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부성과 디카프리오

by 로우어


중학생 때 천장지구 2를 보고 곽부성이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했다. 오토바이에 비스듬히 앉아 주변을 돌아보는 그의 얼굴이 화면 가득 등장할 때 진정으로 할 말을 잃었다. 사람인가 인형인가. 짙은 쌍꺼풀과 눈, 깊은 눈동자, 뽀얀 피부, 적당히 각진 턱. 6:4의 가르마를 유지하는 빽빽한 머리숱. 데님 재킷을 꽉 채우는 넓은 어깨.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순수한 웃음. 딱 하나 단점은 작은 키였지만, 영화 속 그의 존재감은 대단했다. 얼굴만 봐도 재밌다는 말은 전성기의 곽부성을 보면 이해가 되는 표현이다. 오늘날 아이돌로 데뷔했다면 확신의 비주얼 센터 외모다.


홍콩의 4대 천왕 붐이 일던 시절에 곽부성 엽서와 편지지 스티커를 모으느라 혈안이 되어있었다. 자주 가는 문방구에 혹시나 그의 엽서가 들어왔을까 기대감에 그곳을 들르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루틴이었다. 무슨 유행인지 또래들 사이에서 짧게 자르는 머리가 유행하던 시기인지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귀가 보일만큼 쇼트커트를 시도했다. "정말 자를 거야?"라는 미용실 원장님의 재차 물음에 우물쭈물 "네"라고 대답해버렸다. 엄마는 나의 머리에 기겁을 하셨고 스스로도 주체 안 될 어색함에 괜스레 머리카락이 사라진 목 뒷덜미를 만지곤 했다. 그래도 코와 입을 가리면 곽부성과 닮았다는 친구들의 말에 뭔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그 시절 나의 우상과 닮았다는 말은 최고의 외모 칭찬이었다. 서태지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서태지를 닮아간다고 했더니 그 친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던 것을 기억한다.

곽부성의 꽃미모는 시간이 지나면서 미소년에서 선 굵은 남자로 변하고 있었다.


그에게 시들해질 무렵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길버트 그레이프의 어니는 나의 가슴에 너무나 시리게 박혔고 그 당시 최연소 오스카 남우조연 후보에 오를 만큼 그의 자폐아 연기는 미쳤었다. 바스켓볼 다이어리에서 마약에 빠진 처절한 소년의 모습은 그가 가진 병약미를 극한으로 표출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눈부신 미모는 나의 눈과 뇌를 지배했다. 와이드 카라 양복에 금발머리, 서늘한 눈빛을 장착한 해변 등장 씬은 지금 봐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상대역 클레어 데인즈를 꽤나 질투했다. 올리비아 핫세와 비교하며 그녀의 외모를 흉보기도 했고... 쓸데없는 질투심은 타이타닉의 케이트 윈슬렛을 흉볼 때도 튀어나왔다. 오빠가 대학생이 되어 다른 지역으로 떠난 후 내 방이 생겼고 그곳은 온통 레오가 장악했다. 영화 포스터, 엽서, 화보집 모든 게 그였다. 하드보드지로 각진 필통을 만들어 그의 사진으로 뒤덮었고 로미오와 줄리엣 ost만 줄곧 들었다.


그 시절 그는 나에게 우주였다.

우리에겐 각자의 우주가 있었는데 오빠에겐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친구 a에겐 h.o.t가, 친구 b에겐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 그랬다. 레오를 스무 살이 넘어서도 좋아하고 간직했는데 자취방을 옮겨 다니면서 고등학교 내내 사다 모았던 엽서와 포스터들을 다 정리했다. 죽기 전에 내가 실제로 볼 수 없을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뒤늦은 현타였다.

캐치 미 이프 유 캔까지는 그의 작품을 거의 챙겨 봤는데 그 후로는 드문드문 그의 영화를 봤다.

mz세대에게 레트로 열풍이 불어서인지 중학생 큰 아이가 작년에 레오의 리즈시절에 잠깐 빠진 적이 있었다. 카톡 프사를 레오로 설정하고, 혼자서 밤늦도록 영화채널에서 해주는 타이타닉을 다 보기까지 했다. 자랑스럽게 라떼의 덕질 이야기를 아이 앞에서 주절주절 늘어놓고 보니 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100여 장 가까이 모은 엽서를 버린 20여 년 전의 나를 꾸짖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90년대에 누군가의 우주였던 이들 중 별이 되어버린 자들이 많아졌다. 누군가의 죽음이 연예기사에 올라올 때면 안타까운 탄식이 나온다.

다행히도 나와 함께 늙고 있는 그들이 있어서 20세기 감성을 간직한 체 21세기를 사는 내게 힘이 된다. 레오의 이마가 넓어지고 배가 나오고 역변의 아이콘으로, 잭 니콜슨의 닮은꼴로 거론되어도 그는 여전히 나의 우상이다. 세상에 다시없을 미소년은 나이가 들어 마냥 찐하게 생긴 아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나의 아론, 곽부성이다.




나의 우주는 아직도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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