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a여고로 진학했다. a여고는 1935년에 지어진 역사만큼이나 건물도 많이 낡았고 어두울 때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배가 되어 공포 그 자체였다. 복도 뒤쪽으로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까지 더해져 대낮이어도 복도 쪽 창밖을 보는 게 무서웠다. 내가 입학할 무렵은, 구관 앞에 신관 공사가 진행되는 시기였는데 하루빨리 새 건물에서 수업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입학한 지 며칠 만에 야자를 시작했고, 야자가 마치는 시간에는 집에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서둘러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당시 우리 집은 학교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었고 많이 외진 동네의 구석 끝자락에 자리한 새 빌라 3층이었다.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도 한참을 어두운 길을 걸어야 했다. 아파트와 빌라가 밀집한 곳을 지나서, 걷는 게 지칠 때쯤 시골집들이 있는 동네가 나온다. 10시가 넘은 밤에는 인적이 별로 없어서 오싹오싹한 기분이 든다. 대학생이던 오빠가 방학이 되어 집에 왔을 때 나의 귀갓길을 같이 했지만, 보통은 혼자 가는 날이 많았다.
첫 야자가 시작되고 며칠 뒤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 b가 야자 중간 쉬는 시간에 내게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어젯밤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낯선 아저씨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왔다는 것이다. 어둠 속 그는 b에게 혹시 이 아이를 아냐며 사진 하나를 내밀었는데 그 사진 속 주인공이 나였다. 내가 오래 살지 못하는 운명이라며 가까이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그가 사라졌다고 했다.
b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머릿속이 빙글빙글 어지러웠다. 낯선 아저씨가 왜 내 사진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래 살지 못한다는 소리는 또 뭐란 말인가...
말문이 막히고 당장 오늘 집에 혼자 어떻게 가야 할지 두려웠다. 가로등도 많지 않은 시골길에 나 혼자 걸어가야 한다. 낯선 남자가 나타나서 날 해코지할지도 모른다. 잔업근무 중일 엄마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정류장으로 나오라고 해야 할까. 상상이 극에 달해서 눈물이 났고 책상에 엎드려 펑펑 울어버렸다. 당황한 b가 어쩔 줄을 몰라했고, 사실은 자기도 어제 친구에게 당했던 장난이라며 나를 달래려고 애를 썼다. 이미 눈물은 터졌고 놀란 마음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상황을 알게 된 친구 j가 b에게 그런 심한 장난을 치면 어떡하냐고 화를 냈고, b는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요즘 같으면 "이게 어디서 주작 질이냐, 미친 거 아냐? 너랑 손절!!."이라고 말하고 sns에서 b를 바로 차단해버릴 테지만 1997년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엉성한 이야기에 속은걸 보면 그때 진짜 순수했다는 생각만 든다. b는 착하고 겁이 많은 아이였는데, 본인보다 기가 쎄 보이는 내가 겁이 없다고 생각했나 보다. (사실 나는 보기보다 겁나게 겁이 많은 쫄보였다) 전혀 무서워하지 않을 것 같은 애가 자기가 준비한 허술한 괴담을 듣고 바로 눈물바람을 일으켰으니 얼마나 당황하고 미안했을까. 미안함에 쩔쩔매는 b의 진심을 알았지만 화도 났고, 한편으로는 거짓말이라는 사실에굳어진 몸이 풀리고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괴담 사건 이후로 집에 갈 때 최대한 빨리 걸었다. 내가 걸음이 그토록 빠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며칠 전 큰 아이가 10시에 학원이 끝났는데도 연락 없이 늦어지고 있었다. 위치추적 어플을 확인해도 학원으로 잡히고, 전화는 받질 않아서 카톡을 연달아 보냈다. 잠시 후에 "집 앞 놀이터에 xx이랑 놀고 있어. 곧 들어갈게"라는 문자가 왔다. 평소보다 20분 정도 늦은 건데바로 연락이 닿지 않는 그 몇 분 동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20세기엔 별것 아니었을 일들이 지금은 별것 아닌 게 아닌 게 되어 나를 더 겁쟁이로 만들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무서운 게 많아지는 나이가 된 것만 같다.가끔은 '오늘은 좀 늦나 보다, 곧 오겠지'라는 마음의 여유를 당연히 느낄 수 있었던 그때가, 말도 안 되는 괴담에 졸았던 그때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