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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해 Feb 20. 2023

2. 3인3색의 사랑

사랑이었을까2


중요하진 않지만 불필요하지도 않은 업무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좀처럼 어느 누구도 경계를 넘지 않았기에 오해가 없었다.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던 어느 날 그와 그녀가 속한 두 부서의 회식자리가 있었다. 몇 병의 소주가 비워질 때마다 하늘을 비우듯 비도 억수같이 내렸다. 택시를 타려는 사람은 많았다. 그는 어렵게 택시를 잡았고 그녀를 포함한 같은 방향의 직원들이 뭉쳐져 자리를 채웠다. 한 명씩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내리다 보니 뒷 자석 나란히 연석과 이연만 남았다. 메신저 상에서의 상냥하고 정갈했던 대화가 없었다. 5층과 8층이라는 층간의 물리적 거리감이 걷히니 어색한 기류가 가득했다. 이연은 차창 밖만 응시했다. 도로는 꽉 막혀있었다. 40분이면 되었을 거리가 기약이 없었다.     


“에고 차가 움직이질 못하는구먼. 이런 날은 지하철이 나은데. 같은 회사? 거 머냐 회사커플? 건데 닮았네. 참 닮았어 두 분”     


막힌 도로 위에서 미터기 속 말만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민망함 때문인지 어색함을 깨는 기사 아저씨의 능청에 대답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닮았다는 말이 맴돌았다. 연석도 이연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손에 들린 양복 윗도리를 그녀의 허벅지 위로 덮어주었다. 백미러로 힐끔힐끔 쳐다보는 기사의 눈초리가 신경 쓰였다. 연석의 행동에 이연은 창밖의 시선을 거두어 그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연석의 동공이 커지는 것이 보였다.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선이 허물어지고 나니 연석과 이연의 마음이 서로에게 넘나들었다. 연석은 작은 바람에도 한들거리며 쉬이 웃어주는 이연이 코스모스 같았다. 바라보기에 참으로 예뻤다. 그는 이연에게 들려줄 것이 많았다. 한 번도 어긋나 본 적이 없는 꽉 막힌 어린 시절의 모습 시를 사랑하여 공모하였던 모습 화가가 되고 싶었던 학창 시절의 모습까지 함께 하지 못한 과거가 안타깝기만 했다. 이연의 순정은 말라가던 그의 수기를 채웠고 연석은 다시 살고 싶어졌다.     

 

이연은 두려움을 몰랐다. 그가 들려주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함께 할 미래를 꿈꾸었다. 이연이 그리는 모습은 단 한 가지였다. 완전한 그와 영원히 함께 하는 것. 이연의 바람을 누군가는 욕심이다 부정하다 할 테지만 상관치 않을 무모함이 입혀지고 있었다. 이연의 온 마음이 그에게 스며들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서른 중반인 연석은 누가 봐도 미혼자 같았다. 맞잡은 손으로 카페를 가고 시내를 걷고 소란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하루는 삼청동을 함께 걷다 ‘널담은공간’이라는 간판이 걸린 하얀색 아담한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옛 방식의 편지봉투 실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이연은 1년 뒤 서로가 받을 수 있도록 편지를 쓰자고 했다. 이곳은 실링뿐 아니라 원하는 날짜에 편지가 도착할 수 있도록 붙여주는 우체국 역할도 하는 곳이다. 둘 모두 은밀하게 편지를 쓰고선 봉투에 수령할 주소지를 적었다. 이연을 위한 연석의 편지봉투에는 그녀의 집주소가 적혔지만 연석을 위한 이연의 편지엔 연석의 집주소를 넣을 수 없었다. 이연은 봉투를 손에 들고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애써 보지 않던 한계선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에게는 또 한 명의 그녀가 있었다.   


       



어느 날부터 가연은 불편함을 느꼈다. 연석이 그녀의 말에 순응하지 않는 날이 많아졌다. 가연은 바로잡아야 했다. 아직 그를 보낼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가 최선이었고 지금도 그랬다. 연석의 변화의 이유 따윈 대수롭지 않았다. 가연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그 아이 그만 놓아줘. 당신이 가면 그 아이가 감당할 일들이 너무 커. 당신 집안이 그 아이를 받아줄 거 같아? 세상은 어떨 거 같아? 결국 그 아이, 당신을 원망하게 될 거야.”  

   

너무나 소중한 작은 여인인 이연이 배척당하고 상처받으며 후회하며 울부짖는 모습. 연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가도 되는 것인지 안 되는 것인지 그 작고 작은 여인이 견뎌낼 수 있을지 견뎌 내게 해야 하는지 고통스러웠다.     


‘꺾지 않는다면 코스모스는 내년엔 더 예쁘게 피어날 것이다’

     

코스모스를 보며 쿵 쾅거리던 심장이 파열되는 것 같았다.           

이연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이면 전부가 될 수 있다 믿었는데 연석이 자신을 가지려 들지 않는 모습을 납득하기 힘들었다. 그에게 다가가면 갈수록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거 같았다. 이연은 불안했다. 불안은 병증이 되어 그에게 비난과 냉소를 쏟아 붓기를 반복했다. 아팠다. 너무 아팠다. 익숙한 길인데 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다 그와 자주 머물던 한 카페 안에서 좋아하던 옛 가요가 흘러나왔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를’

    

이연은 그대로 주저앉아 울었다.

          

‘나는 사랑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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