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20세기에 뽀뽀뽀 분식을 함께 다녔던 J가 집에 놀러 왔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그녀의 편지를 보여주겠노라 늘 말했었는데 드디어 그 순간이 왔다. 이리저리 뒤섞인 편지들 틈에서 그녀의 것만 찾아내기는 불가능했기에 카펫 위에 모조리 쏟아부었다. 생각보다 많은 편지와 크리스마스 카드에 우린 놀랐고 희귀한 소장품이라도 본 것처럼 들뜬 마음이었다. J와 나는 편지들을 보며 박장대소를 했고 중고등 시절에 대한 수다가 이어졌다. 즐거운 수다타임을 보내고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하며 서둘러 둘째의 하굣길을 나섰다.
230여통의 편지와 카드
다음날 여전히 거실 한쪽에 놓인 편지들을 하나하나 작정하고 읽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도전하리라 마음먹었던 일이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약 230여 통의 편지와 크리스마스 카드를 읽느라 앉은자리에서 세 시간이 흘렀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받은 C의 편지봉투에서 딱딱한 종이가 만져져 꺼냈더니 29년 전의 센스민트가 나왔다. 조금 빛바래긴 했지만 몇 년 전 거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잘 보관되어있었다. 그 시절 이름에 민트가 들어가는 유일한 제품 아니었던가.
개구쟁이 C가 껌의 향기라도 맡아보라며 동봉해서 보낸기억이 난다.
센스있는 여성을 위한 센스민트
P의 편지에서는 얼굴이 하얗게 날아가버린 디카프리오 메모지가 나왔다. 헤어와 의상을 보니 아마도 마빈의 방을 찍었을 무렵인 것 같다. 고등학교 내내 디카프리오 덕질 경험으로 보아 90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 K가 보낸 사진엽서에는 신인이던 서태지의 앳된 얼굴이 있다.
디카프리오 메모지
레옹, 흐르는 강물처럼, 가을의 전설, 로미오와 줄리엣, 비포 썬라이즈...영화 편지지도 있다.
혼자서 90년대로 돌아간 세 시간이다.
편지 속 아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해졌다. 처음엔 유치하고 엉터리 같은 이야기를 쓰던 친구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꽤나 진지해졌다.
중학교 3학년 때 경기도로 이사 간 한 친구는 편지에서 기말고사 때까진 펜팔을 멈추자고 제안했다. 편지가 그 시절 내 삶에서 꽤나 큰 비중을 차지했기에 그 친구에겐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않았다. 그 친구를 위해 영화 잡지에서 뜯어놓은 키아누 리브스의 기사를 편지와 함께 챙겨놓고는 결국 부치지 못했다.
아마도 앞으로 의무감으로 펜팔을 할 것만 같은 친구 때문에 마음이 상했었나 보다.
1999년에는 받은 편지가 하나도 없다. 5년을 이어오던 편지의 역사가 그때부터 끊어졌다. 당연하다. 그땐 고3이었으니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보내지도 받지도 못했다.1년의 소통 없는 시간 이후 더는 손 편지를 쓰지 않았다. 21세기, 스무 살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휴대전화와 이메일이 편지의 역할을 대신했다. 요즘은 그마저도 sns에게 자리를 빼앗겼다. 자신만의 필체로 상대방과 소통하는 일이 사라져 간다. 길거리에 우체통이 없다. 요즘도 우표가 발행되는지 모르겠다.
반가운 우표
첫인상이 너무나 차갑다며 내게 음악시간에 배운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별명으로 붙여 준 L.
담임선생님을 향한 짝사랑이 예뻤던 또 다른 L.
나의 결혼식에 꼭 온다더니 아무 연락 없이 잠수를 타 버린 P. '너는 커서 소설가 돼라 넌 그게 어울린다'라고 말해주던 B. 안양으로 이사 가면서 점점 사이가 소원해진 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