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이 맞다면 아빠가 처음으로 나를 위해 사준 물건이 어린이용 손목시계다. 국민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친구들은 하나씩 지녔던 그 싸구려 장난감 시계를 술 취한 아빠에게 받았던 때가. 흑백 화면에 오른쪽 옆구리에 튀어나온 작은 버튼을 누르면 숫자가 바뀌고 액정에 불이 들어오던 그 작은 시계는 내 보물 1호였다.
시골에서 과수원에 이어 양계장까지 말아먹은 부모님은 세 아이를 이끌고 도시로 나왔다. 이사 가던 날 한 마을에 살던 외할아버지는 말없이 엄마 손을 꼭 잡았다. 안경 너머 두 눈엔 눈물이 금방이라도 또르르 흐를 것 같았다. 이사 온 집은 엄청 큰 마당이 있고, 마당을 빙 둘러싸며 6가구 정도 전셋집이 있었다. 가운데 본채에는 주인 노부부가 살았다. 특이하게 대문이 엄청 큰 나무로 되어 있어서 중국집에 주문할 때 항상 나무 대문 집이라고 말하면 쉽게들 찾아왔다. 우리 집은 대문을 열면 오른쪽 제일 첫 번째 집이었다. 두 개의 방이 붙어있고 부엌 겸 씻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화장실은 다른 집들과 공용으로 사용해야 했는데 쪼그려 앉는 재래식 화변기였다. 아침마다 화장실 앞에 줄 서는 일이 일상이었다.
시골에서 자영업자, 사장님이었던 부모님은 도시로 나와 공장으로 출퇴근하는 노동자가 되었다. 언니, 오빠는 중학생이었고 나는 마냥 어린 열 살짜리 아이였다. 시골에 살 땐 몰랐는데 도시에 오니, 아파트에 사는 친구, 자가용이 있는 친구들이 있었다. 심지어 부모님이 각자 차를 모는 친구도 있었다. 차가 2대이며 부모님 모두 선생님인 a 집에 놀러 갔을 때 아파트에 처음 발을 딛었고, a의 엄마가 간식으로 만들어놓은 샌드위치라는 것도 처음 먹어보았다. a는 침대와 책상이 갖춰진 자기 방을 보란 듯이 자랑했다. 너무나 부러웠다.
다섯 식구, 두 개의 붙은 방. 도시에서 우리 가족에게 허락된 좁은 공간 위로 각자의 불만이 쌓여갔다. 일할 땐 요령 따위를 모를 만큼 우직하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회피하고 욱하는 성격인 아빠는 공장을 그만두고 기약 없이 쉬었다가 다시 일자리를 구했다. 술이 인생의 벗이었고 술 없이 버티는 날은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 술과 함께 늘 욕설과 폭언이 난무했는데 작은 체구의 엄마는 그에 겁 없이 맞섰다. 언니, 오빠는 두 사람의 싸움에 이미 만성이 되어 못 본 체했지만 어린 나는 그러질 못했다. 심장이 너무나 빨리 뛰고 온몸에 열이 올랐다. 잔뜩 웅크린 채 귀를 막고 상황이 끝날 때까지 속으로 노래를 불렀다.
어느 날 오후에 부모님의 싸움은 극에 달한 적이 있었는데 집에 하필 나밖에 없었다. 아빠의 물리적인 힘에 눌린 엄마는 바닥에 쓰러져 울었고, 화가 풀리지 않은 아빠는 손에 잡히는 물건을 창밖으로 던지고 집을 나갔다. 하필 그의 손에 닿은 것은 내 보물 1호, 싸구려 손목시계였다. 혹시나 찾을 수 있을까 밖에 나갔지만 이미 유리가 깨지고 누르면 불빛이 나던 버튼도 망가졌다.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다 엉망이 됐다.
곡소리를 내며 우는 엄마를 보며, 부서져 버린 시계를 보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왜 이렇게 힘들어야만 할까, 다들 이렇게 사는 걸까. 매일이 지옥 같은데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힘듦을 꾹꾹 누르고 눌러 담았다. 밖에서는 나를 유복하게 예쁨 받고 자란 셋째인 줄 아는 이들이 많았다. 그들에게 내 실체를 들키는 게 싫어서 거짓 웃음을 지었다.
손목시계가 버려진 날부터 나는 아빠 앞에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아빠와 함께 있는 시간은 숨이 막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겨울 방학 때는 실직 상태로 반년 가까이 거실을 장악한 아빠가 싫어서 내 방에서 나오질 않았다. 정말 할 게 없어서 방학 내내 정석을 풀고 학교 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그 덕분에 2학년 첫 모의고사에서 점수가 70점이나 올랐다.
생각해보면 아빠의 존재가 내 기억에서 사라진 중학교 2년의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그가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일본에 일하러 떠났던 시기다. 엄마의 만류에도 1997년 imf 시기에 한국에 들어왔고 그 후 우리 집에 평화로움 따윈 없었다. 손목시계 사건 때와는 차원이 다른 충돌이 있었고 정말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날 것 같은 시간들이 이어졌다. 무서워서 울기만 했던 내가 참다못해 악에 받쳐서 소리 지르고 말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집을 뛰쳐나와 공중전화를 붙잡고 친구에게 대성통곡을 하고 나면 숨이 쉬어졌다. 엄마가 뒤늦게 나를 찾으러 나와서 아무 말 없이 등을 쓸어주었다.
버려지고 망가진 시계는 나와 같았다.
더 이상 이 집에서 고장 없이 살아갈 희망이 없다.
숨 쉬고 살기 위해서는 집을 벗어나야 한다.
대학생이 되어 아예 다른 지역으로 멀리 가버리고 싶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손목시계#상처#가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