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농업 국가 덴마크의 락밴드. 블링크

by 로우어


영화를 좋아하던 내가 10대 시절에 영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당시 영화잡지의 양대산맥이던 스크린과 로드쇼를 서점에서 보거나, 티브이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본방 사수하는 것. 전자는 보통 좋아하는 배우의 기사가 많이 실릴 경우에 이용하고, 후자는 신간 영화나 비디오 내용을 알기 위해 이용했다.


주 5일 제라는 말은 상상도 할 수 없던 시절. 토요일도 등교하던 시절이라 유일하게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 수 있는 일요일은 매우 귀한 시간이었다. 게으름을 피우며 소파에 앉아 점심때쯤 출발 비디오 여행을 보는 것이 일주일 중 가장 행복한 시간 인적도 많다.

출비(출발 비디오 여행)는 방송 끝무렵에 영화음악이나 해외가수 음악을 틀어준다. 어느 때인가 출비에서 Blink의 Betty뮤직비디오가 나온 적이 있다. 부드러운 러브송이 내 귀를 사로잡았다. 그들은 덴마크 출신 밴드라고 했다. 세계사 시간에 '낙농업 국가는 덴마크'라고 암기했던 그 덴마크, 얼굴이 크다고 친구들 사이에서 놀릴 때 '니 얼굴 덴~마크' 따위의 유치한 말장난에 쓰이던 그 덴마크 말이다. 북유럽의 나라여서인지 앨범 표지에도 겨울철 정장과 털모자 조합의 패션을 한 네 멤버가 서있는 모습을 담았다. 그다지 멋은 없었고 투박함이 느껴졌다.


블링크 1집 VIVA

Betty라는 곡은 프랑스 영화 '베티 블루 37.2'를 보고 만든 곡이라고 했다. 파란색 배경에 단발머리 젊은 여자가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있는 포스터는 어쩌면 영화 자체보다 더 유명하다. 나도 포스터만 익숙하지 영화는 아직도 안 봤다. Betty는 말랑말랑한 연주에 토마스 네그린의 능글맞고 감미로운 목소리가 더해져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들의 1집 VIVA를 구매해서 들어보니 거의 다 하드 한 음악이었다. 묵직한 사운드에 허스키하다가 예리하게 자유자재로 변하는 보컬은 베티와는 전혀 다른 반전의 얼터너티브였다.


길지 않은 텀을 두고 2집이 발매되었는데 역시나 달달한 Kiss me가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어느 cf에 삽입된 이후 라디오를 장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기에 힘입어 한국에서 공연도 했고 이소라의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라디오 방송시간에 맞춰 카세트테이프에 소라 언니와 그들의 대화를 녹음해 두고 자주 들었다. 한국의 라디오 부스 시설이 너무 잘되어 있다고 감탄하며 덴마크는 그렇지 못하다고 말하던 인터뷰가 기억난다. 하고 많은 내용 중에서 왜 그것만 기억나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한국의 최신 방송시설에 아이처럼 놀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키스미가 실린 2집 Get high도 사서 들었는데 역시나 얼터너티브와 하드락이었다. 키스미는 앨범에 보너스로 들어가는 부드러운 넘버일 뿐. 사실 베티도 뒷부분에 휘몰아치는 락버전이 짧게 나온다. 그러나 방송에서는 항상 그전에 잘리기 때문에 온전히 듣지 않으면 마냥 부드럽게 끝나는 줄 아는 이들이 많다.

순박해 보이는 모습 뒤 감춰진 락 스피릿이 넘치던 블링크의 빡쎈 앨범은 알고 보니 메탈리카의 프로듀서가 작업했다고 한다. 역시나 그럼 그렇지.



나와 나이 터울이 많은 언니, 오빠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팝과 락을 많이 들었다. , 너바나, 미스터 빅, 스콜피온즈,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마이클 볼튼, 엘튼 존, 보이즈 투 맨, 조지 마이클... 그런 내가 오롯이 내 의지로 처음 구입한 해외가수 앨범이 블링크 1집이다. 내가 주체적으로 음악을 듣고 테이프를 소유하는, 자발적 팝 음악 리스너로서의 첫걸음을 블링크가 함께했다. 아쉽게도 그들은 2집을 끝으로 해체한 후 어디서도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해도 펑크밴드 '블링크 182'나 '블랙핑크'의 공식 팬덤명 '블링크'의 것만 검색된다.




블링크 멤버의 21세기는 어떤지 궁금하다.

패션은 여전한지, 여전히 음악 활동은 하는지.

아직도 한국 라디오에 나온 일을 기억하는지.

덴마크 어디선가 낙농업에 종사하는 건 아닌지.



어쨌든, 뭐가됐든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블링크#키스미#베티#출발비디오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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