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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Aug 28. 2024

수요일의 이야기/오히려 좋아

손사이를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식기세척기는 나의 최애 가전이다.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뜨끈하고 반짝거리는 유리그릇의 입구가 깨졌다. 언제 무슨 일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식구가 셋이라 여름 디저트 그릇으로 달랑 세 개만 구입한 아이다. 이제 하나를 떠나보낸다. 그리 오래 쓰지 않았으니 이별도 서툴다.

신문지에 싸서 버리려다 다시 풀어본다. 내 눈에만 보이는 가장자리의 상처, 다시 부여잡고 싹이 트고 있는 아보카도 씨앗을 작은 돌 들과 함께 넣어본다. 언젠가는 다시 이별을 하겠지만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자가면역 질환이 생긴지도 모르고 아침마다 그릇을 깨며 보내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게 낡은 그릇이 손끝을 빠져나가고 새 그릇들이 자리를 메웠다. 살면서 그릇을 깨본적이 없던 나에게 단기간에 한꺼번에 경험한 믿기 힘든 일이었다. 관절에 이상이 생기고 모든 감각기관이 소동을 벌인다. 쉼을 잊은 일상의 당연한 귀결이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일을 그만두고 휴양 같은 일상을 선택했다.


의욕이 함께하지 못하는 체력이 불러온 일이다. 힘겹게 나이를 먹어감을 느꼈다. 부단히  한 길을 전력질주했던 시간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더', '더'를  외치며 나를 사지로 몰아갔다. 하면 된다가 불러온 참사다. 나이를 먹고 있었다. 세월이 가고 있었다. 어린 날에 학습된 자신을 몰아붙이는 습관은 스스로 자각하고 내려놓지 못하면 병에 걸려 브레이크를 걸게 된다. 몸이 살아야겠다고 아우성을 칠 때 나를 발견했다.


인정하기 어려운 나이 듦이다.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노화가 나에게도 찾아온 것이다. 아이에게 찾아오는 사춘기가 힘겹듯이 성인에게 찾아오는 노화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삶의 주기다. 부인해도 자연스럽게 나를 밀고와 내게 주저앉는다. 마음이 청춘이라 아무리 외쳐도 오래 쓴 자동차가 신차가 되진 않는다. 받아들여야 하는 지점. 그 지점을 만나던 그 시기는 참으로 당황스러웠다.


계획한 일을 해내야 하고 그것이 타인의 조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을 오랜 시간 해 온 사람은 자신의 무너짐을 견디는 일이 쉽지가 않다. 무너지지 않았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고 다시 주저앉기를 반복한다. 그러다 문득 알게 됐다. 마뜩지 않게 선택한 쉼과 휴식의 기쁨을. 무엇이든 겪어야 알게 된다. 발버둥 치며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의 뒤편에 자리한 이 평화와 안식을 보지 못했다.


알게 되니 꿀맛이다. 부단히 발버둥 쳤던 시간들이 마련해 놓은 현재가 아껴 쓰기 딱 좋은 적정 상태로 내게 다가왔다. 지나쳐도 지루할 테고 과해도 옳지 않은 아주 좋은 상태. 그렇게 나이가 들고 있다. 내려놓으니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고군분투가 무한대임을 알지 못했으니 내가 선택하지 않았으면 일생은 그렇게 무한루프에 빠져 스스로 담금질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시작은 불편함에서 시작했지만 끝은 알 수 없는 일이고 바라는 건 확실히 줄어들었으니 오히려 좋다. 생계가 해결된 노년에 바라는 건 한 가지 건강이다. 욕심과 욕망과 결별을 하니 모두의 건강을 바라며 하루를 보낸다. 무사한 하루에 무사귀환이 바람이 됐다.


숨 막히는 여름처럼 젊은 날은 찬바람 앞에 서서히 고개를 숙이고 그렇게 저물어 간다. 태풍의 끝자락에 가을이 실려온다. 짧게 지나는 가을 같은 이 인생의 낯선 길목. 알아봐 주지 않으면 휙 하고 지나치며 노인이라는 그룹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른다.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부지런히 주변을 돌아봐야 할 나이. 오히려 좋은 그런 나이가 됐다.







https://youtu.be/veYDlD8o7UE?si=UY0ZGatkDl-7sW9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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