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이신가요?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면 기획안 쓰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대행사에서 일하고 있다면 숨 쉬듯이 제안서를 쓰기도 하죠. 기획안이나 제안서는 사실 같은 맥락입니다. 청중을 설득시키는 일입니다.
20대 때 처음 기획안을 썼을 때는 해당 과제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최대한 잘 파악해서 좋은 솔루션을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짓말 조금 보태어 코피까지 흘리며 밤새도록 준비한 기획서는 발표에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발표를 못했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데 해석도 좋았고 아이디어도 좋았는데 왜 잘 안 됐을까. 떨어진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으니 억울하기만 할 뿐이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었어요."
내가 이 과제에 대해 이렇게나 흥미가 있다, 이만큼 공부를 했다...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니까 설명할 이유가 없었던 것들이고 과제를 수행시킨 그들도 결국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테니 지루한 이야기였을 겁니다.
도입부가 그러니 아이디어들도 자아도취에 취한 것들로 들렸을 것이고 실제로 공부한 기반에서 나온 것이니 색다를 것도 없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제가 놓쳤던 부분은 바로 '의도'였습니다.
"왜 나에게 이 과제가 들어왔는지."
"나에게 이 일을 준 사람들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
"지금 내가 가진 역량으로 채워줄 부분이 무엇인지."
나에게 과제가 들어오면 '과제를 면밀히 파악하고 분석하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이전에 상대방은 나에게 '어떤 것'을 기대했는가, 나는 또 여기서 '무엇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20대의 저는 그 부분을 놓쳤습니다. 아니 이후에도 여러 번 놓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지금도 제안서 쓰는 일은 어렵습니다. 상대방이 저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는 것, 거기에 내가 어떤 답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일은 시간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쓰면 쓸수록 실력은 늘어갑니다. 여기에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나만의 경험이나 관점들을 녹여낼 수 있다면 더더욱 좋을 것입니다.
저는 모든 일의 바탕은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는 편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 어렵다면 먼저 일을 준 누군가를, 또는 문제를, 아니면 관계되어 있는 모든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그럼 전혀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솔루션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뭔가 그냥 무의식적으로 했던 작업들을 설명하려고 하니 어수선하고 어렵네요. 이것 역시 계속하다 보면 늘 수 있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