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런데 내 시화전 작품들은 어딨어? 액자 세 개랑 내 글 실려있는 얼레부 문집들 있잖아. 왜 안 보여? "
"아. 그거? 이사 오면서 다 처분했어. 집도 너무 좁아서 둘 곳도 없고."
"뭐? 나한테 왜 얘기 안 했어! 엄마, 내가 쓴 석류 이야기 좋아했잖아. 사진이라도 찍어주시지. 너무했네."
올해 5월 엄마는 10여 년의 전원주택 생활을 정리하고 도심지에 새로운 거처를 정했다. 15평 남짓한 27년 된 주공아파트는 엄마 혼자 생활하기에 적당했고 전 주인이 주방에는 레일등과 거실에는 매립등까지 설치했을 정도로 나름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티가 났다. 늘 엄마가 걸어놓는 달마도액자는 새 집에서도 제자리를 찾아 걸려 있는데 달마 곁을 지키던 나의 액자는 사라졌다.
이사 올 때 짐이 너무 많아 처분했는데 그 짐에 내 액자 세 점도 포함된 것이다. 엄마에게는 버려야 할 한낱 짐이지만내겐 중학교 시절의 가장 가슴 벅찬 추억인데 일언반구도 없이 처분하신 게 서운했다. 늘 엄마 집에 오면당연히 있을 거라 생각하고 사진 한 장 남겨놓지 않은 나의 부주의함에 짜증이 났다.
중학교 때 나는 글 쓰는 게 좋아서 동아리도 글짓기 부서를 지원했다. 담당 선생님의 심사를 통해서 부원이 되었고 3년 동안 각종 백일장에 참가하는 기회를 얻었다. 비록 결과는 늘 참방 아니면 무관이었지만 학교를 대표해서, 정당하게 수업을 땡땡이치고 대회에 나가는 것은 내게 주어진 특권과도 같았다. '얼레부'라는 이름은 얼레에서 따온 것이다. 연을 하늘로 높이 띄우기 위해서 얼레가 감겨있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처럼 글쓰기도 각자의 언어로 무한히 풀어내라는 의미로만드신 것으로 안다.
시의 함축적인 언어를 도저히이해하지도 흉내 내지도 못하는 나에겐 풀어서 맘껏 쓸 수 있는 산문이 제격이었다. 그러나 매년 가을에 열리는 시화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인이 되어 시 한 편을 써야 하는 고통의 순간을 겪어야 했다. 시화전을 준비하자는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면 당장 무엇을 써야 할지 머릿속이 텅 비었다. 유유히 시를 써내는 친구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주제를 정하는 데에도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 한 편에 그림도 같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다소 형이상학적이거나 비현실적인 주제는 다룰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자연으로 눈을 돌리고 나무 하나 풀포기 하나에도 저마다 가진 사연이있다고 생각하며 시인의 눈으로 들여다보았다.
세 개의 작품 중 아직도 어렴풋이 생각나는 게 석류 이야기다.
석류가 익고 단단한 껍질이벌어지면서 모습을 드러내는 석류 열매의 아름다움을, 석류 열매가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은 석류나무의 허전함을 담담한 언어로 표현했다. 선생님의 조언을 통해 조금씩 표현을 가다듬고 마무리해서 '석류 이야기'를 완성하고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위해 미술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감정으로 시를 썼는지 내 이야기를 경청하고 며칠의 시간이 지난 후 선생님은시와 함께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감성을 그림으로 담아내셨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 시화전에 걸린다. 돌이켜보면 결코 쉽지 않은 과정들이다.
주제를 구상하고 어울리는 시어를 생각해내고 맞는 그림을 그려내기까지의 시간들.
내 인생에 그토록 진지하고 순수하게 하나의 목표를 위해 모든 열정을 쏟은 순간이 또 있었을까.
세 번의 가을 동안 험난한 시간을 이겨내고 탄생시킨 작품들이 엄마의 손길에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의 가장 빛났던 과거가 무참히 버려지고 말았다.
서운함을 너머 배신감마저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엄마는 내 석류 이야기 액자를 특히나 좋아했다. 거실에 걸어두고 한 소절 한 소절 읽으며 나를 경이로운 눈빛으로 보던 게 기억난다. 그런데 어쩌면 사진 한 장 남기시질 않고 다 없앨 수가 있는지... 액자와 내 시와 산문이 실린 작품집도, 처음 받아 본 교내 백일장 장원 상장도 다 모두 다 없앴다. 남은 건 졸업앨범뿐.
"엄마!!!
정. 말. 아무것도 없어?
그래도 찾아보면 종이 상장 하나쯤은 있을 거야.
내가 참방은 그래도 좀 받았단 말이야.
찾아봐요. 한번."
내 간절함과 약간의 짜증 섞인 말투에 장롱 속을 샅샅이 뒤져 남아있는 단 하나의 상장을 찾아냈다. 중1 때 백일장에서 받은, 역시나 참방 상장이다.
뭐라도 하나 남은 게 있어서 다행이다.
엄마에게 아쉽다고 볼멘소리를 하자 엄마는 본인이 무식해서 챙겨주지 못했다며 자책을 했다.
엄마는 세 번의 시화전 동안 단 한 번도 전시장에오신 적이 없었다. 잔업근무를 하느라 몸이 부서지게 일했던 시절이었다. 세 아이를 위해, 가장의 역할은 잊고 사는 남편을 대신해, 혼자 그 모든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버텨낸 그녀다. 쌀 살 돈도 빌려야 할 정도로 가난에 허우적대는 현실 앞에 시화전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어쩌면 마지막 집이 될 수도 있는 곳에 꼭 필요한 세간살이만 챙겨 온 것인데 그곳에서 정작 스스로도 챙기지 않았던 액자 타령이나 해댄 내가 부끄러운 순간이다.
그 추억들은 엄마가 버린 게 아니다. 내가 먼저 버린 것이다. 소중히 여기지 않았던 나 자신에게 퍼부어야 할 짜증을 엄마에게 해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