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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Jul 24. 2024

수요일의 이야기/나이 들어가며 알게 된 일

오르고 내리고 달리다 멈추는 일


아뿔싸, 이미 나이가 들어버렸다. 나이 든 '어른'이 된다는 건 아이가 성인이 되는 것만큼 버거운 일임을 알아버렸다. 자격증이 있는 일도 아니고 어떤 코스에 그 당위가 확실히 드러나는 일도 아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채로 나이가 들면 그냥 나이 든 어린이가 되는 것을 나이가 들고 알게 됐다. 그런 자신이 들통나기 전에 부지런히 누군가의 뒤를 따랐다. 그 누군가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때로는 귀여운 아이에게서 때로는 지나는 행인에게서 또 때로는 성숙한 인격을 갖춘 젊은이에게서도 그것을 배운다. 자연에서 배우고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배운다. 그렇게 다시 2차 배움의 시기가 지나고 있다.


'무엇'이 되던 시간에서 '어떤'이 되는 시간으로 가고 있다. 늦었지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 훌륭한 '어떤 무엇'이 동시에 되었더라면 좋았겠지만 그 시간의 나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 같았다. 앞만 보고 뛰어야 했고 명확하게 주어진 그 길을 가며 목적지에 빠른 속도로 도달해야 함을 반복적으로 했다. 목적이 분명한 경주마의 트랙은 끝이 없다. 몸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반복적으로 달려야 한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것을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아니 알아도 이해하지 못했다.


산에 오르고 앞사람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다시 정상만을 바라보고 발밑만 쳐다보느라 주위를 둘러보고 숲을 느끼고 향기를 맡을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벌레를 피하고 해충을 피하며 발 끝만 바라보고 앞으로 앞으로 경사면과 몸의 각도를 같이 하며 땀방울을 닦으며 한 방향으로 만 올랐다.


나이가 들며 알게 됐다. 산을 오르는 길은 우회 도로가 있음을 슬로프는 차도가 있음을 더러는 샛길도 허용됨을 말이다. 산을 오르는 일은 내려오는 방법을 배우는 일이다. 어디든 오르는 일은 반대 방향을 알게 되는 일이다. 오를 때 그리 보고 싶었던 정상을 떠올리느라 둘러보지 못했던 사방을 둘러보는 일이다. 정상이 제아무리 좋아도 평생 그곳에 머무를 수는 없는 곳이다. 협소하며 바람 한 점 막아주는 곳 없는 의지할 곳 없는 벼랑이다. 잠시 오르느라 흘렸던 땀방울을 식히고 한기가 덮치기 전에 서둘러 체온을 유지하며 오던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하는 일이다. 기가 막힌 풍경을 감상했으면 뒤따라 오던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기꺼이 내어주고 돌아갈 길에 설레어함을 나이가 들어 배웠다.


나이가 들면서 내리막을 배운다.


내려오며 느끼는 두 다리의 긴장감과 시야에 보이는 수많은 초목과 그 사이 저절로 누그러지는 조급함과 느긋함에서 오는 콧노래까지 모두 챙겨가는 감사한 길이다. 내려올 때야 비로소 알게 되는 산에 오르는 기쁨, 내려올 수 있어 기분 좋은 올라감이다. 배우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


내려가는 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이가 들며 배운다. 오랜 시간 갈고닦은 습관이 내려오는 길에 만나는 무수히 반복되는 낯선 경험을 의연하게 마주하게 한다. 풀린 다리에 휘청거려도 이 길 끝에 평지가 있음을 알고 천천히 내려가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음을 안다면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길에 부는 바람을 기억하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건 끊임없이 배우는 일이다.


눈 주위의 안대가 벗겨져 세상이 넓다는 걸 알게 되고 축사를 나오니 갈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서 골인을 향해 뛰지 않아도 너무 행복하다는 걸 배우게 된다. 받아들이는 순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된다. 산을 내려오며 땅에서 느끼는 안도를 배우게 된다.


깊은 숲을 바라보고 그 나뭇잎 사이로 뚫린 하늘을 바라보고 그늘에 핀 꽃을 발견하는 일, 나이가 드니 좋다.


내리막길에서 배운다. 멈춤에서 배운다. 부족함에서 배운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나를 배워가는 중이다. 나무와 꽃들과 새들 사이 아래로 향해 흐르는 물을 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는 중이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무엇이든 배우고 스스로 해결하는 사람, 자신을 잘 알고 돌아보는 사람으로 지난 세월이 약이 되는 사람으로 머물고 싶다. 존재와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으로 나이 들고 싶다.





https://youtu.be/NlwIDxCjL-8?si=_4vdpe5SvOWzStr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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