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JJ봇 01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운아 Sep 09. 2023

1. Alex와 알렉스의 판교 첫 만남

  “알렉스?” 


  PM이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두 명의 알렉스가 동시에 반응했다. 작년에 영국에서 이곳으로 입사한 알렉스와 이곳에서 근무한 지 이제 4년 된 알렉스였다. PM이 누구 하나 이름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얼굴로 ‘남현’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그렇게 ‘남현이’는 새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지난 4년 동안 써 온 ‘알렉스’를 버리게 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긴급하게 결정됐다. 경쟁사 챗GPT의 열풍이 예상보다 강했고 이런 격동의 흐름에서 뭔가 획기적인 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한국에서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이 기업이 미국 빅 데이터 기업에 모두 잠식당할 거라는 우려가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AI 스피커, 기계 번역 앱 등 인공지능이 결합한 서비스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그것으로 시장의 획기적인 반응을 끌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전사 차원에서 수행 중인 프로젝트를 모두 점검한 결과 아웃풋이 부실한 프로젝트는 과감히 중단됐다. 거기에서 살아남은 프로젝트가 PM이 상부에 계속 진행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이었는데 바로 알렉스와 남현이가 모인 지금 이 프로젝트였다. 

부밍북 제작: AI 생성 이미지 

  언제까지 사람들이 SNS에 올라온 풍자 드라마를 보면서 웃는 것에만 만족해할까 하는 PM의 의견에 남현이와 알렉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스, 그는 꽤 괜찮게 생긴 녀석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매혹적인 생강빛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한국에 온 지 이제 1년이 좀 지났는데도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처음 치자마자 바로 5급을 딴 인재였다. 그는 포토 그래픽 메모리 소유자여서 한 번 보면 모든 것을 사진처럼 생생하고도 정확하게 기억했다. 이 회사의 고급 인재 유치 정책에 걸맞은 직원이었다. 무엇보다도 진짜 알렉스인 그가 뛰어난 건 ‘에스앤에스’라고 PM이 언급한 콩글리시를 ‘소셜 미디어’라고 잘도 알아서 이해했다. 괴물 같은 녀석임은 틀림없었지만 남현이는 자신이 변화에 적응하는 데는 남다른 능력의 소유자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여유를 가졌다. 남현이의 회사 정체성인 ‘알렉스’를 진짜 알렉스한테 빼앗겼지만 그런데도 남현이는 그것을 결코 불쾌해한다거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인식해서 경계심을 내비친다든가 하는 먼저 입사한 자로서의 텃새를 내보이지 않았다. 이 회사는 남현이의 홈그라운드에 세워졌다. 그것만으로도 남현이가 여유로울 이유가 충분했다.      

  ‘프로젝트명 J봇’ 


  말하는 AI 스피커, 단순 상담 지원 챗봇도 그럴싸해 보이지만 결국 메타버스와 같은 기술일 뿐이다. 굳이 사용하지 않아도 생존에 문제없는 장황한 솔루션은 마케팅용일 뿐이다. 우리 회사는 뭔가 다른, 기본 이상의, 생존에 꼭 필요한 솔루션으로 ‘J봇’을 살려야만 했다. J봇은 단순히 음성 지원만 하는 스피커에 불과한 로봇 인형이었다. 사용자가 일상 대화를 시도하면 거기에 응답하는 고작 그런 솔루션이었다. 이를 뛰어난 대화 생성 AI 로봇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J봇이 일상 대화를 잘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특수 목적 언어에 능통해야 했다. PM은 대화 생성 AI 로봇이 잠재적으로 인기가 높아질 거라고 내다봤다. 전화 대화조차 힘든 젊은 세대에게 직장 생활이라는 건 고통의 연속이었다. 밥그릇 싸움만큼 치열한 것은 없다. 밥그릇을 쥐고 끝까지 버텨 내야 하는 경력직 직장인과 그런 기성세대와 협업해야 하는 사회성이 떨어지는 새내기 직장인은 서럽다. 오직 직장인만을 위한 강력한 생존 도구를 우리가 완성해야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였고 J봇의 업그레이드 당위성이기도 했다.


