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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해 Apr 17. 2023

[짧은 소설] 진희의 선물 2

다음날 아침 진희의 기대와 달리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침대에 딱 붙어 떼어낼 수 없었다. 선배에게 전화해 상태를 전하고 회사에 결근을 알렸다. 진희는 몇 시간을 더 자고서야 겨우 이불 밖으로 몸을 끌어냈다. 속은 여전히 불편했다. 헐렁한 바지에 두터운 니트 카디건을 걸치고 길 건너편 병원으로 향했다. 건물 2층에 자리한 병원으로 올라가려다 1층 약국이 눈에 띄었다.   

   

“속이 별로예요. 가슴통도 심하고 생리일이 가까워져 그런 듯해요”

“어떻게 안 좋으세요? 콕콕 쑤시기도 해요?”

“그렇진 않고 메스껍기만 해요. 역한 냄새엔 참기 힘들 정도로요”

“혹시 임신가능성은요?”

“네?”

“월경증후군과 임신초기증상이 유사하거든요. 혹시나 확인하는 거예요”

“없어요. 그럴 일”

“그럼 위장약이랑 생리통약 드릴 테니 복용해도 차도 없음 병원 꼭 가보세요”  

   

진희는 잰걸음으로 약국을 벗어나는데 손이 덜덜 거렸다. 임신이라니... 핸드폰 달력을 열어 전달과 이번 달을 번갈아 보며 계산해 보니 생리예정일을 한 참 지났다. 덜덜거림은 손에서 피를 타고 순식간에 심장으로 올라왔다. 말도 안 돼. 설마. 긴 게 아닌 게 되었음 하는 기적이 간절한 현실 부정의 단계에서 한 참 헤매며 걷다 보니 어느 편의점 앞이었다. 집에서 두 블록이나 떨어진 곳이다. 힘든 몸으로 걷기엔 무리가 되는 거리였는데 본능이 이 편의점으로 이끈 것이다. 자주 가는 집 근처 편의점 직원의 의아해하는 시선에 초연하게 굴 자신이 없었다. 진희는 들어가 모든 종류의 임신 테스트기를 구매했다. 약봉지에 같이 쑤셔 넣어보니 테스트기의 일부가 위로 튀어나왔다. 진희는 작은 한숨을 쉬고 검은색 봉투를 추가로 계산했다.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테스트기 사용법은 처음 읽어보지만 이미 수십 편의 드라마를 통해 예행연습이 된 마냥 어렵지 않았다. 충실하게 과정을 마치고 5분을 기다리면 된다는데 테스트기는 그녀의 소변이 닿자마자 진한 두 줄을 그었다.     

 

‘어찌 망설임도 없니’     


진희는 참을성 없는 테스트기에 원망을 뱉어냈다.  

    

덜덜거림은 심장을 지나 입술을 거쳐 눈까지 가파르게 올라갔다. 눈꺼풀이 바들거리고 입술은 타들어 가 말을 잃게 했다. 이 순간만큼은 예민하던 모든 통증이 멈춘 듯했다. 통증 주인의 심리적 충격을 알아챈 듯 동정을 표하며 잠시 기다려주는 눈치다.      


‘어쩌지’     


이 단어만 머릿속 가득했다.

      

네 살 어린 그다. 가까운 회사 동료들과 가끔 아주 가끔 이태원 나이트에 갔다. 3개월 전 방문이 그 가끔의 날이었다. 그 어린놈을 거기서 만났다. 연락처를 물어오는 그의 어설픈 정중함이 되려 귀엽기도 했고 하늘색 폴로셔츠를 입은 단정함이 경계를 낮추었기에 건네주었다.


이후 나이트가 아닌 낮이 있는 세상에서 세 번 만났다. 첫날은 바다 보러 가자는 그의 제안에 당일치기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는 어린 그 덕에 어색함은 없었다. 그러나 여자를 대하는 능숙한 처신은 오히려 진희의 호감을 반감시키긴 했다. 두 번째는 상사와 호되게 부딪히고 한풀이 하고 싶은 날 함께 술을 마셨다. 그날 딱 한 번 잤다. 그리고 세 번째 만남에 연인처럼 굴려는 그를 밀어냈다. 연하는 그녀의 타입이 아니었기에.      


진희는 어쩌지 싶다가 ‘애가 아빠 닮음 브레인은 좋겠네’ 란 생각이 들어 소스라쳤다.   

   

‘왜 낳기라도 하게 돌았어 정말 정신 차려’     


연하 남은 과고 조기 졸업 후 카이스트를 나와 게임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게임회사로서 우리나라 일등기업인 N사에 몸담고 있기에 찾아 나설 마음만 있음 식은 죽 먹기다. 더욱이 그가 아닌 자신이 마다했으니 다시 짠하고 나타나 서로의 책임을 다하며 이번 생 잘 살아보자 하면 말도 안 되는 해피앤딩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진희는 즉각 그 대안 위에 두 줄을 쫙쫙 그어 지워버렸다. 어린 그가 오케이 한다 해도 그를 자신의 공간 안에 그려보는 것만으로 몸서리쳐졌다. 당혹스러운 상황이라고 앞뒤 구분 없이 손부터 내미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것은 도피 결혼과도 별반 다르지 않을 위험수치다.


