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완벽한 타인>을 해시태그로 표현해보라 한다면 나는 #정체성 과 #관계 로 표현하고 싶다. 이 두 가지 주제는 영화의 내러티브 안에서 교묘하게 얽혀 있지만 오히려 더 깊은 철학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면 두 주제는 원래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각자의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또 정체성을 가지고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것을 현대철학에서는 상호주관성(intersubjectivity)이라고 했던가. 고상한 철학적 논의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분명 영화는 이와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정체성’과 ‘관계’라고 불리는, 한 개인을 만들어내는 내적이고 외적인 요소는 사실 인식론적인 구분이다. ‘정체성’과 ‘관계’는 실체가 없는 개념일 뿐이며, 세상에는 오직 ‘나’와 ‘타인’ 만이 존재한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이 개념이 세계에 실체로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곧 나의 정체성이자 내 관계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으며, 영화 <완벽한 타인>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스마트폰은 과연 나를 얼마나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스마트폰에 담긴 나의 진짜 모습을 드러낼 용기가 우리에겐 있는 것일까? 현대인과 스마트폰의 관계는 단순한 종속 관계를 넘어 필연적이고 존재론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스마트폰 속의 나’를 아바타 정도로 여길 수 있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으며, ‘스마트폰 속의 나’도 내 존재의 본질적인 한 모습으로 인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스마트폰 속으로 빠져들어 갈수록 우리 존재는 점점 ‘현실 세계의 나’와 ‘스마트폰 속의 나’로 이원화되어간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것처럼 모든 개인은 ‘현실 세계의 나’와 ‘스마트폰 속의 나’가 전혀 다른 인간이다. 스마트폰이 하나의 블랙박스로서 우리의 비밀을 감추어주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그 속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아가 어쩌면 우리는 그 속에서 더 행복해하는지도 모르겠다.
관계라는 것은 사실 개인의 솔직함을 필요로 한다. 관계는 신뢰 위에 만들어지고, 그 신뢰는 각 개인의 정직함이 만들어낸다. 그러나 영화에서처럼 모든 개인이 극단적으로 솔직해진다면 관계가 올바르게 유지될 수 있을까? 오히려 약간의 거짓과 비밀이 관계를 더 윤택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사람은 솔직해야 한다. 거짓만을 일삼는 사람과는 그 어떤 관계도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러나 솔직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나에게? 타인에게? 대체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 것인지 우리는 판단의 척도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먼 훗날 인류는 2007년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 해 스티브 잡스라는 혁명가는 인류에게 큰 선물을, 아니 어쩌면 전혀 새로운 삶의 모습을 선물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2007년 이후 우리의 삶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다. 우리는 어느새 손에 잡히는 작은 스마트폰 하나에 우리 삶의 거의 모든 것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변화가 찾아온 지 10년 남짓한 사이, 스마트폰은 어느새 또 하나의 내가 되었으며, 오히려 나보다 더 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새로운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생각을 요구한다. 앞으로 인간은 어떤 정체성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관계를 만들어가야 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질문에 과연 ‘옳은’ 방향은 존재하는가?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