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와 뽀뽀뽀 분식

by 로우어



내 친구 J는 20세기 나의 이야기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내가 15살이던 해, 1995년에 우리는 처음 만났고 대학 진학 전까지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수줍음이 많고 극도로 내성적인 나에게 함께 음악시간의 가창 시험을 연습하자고 먼저 손 내밀고, 짓궂은 다른 친구의 장난에 눈물부터 흘리던 나를 대신해서 화를 내주던 멋진 녀석이다. 그 시절 부모님의 끝없는 다툼과 폭언에 만신창이가 된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존재이기도 했다.


J와 나는 대학 진학 후 자주 만날 수는 없었다.

다른 지역으로 떠나,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서로가 너무나 바빴다.

자주는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AI처럼 발휘되는 녀석의 오차 없는 기억력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추억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자주 찾던 분식집의 존재는 늘 단골 이야깃거리다.




김천시 평화동 좁은 골목에 뽀뽀뽀 분식이 있었다.


덜컹이는 쇠로 된 미닫이 문을 열면 교복 입은 여학생들이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떡볶이를 먹느라, 학교 이야기를 하느라, 좋아하는 가수들 이야기를 나누느라 늘 시끌시끌하던 곳.


이 집의 대표 메뉴는 즉석떡볶이다. 가스버너에 떡국용 떡과 양배추, 어묵, 당면이 들어간 냄비가 오르고 국물이 끓으면 안성탕면을 반으로 부수어서 넣어 끓인다. 라면이 익으면 불을 줄이며 면부터 건져서 먹는다.

적당히 짭짤하고 매콤한 소스에 환상적으로 졸여진 라면을 한입 먹기 시작하면 힘들었던 일들은 어느새 뒷전으로 사라진다.

떡과 건더기를 다 먹고 나면 볶음밥을 주문한다. 이모님은 자작이 남긴 국물에 밥과 김가루, 참기름을 넣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위는 반짝반짝 윤기가 흐르고 아래는 적당히 눌어붙는 최고의 볶음밥을 만들어낸다.

요즘 중학생들의 소울푸드가 마라탕이라면 그 시절 우리의 소울푸드는 바로 이 뽀뽀뽀 분식의 즉떡이었다. 즉떡을 생각하면 얼굴에 사라졌던 생기가 돋아났고 한입한입 먹을 때마다 입속의 행복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하교 후 J와 즉떡 코스요리를 다 먹고 빵빵해진 배를 만지며 집으로 가는 길에 서점에서 신간 잡지를 살피고 팬시점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던 날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난해에 J는 김천 투어를 하면서 뽀뽀뽀 분식을 제일 먼저 찾는다고 했다. 엄마께 뽀뽀뽀 분식은 여전히 있는지 전화로 여쭤보니 벌써 몇 해 전에 평화동이 아닌 신음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J는 신음동으로 옮겨간 새 건물의 뽀뽀뽀 분식을 찾았고 사진을 내게 보내주었다. 예전 느낌이 전혀 없어진 새로운 가게 사진에 알 수 없는 서운함을 느꼈다.


엄마 말씀에 따르면 구시가지의 쇠락 탓에 가게가 이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조만간 분식집 근처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도 사라질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20세기에 내겐 최고의 번화가였던 동네가 지금은 볼품없는 옛 거리가 되고 있다는 소식에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다.


신음동으로 이전한 뽀뽀뽀 분식



세월의 격변 속에서도 내 10대 시절의 아픔을 보듬어주던 뽀뽀뽀 분식이 사라지지 않고 꿋꿋이 버텨오고 있음이 감사하다.


언젠가 J와 함께 방문해서 다시 한번 그 시절의 우리의 소울푸드가 전해주던 위로와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뽀뽀뽀분식#즉석떡볶이#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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