 공연장에서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엄마와 공연을 보러 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였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바로 몇 주 전쯤 진지하게 엄마와 함께 무슨 공연을 보면 좋을지 찾아보다가 트로트 장르의 일명 성인가요 콘서트를 알아보자니 취향이 다른 나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공연을 즐기지 못할 것 같아 조금 망설여졌었다. 그런데 토크쇼라면 엄마도, 나도 부담 없이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더 고민하다가 엄마에게 여쭤보니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그렇게 토크쇼 날짜가 다가올 때쯤 나는 엄마에게 일정 확인 겸 약간의 압박을 하기 시작했다. 곧 공연을 보러 가야 하니 다른 일정은 잡지 마시라, 티켓이 비싼 데다 지금은 환불도 받지 못해서 꼭 가야 한다라고. 아니나 다를까 걱정했던 대로 엄마는 토크쇼 전날 안 가면 안 되겠냐고 하셨다. 그 주에 감기가 걸리기도 했고 거기다 술을 마시는 바람에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도 이유였지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함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이전에 해본 적이 없는 걸 시도한다는 건 누구에게나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게 나에게 도움이 되거나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일지라도 말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부터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에 경험 부족으로 성인이 되고 나서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하는 데에 큰 거부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런 엄마의 태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밀고 나가야 할 때는 저돌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반 회유, 반 짜증을 내며 어찌어찌 엄마를 공연장까지 모시고 갔다. 지난번 첫 데이트 이후로 오랜만의 만남이기도 하고 단풍도 예쁜 가을이라 사진도 많이 남길 기대를 하면서 엄마가 최대한 멋을 부리기를 바랐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이유로 엄마는 평상복으로 나오셨다. 냉정하게 내가 부유했더라면 근처 백화점에 들러 엄마의 옷을 새로 사드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상이 중요한 만큼 현실 또한 못지않게 가치가 있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엄마의 편해 보이는 옷차림이 조금 아쉬웠을 뿐 어렸을 때처럼 창피하진 않았다.
우리는 먼저 점심을 먹었다. 원래 가려던 맛집은 오픈런에 실패하고 웨이팅이 길어서 포기해야 했다. 그러다 같은 건물에 있는 한식집을 들어갔다. 엄마는 먹는 음식마다 별로라며 불만을 나타내셨고, 듣다 듣다 나는 엄마가 늦어서 오픈런을 못한 거라며 한 마디를 뱉고 말았다.
다음으로는 미리 알아두었던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는 엄마의 취향에 맞춰 종류가 다른 크림커피 두 잔을 시켰다. 흑임자 크림커피를 처음 마셔본 엄마는 커피가 참 맛있다고, 이렇게 맛있는 것도 먹어줘야 한다며 칭찬하셨다. 내게도 맛있는 커피였다. 요새 엄마와 맛집에 가거나 다양한 음식들을 먹게 해 드리면서 느끼는 거지만 행복은 정말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토크쇼는 기대했던 대로 좋았다. 게다가 1층 뒤쪽 자리였는데 생각보다 가까워서 굳이 모니터를 보지 않아도 김창옥 씨의 얼굴이 잘 보였다. 그는 인간미 넘치고 재미난 말솜씨로 간간이 삶의 지혜를 공유하면서 프로답게 자연스러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공연 중반쯤 되자 엄마가 졸기 시작했다. 두어 번 깨우다가 차라리 잠깐 눈을 붙이는 게 나을 거 같아 두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엄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공연장을 나온 우리는 센트럴파크를 걸었다. 최근에 산 필름카메라를 처음으로 개시했는데 노출이며 초점이 제대로 됐을 리가 없어서 결과물은 썩 자신이 없지만 그래도 계획했던 것처럼 단풍과 엄마를 사진으로 남길 수 있었다. 공원을 걸으면서 토크쇼는 어땠는지 감상을 나누거나 저 예쁜 단풍 좀 보라며 소리치고, 여기서 사진을 찍자고 손짓하기도 하면서 꽤나 그럴듯한 가을날을 보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엄마와 나는 함께 있는 게 어색하지 않다.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