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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Nov 20. 2023

엄마의 김밥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엄마를 내 생각대로 조정하고 싶어 했었다.

엄마와 당일치기 속초 여행을 가기로 했다. 요즘 여기저기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부모상(부고) 소식에, 엄마가 곁에 있어주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생각이 들었고, 하루가 아쉬운 마음에 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기로 했다. 그 첫 단추가 이번 속초 여행이다. 서울역으로 엄마를 마중하러 가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이번 여행동안에 절대 짜증 내지 않고 엄마 마음 편하게 해 드리자'라고. 엄마의 모든 말, 행동을 그대로 다 받아주기로 했다. 플랫폼에 기차가 도착하고 기차에서 내리는 엄마의 손에 묵직한 보냉백이 들려 있다. 딱 봐도 도시락이다. 가방을 받아 들으니 묵직하다. '너 구나! 나의 첫 번째 관문!!' 피식 웃음이 난다.

"내가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싸왔어. 예전에 네 아빠랑 어딜 가면 밥을 안 사줘서 배가 너무 고팠어. 그래서 서울만 도 김밥부터 쌌잖아."  딸의 짜증을 걱정한 엄마의 설명이 길다. "응, 잘했어요."

이 쉬운 대답을, 예전엔 왜 하지 못하고, 그리 짜증을 냈는지. 사실 나에게 엄마의 도시락은 '궁상스러움'이었다. 사 먹는 밥값 아끼자고 무겁게 바리바리 싸 온 엄마의 도시락가방이 너무나 싫었다. 기분 좋게 시작한 여행은 출발부터 짜증이 되었고, 계속되는 나의 못된 말에 상처받은 엄마가 울음을 참는 걸 본 뒤에야 멈추고, 후회하고, 자책했다.


"잘했어요." 저 한마디로 오늘의 여행은 웃으며 출발이다. 도시락이 무사통과 되어서인지 엄마는 살짝 상기된 듯 말씀이 많으시다. 저렇게나 좋아하시니. 그저 마음 하나 바꾸면 되는 것을, 지난날의 짜증이 너무나 죄송스럽다. 오늘 더 잘해야겠다. 새벽 출발로 출출하기도 했고, 식었을 김밥보다는 뜨끈한 우동이 더 생각나긴 했지만, 휴게소 주차장에서 엄마가 싸 온 김밥을 먹기로 했다.

엄마가 좋아하신다. 내 얼굴에도 미소. 작은 용기에 김밥이 4개씩 담겨 있다. 아마도 달리는 차 안에서 꺼내먹기 편하게 준비하신 것 같다. 그런데... 음... 아... 고기 조각이 한가득 보인다. 뭐지? 이 불안감은? 이왕 준비하는 김밥, 딸내미 몸에 좋으라고 소고기를 잔뜩 넣으신 거다.  '앙~ 오물오물~' 헉!!! 무언가 훅 하고 공격이 들어온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육향의 공격이다!!! 항복!! "엄마 죄송해요. 정성을 생각해서 진짜 맛있게 먹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도저히 못 먹겠어요."

사실 울 엄마 김밥은 참 맛있다. 어린 시절 소풍날이면 김밥으로 쟁반 가득 탑을 쌓아 놓고는, 소풍 다음날까지도 종일 김밥만 먹었다. 그래도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었다. 오늘 도시락을 열고 불안감을 느낀 건 그런 엄마의 김밥과 다른 모양의 김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맛이 없다. 아니, 맛이 나빴다.


엄마의 김밥 사연이 이어진다. 저 김밥을 만들기 위해 엄마는 새벽 2시부터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전날 재료를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이 덜할까 봐 당일 새벽에 만드셨단다. 문제의 고기는, 마침 좋은 한우가 있어 김밥에 넣어야겠다 생각했고, 담백하게 만들기 위해 고기를 삶았다고 했다. 김밥을 싸려는데 김발이 없었고, 김에 밥을 펼치는데 뭔가 이상하다고 했다. 김밥용 김이 아니고 그냥 먹는 구이김이라, 김이 힘이 없어 자꾸 풀어져서 김을 두 장 세장 더 감싸야했다고 한다. 그렇게 이 사연 많은 김밥이 만들어졌다. 엄마의 표정이 묘하다. 버려야 할 비싼 고기가 아고, 괜한 짓을 했나 싶어 속이 많이 상하신듯 하다. 나 김밥을 망친 것보다, 그것을 위해 새벽 2시부터 허둥지둥 준비했을 엄마를 생각하니 화가 올라왔다. 그러나 짜증을 내는 대신, 엄마의 기분을 풀어드려야겠다 싶어 과장되게 웃었다. "아하하하하하.. 김밥 실패~!!" 그제야 엄마 표정이 좀 편해지면서 "나도 이런 김밥은 처음이야. 당분간은 김밥 먹기 싫을 것 같다." 하시며 피식 웃으신다. 얼른 속초에 도착해 맛난 밥을 먹기로 하고 다시 출발~!!

