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운운해도 되는 나이가 있는 건 아니다. 살 날이 짧아지는 나이니 자신의 삶을 돌아봐야 하는 시간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시간의 주인이 되어가는 이 시간대가 나쁘지 않다. 사회에서 물러나면 삶에서 아웃되어 사라지는 줄 알지만 막상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좋은 점도 많다. 무조건 좋다는 정신승리의 영역이 아니다. 다만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햇살이 비추던 찬란하고 아름답던 시간도 소중하고 그 햇살 아래 그늘진 자신의 모습도 보듬어야 하는 걸 아는 나이라는 것이 감사할 뿐이다. 화장을 하고 볼을 붉게 물들이며 속눈썹을 한껏 늘려 치켜올리던 시절도 있었다. 싱그러웠고 좋은 생각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시간들이다. 세상이 어디 그런가. 책을 통해 삶을 배웠다면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현실은 치열하고 지저분하고 더러우며 무지개빛이 아니라는 걸 알만한 나이. 그 나이가 너무 일찍 온 애어른이 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나이에 맞게 세상을 바로 바라보고 사느라 고군분투하던 자신을 되돌라 보는 시간. 이 시간이 성숙의 꽃이다.
적당히 철없고 유치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햇살아래 나와 그 발밑의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그랬다. 밝게 빛나던 나만 존재하던 건 아니었다. 감춰둔 자신을 마주하는 일. 유치하고 못난 부족한 자신을 꺼내어 들여다보는 일이 이 시간에 해야 할 일이다. 소풍이 끝나기 전에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데려갈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나이가 시간만큼 쌓이면 누군가의 말을 듣거나 바꾸기가 쉽지 않다. 이 말은 정말 무서운 말이다. 스스로 보기 싫은 짙은 흉처럼 남아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 큰 일을 저지르지 않았고 법의 테두리 안에 살았다고 해서 그런 두껍고 흉한 딱지가 없는 건 아니다. 모든 인간은 그러하고 그것이 인간의 속성임을 깨닫는 순간 나아질 수 있는 여력도 마련되는 거니 지금이 기회다.
나의 흉물스러움을 마주하는 시간. 그 짙은 그림자 속의 감추어둔 나를 꺼내어 들여다보고 위로해 주는 일. 죽기 전에 이 일을 해야 한다. 마치 다용도실 구석에 다락방 구석에 쌓아 놓고 잊고 있던 기억들처럼 먼지 속의 나의 불완전하고 어리석음을 꺼내어 털어 버려야 한다.
보잘것없던 시기심과 부족한 배려로 혼자 신났던 시간을 돌아봐야 한다. 꺼내기 아픈 것이 진짜 나의 상처임을 깨닫고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이 가득한 나의 심술과 심통을 꺼내어 왜 그랬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사소했지만 이유는 분명히 있었을 테고 위로가 필요할지 반성이 필요할지 그 아픔과 고통을 마주해야 할 것이다. 자신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그곳에서 진짜 나를 발견할 테니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나를 마주하고 바라보며 인정하는 일이 필요한 시간이다. 화해하지 못한 나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의식하지 못한 어린 나를 의식하며 반성이 어려우면 변명이라도 해야 하는 시간이다.
남아있는 날들에 필요한 것은 엄청난 물건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을 알아보는 눈과 마음이 필요하다. 모두 눈에 보이지 않으니 남에겐 아무 소용이 없다. 나와의 관계다. 나만 아는 보잘것없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용서를 하고 화해를 하는 시간. 나이 듦의 시간이다.
잃어가는 것들에 연연하고 매달릴 시간이 없다. 남아있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나와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다. 잃은 것이 많다. 갖지 못한 것도 많다. 어쩔 수 없다. 아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을 들여다보면 된다. 생각보다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들이 남아있다.
홀로 움직일 수 있는 육신과 건강한 마음이 있다면 줄어드는 시간이 안타까울 뿐 불평할 시간은 없다. 지나간 아름다움에 집착할 여력도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며 턱을 떨구는 일도 다 부질없는 일이다.
소소함이 다가오는 시간, 지천에 널린 아름다움에 넋을 잃을 줄 아는 마음가짐, 그리고 남아 있는 온기를 필요한 누군가와 같이 한다면 자신이 가진 오늘이 가득 차 넘칠 일이다.
잊힘도 잃어버리는 것들도 누구에게나 오는 일이다. 그 '상실'에 익숙해져 가는 시간. 손에 쥔 것들을 놓아주며 소중한 것들로 채우는 시간. 그 소중한 것을 결정하는 건 스스로의 문제다.
소중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뿐이다. 나누기에 충분하다. 같이 소중한 기억을 그려나가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같이한 따뜻한 기억이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고 마주 보고 한껏 웃는 웃음이 메아리가 되어 남은 시간을 채우리라. 먼저 챙기고 나머지도 챙기면 좋을 듯하다.
https://youtu.be/_JGGLJMpVks?si=OqjHBMdrkKMFMS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