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나의 사람

외할아버지와 모과

by 로우어


내가 기억하는 집안 어른은 외할아버지가 유일하다. 친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셔서 사진으로만 그분들의 존재를 알았다. 뭐 친할머니도 계셨지만, 자주 본 적이 없어서 기억도 딱히 안 난다. 약간의 기억을 떠올리자면 엄마를 지독하게 시집살이시킨 사람, 술 마시면 이성을 잃는 자신의 큰 아들(나의 아빠)이 끔찍해져서 모자간의 인연을 끊어버린 지독한 사람...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국민학교 3학년 봄, 도시로 이사 가기 전까지 우리 가족은 외할아버지가 계신 시골에 살았다. 외갓집은 우리 집보다 훨씬 크고 깔끔하고 제대로 갖춰진 기와집이었다. 마루를 따라 끝쪽에 외할아버지 방이 따로 있었고 할아버지 방을 열면 뭉툭하게 생긴 모과 열매에서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집 앞 모과나무에서 딴 모과는 꿀을 가득 넣은 모과차로 만들어지거나 할아버지 방의 방향제로 쓰였다.


선비를 본 적이 없지만 실제로 존재한다면 할아버지가 선비가 아닐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의 자세는 항상 꼿꼿했다. 식사를 하실 때도, 혼자 계신 방에서 사극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으실 때도 꼿꼿하게 앉은 자세를 유지했다. 누워서 주무실 때 빼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다. 그런 할아버지도 꼬맹이인 내가 방에 찾아가서 할아버지 다리에 앉으면 잇몸을 드러낸 웃음을 보이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신 게 기억난다. 할아버지 앞에 앉아 날 위해 꺼내 주신 누룽지 사탕, 박하사탕을 입에 물고 함께 사극 드라마를 보곤 했다.


도시로 이사를 가던 날, 할아버지의 눈물을 처음 봤다. 엄마의 두 손을 꼭 잡고 무슨 말씀을 나눴는진 모르지만 어느새 눈가가 촉촉해진 할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난다. 이사를 온 후에도 외할아버지를 뵈러 버스를 타고 엄마와 외갓집을 종종 갔었다. 얼굴을 뵙는 횟수가 점점 뜸해질 때쯤 나는 반말을 쓰며 할아버지의 방을 제맘대로 들락거리던 마냥 어린아이의 티를 벗었다.


할아버지는 내게 집안의 큰 어른이고 예의를 갖춰야 하는 존재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과향은 여전했지만 난 변했고 할아버지도 변하고 있었다. 꼿꼿함의 상징이었던 분이 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다. 방광암이라고 했다. 병원에 계시다는 얘기만 엄마를 통해 들었고, 난 암이라는 게 뭔지도 몰랐다. 그냥 조금 편찮으신 거라 생각했다.

6학년 봄, 수학여행을 다녀오고 집에 오니 부모님이 보이질 않는다. 언니에게 어디 갔냐고 물으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갔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할아버지 얼굴을 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린 나를 가장 아껴준 어른.

항상 반듯함을 잃지 않은 한결 같은 사람.

나이가 들수록 외할아버지같은 어른이 되는게

쉽지 않음을 깨닫는다.


가끔씩 모과를 보면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가 생각난다.












#모과#외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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