  문제는 데이터 모으기였다. J봇의 콘셉트를 따르려면 직장에서 발화된 자연어 데이터를 구해야 했는데 민감한 사안도 많고 해서 관련 언어 데이터를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다. 우리 회사는 상대적으로 민감한 사안이 덜 포함돼 있고 덜 중요한 부서의 부서원 참여를 권고했다. 반발이 생겼지만 인센티브 우선 지급, 실적 압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근무 조성과 같은 다소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웠다. 그리고 우리는 사내뿐만이 아니라 외부 용역 업무를 맡긴 파견 회사에도 자연어 데이터 제공을 은연중에 요구했다. 그곳에는 대부분 비이과생 출신이 근무했다. 그러나 이것으로도 부족함을 느낀 나머지 우리 팀은 자사가 운영 중인 포털에 실린 직장인 관련 인터넷 기사와 동영상 서비스 밑에 달린 댓글 모두를 수집했다. 직장과 관련이 깊은 특수 목적 문어와 구어를 닥치는 대로 흡수했다.     

 

  구체적으로 J봇을 어떻게 업그레이드할 건지 알고리즘 구성을 위한 논의에 착수했다. PM은 말없이 알렉스와 남현이의 의견만 경청했다. 남현이가 먼저 J봇 업그레이드를 위한 콘셉트를 이야기했다. 요즘 인기가 많은 익명 직장인 앱처럼 J봇이 기기 이용자나 다른 사람들이 쓴 고민 글에 달린 수많은 댓글 중에서 핵심만 추출한 후에 이것을 ‘대사’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이 솔루션은 ‘텍스트 요약’을 위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음성 로봇이 해법을 답안지 읽듯이 조언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했다. 마치 자의식이 있는 존재처럼 J봇이 사람처럼 문장을 생성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예를 들면 ‘혼자 사는데 상사가 집들이해야 한다.’라고 요구하는 문제를 이용자가 J봇에 대고 말만 하면 그걸 어떻게 거절해야 하는지를 J봇이 문장에 감정을 넣어 대답해 준다는 식이었다. 물론 로봇의 목소리 톤과 어조도 사용자가 직접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PM은 남현이의 발표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현이가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남현이 눈에는 진한 주홍빛으로만 보이는 그 생강빛 머리카락의 알렉스도 PM처럼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좀 따뜻하게 냉정해 보였고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았고 종국에는 또렷하고 명랑한 발음으로 말했다. 


 “남현, 발표는 훌륭해. 대단하다고. 좋았어. 하지만 할 말은 해 줘야 할 것 같아. 남현이 지금까지 발표한 것은


 그냥 여러 사람의 지식을 합쳐서 말로 출력한 것일 뿐이야. 기존의 J봇 AI 스피커랑 똑같은 거야. 지금 주목받


고 있는 챗GPT도 사실 그런 콘셉트야. 아무튼 남현이가 설명한 건 업그레이드된 대화 생성 AI 로봇이 아니라


고.”      


   PM은 이번에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남현이는 이상하게도 PM이 고개를 끄덕일 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남현이는 알렉스의 차갑지만 부드러운 지적이 듣기 싫지 않았다. 물론 알렉스가 PM처럼 왜 고개를 끄덕이는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남현이는 자신이 완벽히 틀린 헛소리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걸 느낄 새 없이 알렉스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알렉스는 챗GPT에 대해 뭐라 설명하는 것 같았다. 그는 런던 지역을 중심으로 통용되는 용인 발음 구사자인 것 같았다. 남현이는 이런 게 말로만 들었던 포쉬 잉글리시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냐하면 알렉스가 내뱉는 영어 아무것도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남현이가 강남역 근처에서 성업 중인 토익 학원에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는데 영어가 이렇게 다를 수 있다고 하는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깔끔하게 말하던 알렉스는 남현이의 표정을 보고는 멈췄다. 


 “영국 사람 모두가 RP를 하는 건 아니야. 단순히 물을 ‘오터’라고 발음하는 걸로 RP라고 부르지 않아. RP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영국 사람 중에서도 몇 안 되고 RP는 따로 배워야 해.”      


   알렉스는 눈치가 빠른 녀석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영어로 말하는 대신 펜을 들어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다. 그리고 왼쪽 동그라미가 좌변, 오른쪽 동그라미가 우변이라고 말했다. 남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현, 우리는 개발자야. 언어 장벽은 중요하지 않아.”


 “알렉스, 우리가 프로그래머라는 말이지?” 


 “맞아.”


 “개발자라는 말은 어디에서 배웠어?”

 

 “여자 친구가 영어 전공한 한국어 강사거든.”

 

두말할 필요 없이 알렉스는 난 녀석이기도 했다. 회의 내내 침묵을 지키던 PM이 한마디 함으로써 회의는 끝났다. 


 “프로젝트명은 JJ봇으로 수정한다.”          



-2화로 이어집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