사념은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도는데 손은 인터넷 검색창에 ‘임신중절수술’ 이란 단어를 입력하고 상위 글부터 훑어 내려갔다. 이 문제의 풀이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야 할 것 같았다. 정해진 답은 여의사야 했고 규모가 작은 개인 병원을 물색해 중절 수술을 감행하는 것이다. 검색할수록 임신 초기엔 아기의 기관이 덜 발달된 만큼 통각이 미약하단 검증 없는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한 글들을 쫓아 돌아다니는 건 예정된 죄책감을 덜고자 함도 있을 테다. 그러다 이 죄스러움을 고스란히 자신만 져야 한다는 것이 마땅찮아 화가 나기도 했다. 허나 그에겐 고민의 기회조차 주지 않은 쪽 또한 자신이기에 그대로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어쩌지’에서 시작된 고민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수술 쪽으로 결론내고 있었다. 밤은 아직인데 갑작스레 쏟아지는 잠에 진희는 침대에 모로 누웠다. 이성과 달리 왠지 모르게 행동이 조심스러워졌다. 양손을 몸 양 옆으로 가지런히 두었다가 슬금 배위로 살포시 얹었다. 손의 무게도 무리가 될까 싶어 힘을 내리지 않고 부드럽게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녀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진희의 손이 약손이 되어 자신의 배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성의 있는 손길을 누구에게 전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어제 하루 진희의 세계엔 강진이 닥쳤으나 아무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진희는 평소대로 출근을 해야만 했다. 신발장을 열어 보니 그녀의 구두 굽들이 그야말로 킬힐이었다. 저것들을 신고 나갔다간 누굴 잡지 싶었다. 칸칸을 뒤적여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낮은 굽 신발을 찾았다. 평소 보지 않던 구석을 샅샅이 살펴도 낮은 굽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5센티 정도의 넓은 굽을 발견 했는데 검정 슬랙스 바지에 나쁘지 않았다. 핸드백 보단 좀 더 큰 가방으로 소지품을 옮겨 담았다. 편의점에 들러 사탕과 한입에 먹을 수 있는 비스킷들로 채워 넣어도 표가 나지 않을 속이 넉넉한 가방이었다. 진희의 입덧은 먹덧이다. 입안에 음식을 오물거리거나 위장을 가득 채우면 메슥거리지 않았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양식은 자신이 아닌 필요한 누군가를 향해 가는 것 같아 비워두기 미안했다.      


그제는 힘겨웠고 어제는 모든 게 흔들렸는데 하루사이 이상할 정도로 차분해졌다. 병원을 가야 한다는 잠정적 결론과 다르게 행동하는 모습이 모순되긴 했지만 그 또한 자신이기에 막을 방도가 없었다. 진희는 이 아기를 지나쳐버리면 다시는 엄마가 되지 못할 거 같은 불안도 크게 자리했다. 사랑이 아니었을 뿐이지 그 어린놈이 나쁜 놈 같지는 않았다. 드러낼 아비는 아니지만 혹여나 불미스러운 일로 신문이나 방송 나올 위인만 아니면 괜찮다 싶어 세 번의 만남뿐이었던 그를 떠올려 다각도로 판단해 보기도 했다. 남편이 있었음 했지만 아기와 먼저 연이 닿았다면 순서야 바뀔 수 도 있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진희는 그녀의 아기와 그녀의 남편이 반드시 생물학적으로 동일한 구조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친구들은... 회사는... 자신이 얼마나 우스워보일지 훤했다. 그뿐 아니라 아기는 태어나 보니 엄마만 있다. 자신은 선택했지만 아기는 선택권이 없었다. 공정치 못한 처사라 따져 묻는 다면 해줄 말이 없다. 더욱이 친부가 세상에 존재하는데도 생의 마감일까지 모른채 살아야할 운명이라니.

      

그 현실을 낙관할 수 있을까. 주변사람들보다 아이가 가질 빈 공간에 대한 미안함엔 그야말로 답이 없다. 또 한 편으론 자신이 침묵하더라도 그날 동행한 동료들을 통해 연하 남에 대한 정보가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아이가 아비를 영 못 찾을 일도 아닌 거 같았다. 상상이 거기까지 미치니 정신이 미칠 것 같았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스트레스 때문인지 다시금 울렁거림이 파도처럼 올라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쉴 새 없이 과자봉지를 뜯고 씹고 하며 부스럭거렸다.    

  

“진 커피 한잔할까?”     

부산스러운 그녀에게 선배가 다가왔다.      


“너 몸은 괜찮아? 어제는 다 죽어가더니 오늘은 단거 입에 달고 살고 이상해”     

진희는 입을 다문 채 시선을 피했다.      


“왜 말 못 할 병이라도 걸렸어? 그래서 먹고 싶은 거 맘껏 먹고 죽자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 예요 선배”     


“아닌 게 아닌데. 평소랑 너무 달라. 임신한 사람처럼 그리 종일 쩝쩝대는 이유가 뭐야?”  

   

진희는 선배의 말에 당황스러웠지만 티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아직 어찌해야 할지 모른 채 두서없이 터놓고 싶지는 않았다. 최악으로 한심해 보일 것이다. 진희는 머뭇하며 별일 아니다 다이어트한다고 늘 자제했던 게 아파보니 억울하더라. 당분간 선물 주듯 맘껏 먹어보는 거다 둘러대며 자리로 돌아왔지만 이젠 먹어도 속이 편치 않았다. 병원을 알아보자는 이성과 달리 이번엔 ‘미혼모 가정’ 이란 검색어를 넣고 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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