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처음으로 고마웠던 순간

by 로우어



어릴 적 나는 온전하게 내 옷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늘 언니 오빠의 옷을 물려 입었다. 국민학교 때, 체구가 작았던 오빠의 티셔츠를 입고 등교했다가 같은 반 남자아이와 똑같은 옷인 것을 알고 엄청 부끄러웠던 기억이 있다. 가슴에 바다를 항해하는 배 그림이 전사된 하얀 티셔츠였는데 그 아이가 자기 옷과 내 옷을 번갈아가며 같은 옷인지 확인하던 순간은 너무나 치욕적이었다. 요즘처럼 유니섹스니 젠더리스니 그런 패션이 보편적이지 않았기에 나는 누가 봐도 남자 옷을 입은 여자아이였다. 중학생 때는 교복이 유일한 외출복이었다. 독서실을 갈 때도 엄마가 건네주는 아줌마 옷을 입고 다녔고, 일요일에 시내에서 만나자는 친구들의 약속은 거의 지킬 수 없었다. 브랜드 옷을 입고 나오는 친구들 틈에 후줄근한 모습으로 어울리는 게 너무나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는 5살 많은 언니가 입었던 교복 마이와 치마를 물려받았다. 교복 브랜드 회사에서 내놓는 새로운 스타일과 내 꼬질꼬질한 교복은 차이가 꽤 났다. 조끼는 새것을 샀고 치마는 물려받았는데 위아래 어색한 조합이 눈에 띌 때마다 쥐구멍에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울 외투는 언니가 4~5년 전에 입던 세일러복 형태의 코트가 유일했다. 아무도 입지 않는 촌스러운 디자인이었다. 모두가 떡볶이 코트를 입던 시절에 나 혼자 그 옷을 입는 건 죽기보다 싫었기에 교복 마이로 매서운 겨울 등하굣길을 버텼다.


옷 사달라는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엄마의 한숨 섞인 대답은 늘 같은 패턴으로 이어졌다."학생이 교복 있는데 옷이 왜 필요하냐? 나도 너

처럼 교복 입고 싶다. 옷 걱정 좀 안 하게..." 1단계는 사복은 필요 없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엄마는 교복도 못 입어 봤어. 학교 가서 수업받으면 외할머니가 교실 찾아와서 밭일해야 되는데 학교를 왜 갔냐고 젊은 총각 선생님 앞에서 혼내셨지.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2단계는 제대로 학업을 할 수 없었던 본인의 신세한탄으로 투정을 막는다. "넌 아무거나 입어도 예쁘다. 거적때기를 걸쳐도 예쁠 나이야." 3단계는 난데없는 칭찬을 하며 옷을 사줄 수 없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내비친다. 이 3단계 대화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옷 사달라는 말을 입에 붙이지 않았다. 대신 언니의 옷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나보다 5살 많은 언니는 내가 중2 때부터 대구에 있는 어느 대학으로 통학을 했다. 아침 일찍 나갔기 때문에 그녀의 옷장을 여는 일은 쉬웠다. 주로 카디건을 많이 슬쩍했는데 시내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 근처 인적 드문 골목에서 교복 외투로 갈아입기 쉬웠기 때문이다.

밖에서 반나절 가량 입던 옷을 다시 옷장에 슬그머니 가져다 놓는다. 언니가 티브이를 보거나 화장실에 갈 때 서둘러서 원래 있었을법한 곳에 가져다 놓았다. 미묘하게 구겨진 옷의 주름과 사뭇 달라진 옷의 위치를 그녀가 모를 리 없었을 텐데 희한하게 '누가 내 옷 건드렸냐'며 성질낸 적이 없었다. 나중에야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고 내가 자기 옷에 손대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내가 알던 언니는 자기 물건에 손대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시대가 바라는 이상적인 맏이와는 거리가 매우 먼 사람이었다. 동생들을 위하는 모습은 없었고 늘 자기 것만 챙겨서 엄마에게 이기적이고, 싹수가 없고, 동생들에게 양보할 줄도 모르는 못된 것이라는 잔소리를 들었다. 가난한 집 삼 남매 맏이인 자신의 처지를 끔찍해했고, 방이 세 개인 새 아파트에 이사했을 땐 나와 같이 방을 쓰는 것을 대놓고 싫어했다. 밤이 되면 언니 눈치를 보며 겨우 방에 들어가서 잠만 간신히 잘 수 있었다. 고2가 되어서야 혼자만의 공간을 처음 갖게 된 것인데 그 공간을 다섯 살 아래의 동생과 함께 하는 게 얼마나 싫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그 마음도 이해가 된다. 가난하지만 형제간에 우애가 좋은 집도 있지만 우리 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가난이 늘 집 분위기를 살벌하고 얼어붙게 만들었다. 몸이 불편한 남동생과 한참 어린 여동생, 늘 극한으로 싸우는 부모. 아픈 아들에게만 모든 포커스를 맞추는 엄마. 언니에게 집은 벗어나고 싶은 감옥과도 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어린 마음에 다른 집 첫째처럼 가족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그녀가 꽤나 미웠다. 서로가 서로를 파이를 나눠가져야 하는 경쟁자쯤으로 여겼기에 우리에게 애틋한 자매애는 딱히 없었다.



그랬던 언니가, 자기 옷에 손을 댄 내게 뭐라 하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일기장에만 썼을 뿐 직접 나에게 알은체를 하지 않았던 건 무슨 마음에서였을까.

멋 내고 싶어 하는 사춘기 동생이 가여워서 그냥 봐준 것일까. 오죽하면 도둑질을 할까 불쌍해서였을까. 자기가 겪은 길을 똑같이 겪고 있는 내가 짠해서였을까.



오늘날까지 그 이유를 딱히 묻지는 않았다. 그냥... 눈감아준 게 고마웠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 알면서도 넘어가 주고 내 자존감에 스크래치가 날뻔한 상황을 만들지 않아 준 게 고마웠다. 거짓말을 못하고 엄마 말에 복종하던 내가 멋 부리고 싶어서 간도 크게 언니 옷을 훔쳤다는 게 부끄러웠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던 상황에서 내 나쁜 짓을 눈감아준 게 고마웠다. 처음으로 그녀가 내편이라는 묘한 감정이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 자매애를 느껴본 순간이다.









#교복#언니#자매#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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