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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노키오 Nov 12. 2022

(시) 가장

아버지가 벗어놓고 가신 옷

대부분 불살랐지만

차마 태우지 못한 겨울 코트

십여 년 묵은 겨울 코트

장롱 속 혼자 있는 동안

뒷방 늙은이처럼 혼자 늙어서

등판이며 앞자락, 소매까지

까칠까칠해진 겨울 코트

의류 수거함에 넣기도 뭣하고

새삼 불에 넣기도 뭣하여

동파 방지 수도 계량기에 둘렀다

어른이 입던 옷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계량기 구석구석 단속하여

단추까지 채웠다, 누가 봤으면

진즉 태워버리지 가지고 있었냐고

혀를 찰지도 모르는 아버지 코트

물끄러미 바라보니

한파에 수돗물 얼고 보일러 터져

언 방에서 동태 되지 말라고

아버지가 수도 계량기를 감싼 거다

돌아가신 지 십 년 되었지만

이 집 가장은 아직 아버지인 거다

계량기 뚜껑을 닫고

하늘 멀리 바라본다, 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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