속초까지 가는 동안 우리는 세상에 또 없을 '오늘의 김밥'을 떠올리면서 크게 웃었다.  그렇게 낙산사에 들렀다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엄마가 좋아하는 바다정원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마시면서 바다를 보고, 맨발로 백사장도 걷고, 우리의 당일치기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내년부터는 엄마가 비용을 다 낼 테니,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다니자고 하셨으니 이번 여행은 성공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그런데, 엄마와 함께 있으면 자주 화가 올라오고 짜증을 낸다. 내 사랑이 거짓일까? 내가 화가 나는 대부분의 이유는 엄마가 아프거나, 힘들거나, 속상해하실 때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데 그 힘든 사람에게 화를 내는 거다. 나는 나쁜 사람일까? 유독 엄마에게만 이렇게 나빠지는 이유가 따로 있는 건 아닐까?


"어떤 사건 때문에 괴롭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아요. 어떤 사건이 원인이 되어 괴로운 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그 사건 때문에 괴롭다고 상상하는 것일 뿐이에요. 어떤 사건처럼 괴로움도 하나의 사건인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올라오는 화는 저절로 그렇게 된 거예요. 어찌할 수 없어요. 그냥 그 순간 멈추고 알아채고 손님을 맞이하듯 잠깐 머물다 가게 두세요. 그렇게 올라온 화가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90초예요. 몇 시간 동안 화가 계속되는 건 90초에 한 번씩 다시 그 화를 되새기기 때문이에요. 절대로 화를 억지로 참거나 누르려하면 안 돼요. 그냥 두면 잠깐 머물다 갈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내 생각대로 행동하길 기대하면 안 돼요. 절대 그럴 수가 없어요. 지구상에 단 한 사람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다른 생각회로를 가지고 태어난 거예요. 그냥 '저 사람은 지금 저러하구나.'하고 알아주면 돼요." <정화스님 강의 중에서..>


그동안 나는 엄마를 대할 때 엄마의 상황과, 상태와, 내 말에 대한 엄마의 대답마저도 미리 정해 놓았던 거다. 그래놓고 예상과 다를 때 화가 올라오고 짜증을 부렸다. '사랑하는 엄마가 아프거나 힘든 게 속상해서'라고 포장하며 나의 행동을 정당화시켰다. 엄마가 나를 생각해서 나에게 베푸는 손길은 그리도 싫어했으면서, 나도 엄마에게 그리하고 있었던 거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엄마의 어떤 상황보다 그로 인해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게 더 싫었다. '엄마 때문에 내 마음이 불편해'가 내가 엄마에게 화를 내는 이유였다. 정화스님 말씀대로라면 엄마의 상황과 내가 화가 나는 것은 별개의 사건인 거다. 엄마 때문이 아니다. 내가 엄마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엄마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내가 기대한 대로 행동하시길 바란 거다. 그건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번 여행에서, 예전과 같은 상황에 짜증이 나지 않고, 화가 살짝 올라오려 했으나 바로 흘려보낼 수 있었던 건, 내가 기대하는 마음이 없이 엄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알아줬기 때문이다. 김밥을 싸 온 엄마의 정성을 기쁘게 받았고, 망친 김밥으로 속상했을 엄마의 마음을 보았다. 그러나 그동안의 오래된 습으로 인해 나는 다시 '답정 안경'을 쓰고 엄마를 볼 수도 있다. 그래도 이젠 멈추고, 있는 그대로 보고,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보다 먼저 엄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엄마를 내 생각대로 조정하려고 했던 거다. 어리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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