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상황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에게 친절을 느낀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내게 뜻밖의 상황은 대개 부끄러울 때나 아플 때의 경우다. 두 가지가 동시에 닥칠 때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최초의, 최악의 상황은 국민학교 6학년 때 있었다. 점심시간, 친구의 도시락 반찬 중 유난히 맛있어 보이는 미트볼을 입에 넣었다. 미트볼이 들어온 순간, 똑같은 양의 소금을 그대로 입에 넣은 것 같은 괴로운 느낌이 들었다. 차마 그것을 뱉을 수 없어서 몇 번 씹지 않고 그대로 삼켰고, 밤부터 배앓이가 시작됐다. 다음날 아침엔 괜찮은 것 같아서 학교에 갔다. 수업 내내 아슬아슬하다가 청소시간에 일이 터졌다. 목까지 올라오던 미슥거림을 참지 못하고 화장실로 향하던 찰나에 교실 뒤편에서 토하고 말았다. 엄청난 토사물이 교실 바닥에 물감을 흩뿌린 것처럼 펼쳐졌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아이들의 찡그린 얼굴과 불쾌해하는 눈빛들이 스쳐갔다.
겨우 고개를 들어보니 누군가 걸레 쥔 손으로 아무런 말없이 그것들을 닦아내고 있었다. 나보다 키도 한 참 작아서 맨 앞줄에만 앉던 같은 반 남자아이였다. 그날의 주번도 아니고 몇 번 말도 섞은 적이 없는 친구인데 그 더러운 것들을 인상 한번 쓰지 않고 쪼그린 자세로 닦는 모습이 나로서는 황당하면서 고마울 뿐이었다.
그날 오후 내 상태는 더 나빠졌고 유난히 피부가 얇아서 붉은 실핏줄이 보이던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지고 하얗게 질린 모습만 남았다. 차가운 손으로 엄마의 외투를 꽉 붙잡고 엄마가 모는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서 의료원으로 가던 게 생각난다. 식중독증세로 며칠을 고생하고 나니 앞으로 이상하게 느껴지는 음식은 함부로 삼키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를 치워준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 한번 제대로 못하고 졸업을 했다. 중학생 첫 등교날, 등굣길 만원 버스에서 내리려는 순간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내 토사물을 치워준 그가 자기 몸보다 1.5배는 큰 교복을 입고 맨 뒷자리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떨결에 손을 흔들어주고 내렸다. 그 이후로는 아쉽게도 그와 마주친 적이 없다.
내 토를 치우던 엄마도 코를 막고 간신히 그것을 해냈는데 능숙하게 상황을 정리해 준 친구가 말도 못 하게 고마웠다. 수치스러운 일에 굳어버린 나를 민망하지 않게 배려해 준 속 깊은 행동이 고맙다. 아마도 살면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 사람은 그 아이가 처음일 것이다.
사진출처 -텀블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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