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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재 Jun 06. 2023

[편론] 영화 <가타카>를 보고서

(이 글에는 영화 내용에 관한 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미래, 인간은 태어나기도 전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된다. 잉태되는 순간부터 부모의 우월한 유전자 형질만이 선택되고, 태어나면서부터 자신의 수명, 질병, 성격, 경향 등 앞으로의 삶에서 드러날 모든 것의 정보를 알 수 있는 인간. 오히려 부부의 정상적인 애정관계에서 태어난 아기는 각종 열성의 형질을 무수히 많이 갖고 있는 부적격한 인간으로 치부되며 사회적 차별의 대상이 된다.

  주인공 빈센트는 부적격자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비극적인 운명 앞에 많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자식에게 잠재된 각종 질병이 언제 발병할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부모의 태도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태어난 동생과의 신체적, 정신적 발달의 비교는 빈센트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그러나 빈센트에게는 우주 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간절한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것은 비단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닌데) 자신의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기 시작한다. 빈센트는 허약한 체질임에도 꾸준히 노력하는 끝에 동생과의 수영 대결에서 이긴 뒤 자신의 운명이 단지 유전자로 인해 결정되는 것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리고는 홀연히 집을 떠나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는데 특히 그 노력의 끝에는 제롬이라는 우월한 인간의 유전자를 구매해 그의 신분 자체를 빌려오기까지 한다.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적격자인 빈센트의 신분으로는 우주로 나갈 수 있는 기회조차 얻어낼 수 없던 사회적 차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으로는 부적격자를 차별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어느 사회나 인간들에게 차별은 존재한다.)

  제롬은 태어나면서부터 각종 우월한 유전자는 모조리 담고 태어났다. 신체, 지능, 감정 등 어느 것 하나 뺄 것 없이 뛰어났던 그는 촉망받는 수영선수로 자라났다. 그런 제롬이 자신의 유전자와 신분을 판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불의의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면에서 뛰어난 인간으로 태어나 자라왔지만 자신이 쌓아왔던 모든 것이 교통사고 한 번에 통째로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큰 좌절을 겪는다. 처음에는 빈센트가 자신의 유전자를 구매해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려는 노력을 보며 냉소적으로 비웃지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내는 빈센트의 의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가며 제롬은 빈센트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간다.

  영화는 빈센트가 각종 위기와 위협으로부터 끝끝내 자신의 꿈을 지키고 또 이루어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1997년에 개봉한 이 영화가 최근 들어 다시 각광받는 이유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 등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영화 속 이야기를 우리 현실의 사태로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통한 아기가 출산되었고 이미 대부분의 유전자 조작 기술은 상용화 단계에 들어섰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처럼 유전자 조작을 통한 신인류는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인간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재고를 요구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우연한 유전자의 선택으로 잉태된다는 점(이는 누구의 유전자를 물려받느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유전자 속에서 무엇을 물려받느냐에 관한 논의다)에서 우연적으로 태어난 인간이었고, 어떤 질병, 수명, 성격을 가질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지의 가능성 속에 살아가는 인간이었으며, 언젠간 죽어야만 한다는 점에서 유한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생명공학의 발전은 새로운 인류가 선택되어 태어나고, 정해진 운명으로 살아가며 어쩌면 영생을 누릴 수 있을 거란 전망을 제시한다. 이렇게 존재의 근본적인 조건이 바뀌는 신인류는 우리가 감히 예상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인생을 살아갈 테지만, 그럼에도 한편에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신인류를 더 이상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란 두려움에서 기인한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인류에게 무지함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작동해왔다. 인간은 모르는 것을 탐구하며 새로운 지식을 쌓아왔고, 모르는 곳을 탐험하며 새로운 세상을 발견해갔다. 그러나 인간의 운명이 태어나기도 전에 모두 결정된다면 그런 인간에게 어떤 가능성이 존재할까? 영화 속에서는 여전히 우주에 대한 신비가 신인류가 삶을 살아가는 동력이 되는듯하다. 그러나 여전히 선택된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허락되는 우주 탐사는 전체 종species으로서의 인류에겐 발전일지 모르나 그렇지 못한 개인에게는 어떠한 가능성도 허락되지 않은 기계적인 삶을 강요할 뿐이다. 아마도 제롬이 하반신 마비를 겪으면서 느꼈던 상실감은 이런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자신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조건대로, 그 궤도 위에서 누려야 했던 삶으로부터 이탈되었을 때 오는 좌절은 아마 그의 인간성에 큰 상처를 주었을 테니까.

  그런 제롬이 끝내 빈센트의 노력을 인정하고 그를 응원하게 된 것은 정해진 것이라 생각했던 운명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선택해 가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일 것이다. 제롬에게 빈센트는 꿈과 가능성의 상징이었다. 자신의 조건에 관계없이 꿈을 꿀 수 있다는 것, 자신의 인생을 결정된 것이 아닌 가능성이 가득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 삶에 관한 이런 태도는 결정론적인 인생관을 가진 이들, 특히 제롬과 같은 이들에게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인간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빈센트가 보여주는 이러한 태도는 지금 우리가 지닌 모습이기도 하다. 누군가 인간을 땅에 두 발을 디딘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존재라고 했던가. 우리는 여전히 유한한 조건 속의 인간이면서도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는 존재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가타카는 우리에게 미래의 대안을 고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된다.




* 여담으로 영화의 제목이자 주인공의 목표가 되었던 우주항공 기업의 이름인 가타카(GATTACA)는 유전자의 염기서열인 A, G, T, C의 조합이라고 한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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