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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뮤즈 Dec 17. 2024

우울에도 자격이 필요할까?

일상 속 짧은 파편

"네가 우울하다고? 왜? " 


의아하다며 던지는 친구의 물음에 씁쓸하게 웃었다. 차마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았다. 


정말 내가 우울증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우울증을 겪을 수 있다. 겉으로는 편안하고 행복해 보여도, 우울은 단순한 외부 요인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우울은 내면의 복잡한 감정과 외부 요인이 얽혀 생기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늘 웃는다. 그 웃음은 방어막이었다. 우울한 모습을 들키면 안 된다고 믿었다. 내 우울함이 드러나면 나 자신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감정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웃음으로 우울을 가렸다. 사람들 앞에서는 실컷 웃다가도 혼자 있으면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하루 종일 쌓인 감정을 펑펑 울며 쏟아내면 오래된 막힌 배수관이 뚫리듯 속이 시원해졌다. 한참 울고 나서야 비로소 혼자 있을 때도 웃을 수 있었다. 내 웃음은 진짜였지만, 내 우울도 진짜였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했다.  


두려운 건 우울함을 드러났을 때 쏟아질 질문이었다. "네가 왜?"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들이 너무 싫었다. 내 삶은 남들이 보기엔 '우울할 만큼 큰 문제' 없이 살아왔다. 그런데도 나는 반평생을 우울과 불안 속에서 살았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다. 그 열망이 나 스스로도 사치스럽게 느껴져서 겉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여왔다. 대신 우울함을 글로 쏟아냈다. 


어느 날 내 우울의 근원을 뜻밖의 책에서 발견했다. 그것은 자기 계발서도, 에세이도 아닌 글쓰기 책 <닥치고 써라>였다. 다름 아닌 내 인생에서 내 힘으로 이룬 것이 없다는 것. 책 속 문장은 마치 나를 겨냥한 것처럼 다가왔다. '너는 무엇을 이뤘는가?'라는 질문이 머리를 때렸다. 평생 나를 흔들고 불안하게 만든 원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우울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울은 반드시 큰 사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각자의 경험이 빚어내는 고유한 감정일 뿐이다. 


오랜 우울의 근원을 깨닫았지만 생각보다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몰랐으면 좋았을 이유였다. "그렇구나, 나는 내 힘으로 이룬 게 없었구나.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게 만든 이유였구나." 그 사실을 알고 나니 이제야 이해가 되었지만 더 괴로웠다. 결국 나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과 마주해야 했고, 그간의 노력과 고민이 무너지는 상실감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러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비록 인정하기 힘든 사실이라도 받아들여야 변화가 시작된다. 원인이 뭔지 몰라 방황하는 것보다는 이제 해결 방법을 찾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후, 나는 더는 우울의 자격을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너는 이런저런 이유로 힘드니 우울할 자격이 있다." "너는 그 정도로는 부족하니 안 된다." 이런 식의 평가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우울은 누군가의 판단으로 평가될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느끼는 감정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다. 


그 시작은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우울은 나를 흔들었지만, 이제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되었다. 내 힘으로 이룬 작은 결과가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해 본다. 그것이 작든 크든,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비록 느리지만, 이제 나는 내 힘으로 무언가를 이룰 준비를 시작했다. 


우울에 자격은 필요 없다.  

판단을 넘어 내가 만들어갈 무언가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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