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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Aug 14. 2024

수요일의 이야기-멋짐 사이

나이 듦과 멋짐 그 사이를 발견하다


공사장 가림막 긴 끝을 따라 길을 간다. 가림막자락에 여름이 뿌려놓은 잡풀들이 삐져나오고 있다. 무수히 반복되는 그것들 사이 구면은 강아지풀 하나다. 비가 예고된 오후의 전조일까, 서늘한 바람 한 뭉치가 스치고 지난다. 앞서 가는 사람의 비누 냄새가 같이 묻어 나온다. 운이 좋다. 여름에 비누냄새가 바람에 실려오다니….


출근 행렬이 끝난 아침, 운동을 가는 사람과 다녀오는 사람 그리고 검은 전기자전거가 지난다.

글로벌 그룹의 음식배달 서비스다. 검은색 착장에 검은 마스크와 안전모를 쓴 중년의 여인. 날렵한 자세로 자전거 뒤에 음식이 담긴 검정박스를 싣고 바람을 가른다. 멋지다. 왠지 그 날렵함과 거리가 있을듯한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그 가벼운 속도가 멋있다. 나이를 가르고 넘나드는 일, 멋지다.


땡볕이 미간을 잡아당기는 사이 여러 사람이 곁을 지난다. 말없이 멀찍이 떨어져 걷던 두 중년, 지하철역 입구로 같이 들어간다. 유리 천장 아래로 쏟아지는 햇살을 살며시 양산으로 가려준다. 돌아보지도 않고 별 말이 없다. 개찰구를 지나 역사로 들어서며 서로 마주 보고 인사를 한다. 잘 다녀오라고 이따 만나자고… 그렇게 각자 갈 길을 가는 두 사람은 오래된 부부 같다. 똑같은 색은 아니지만 단정하고 검소해 보이는 외출복이 풍기는 짝꿍의 분위기. 말은 없지만 조용히 서로 챙겨주는 익숙한 모양새. 보기 좋다. 낮시간에 짝을 지어 다니니 은퇴한 노부부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르지만 단정하고 반듯한 차림이 젊어 보인다. 멋지다.


별다른 꾸밈이 없어도 멋져 보이는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의 이름표를 뗀 삶. 그 후로도 스스로 반짝거리는 존재감을 느끼게 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오랜 시간 직업을 호칭으로 사용해 왔다. 과거가 되면 전-이라는 접두사까지 동원해 자신을 증명하는 사회다. 전이사장님, 전국장님, 다른 나라 문화를 겪으며 그 일이 너무 어색한 일임을 알게 됐다.

지나간 시간에 연연하느라 현재를 놓치는 중이다. 예전에 무엇을 했던 업적은 참으로 소중하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름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덮어버릴 일은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연령 상관없이 불러주는 일은 멋진 일이다. 그 존재의 다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이름이니까.


나이가 들어가니 삶의 새로운 멋짐이 눈에 띈다. 젊어서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소중한 가치들이 되새겨진다. 반듯하게 편 등줄기에 씩씩한 걸음걸이, 정성껏 꾸몄지만 과하지 않은 단정함이 보이는 차림새, 편안하고 여유 있는 표정들이 눈길을 끈다. 옆에 있는 누군가를 위한 배려와 조용한 다정함이 돋보이는 나이. 나이 듦의 멋짐이다.


모두에게 앞다투어 나아가던 치열했던 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서정주 시인의 '국화 옆에서'를 읊지 않더라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모두가 눈에 들어오는 나이가 되었다. 지난 시간은 지나간 대로 공과는 있었을 터 돌아보지 않고 현재에 시선을 두는 시간이다. 지금 이대로 소중함을 챙기는 나이.


조금 낮아진 마음으로 조금 넓게 바라보며 조금 멀리 내다볼 줄 아는 느슨하지만 너그러운 사람의 시간을 발견한다.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다가온다. 하루를 지날 때마다 낯선 것들이 스치고 지난다. 그 속에서 멋짐을 가려낸다. 요란스럽지 않은 찰나에 무르익어 영글어가는 사소한 근사함을 발견한다. 나이가 드니 알게 되는 멋진 순간이다.







https://youtu.be/P8jOQUsTU9o?si=dsTkwdnuw1y-vCU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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