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적령기를 막 지나려는 무렵 바라보던 기성세대는 젊지도 그렇다고 나이 들지도 않은 채로 참 속물 같았다. 하는 얘기마다 돈이야기이고 학벌이야기였으며 권력과 힘에 대한 관심이 어찌나 많던지 무슨 말을 하든지 듣기 싫었다. 관심의 범위가 참으로 한정된 통념 일색이었다. 욕망이라는 덩어리를 감싼 채로 정해진 길로 질주하며 안주하는 것을 꿈이나 희망이라 부르던 이해하기 어렵던 그 세계.
마치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양 떠받들며 그 모든 외적조건을 내려놓으면 세상이 무너질 듯이 겁을 주곤 했었다. 20대를 막 지나고 또 다른 세상에 접어들던 풋내기에게 그들이 던지는 세상에 대한 비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그 나이를 지나며 가치에 대한 생각이 백번도 더 바뀌는 시간을 보냈다. 갈등의 시간이었고 야합의 시간이었으며 조율과 포기가 오고 갔다. 이루고도 갈증만 심해지는 삶에 부끄러움과 수치를 감내하고 구겨진 자존심을 애써 펴며 자신을 부인하기도 했었다.
이 모든 일이 과거가 되며 나는 마뜩지 않다 생각한 시간에 완벽하게 일치됐고 스스로를 한심하게 돌아볼 여유조차 없었다. 세상 속에 같이 묻어나 변별력 따위는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그 기준에 맞추느라 젊음을 몰아붙였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세상의 구태의연함에 꼭 맞춘 채 낡아가고 있었다. 세월보다 안타까운 퇴색이었다.
그런 나를 건져내기로 결심했다. 나이 들어 순진함은 옳지 않은 일이니 순수해지기로 마음먹었다. 켜켜이 뭍은 세상의 때를 벗기고 마땅히 그래야 할 바람직한 방향으로 몸을 틀기로 했다. 물리적으로 물러남을 곱게 안고 정신적으로 젊음을 회복하기로 했다. 낡은 틀을 벗어내고 자유롭고 자연스러운 자신이 되기로 했다.
필요한 건 없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정화를 원하는 간절함이 필요할 뿐이다. 다시 맑아지기 좋은 시간이다. 나이가 들어가며 원하는 모습으로 살기에 적당한 시간이다. 비우고 게워내고 반짝이고 투명하게 윤색할 시간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소유에 미련을 버리고 필요에 집중하고 현재를 즐기는 시간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 듬뿍 앓고 나면 원하는 것이 줄어들고 선명해진다. 건강하지 않으면 다 소용이 없음을 알게 된다. 삶이 단출하고 가벼워져도 좋은 나이라니 감사한 시간이다. 책임과 의무가 줄어드는 시간이다.
줄이고 줄여도 다시 꽉 채워지는 미련과 탐욕을 떨쳐버릴 시간이다. 초여름에 태어나 매해 여름이면 끙끙 앓는다. 한 달 남짓 정신없이 앓고 나니 가벼워진 몸이 날아갈 듯하다. 그 사이 계절이 바뀌고 가벼운 바람이 분다. 무거워 들지 못하던 몸과 마음을 일으킨 오늘이 너무 소중하다.
양손에 움켜쥐느라 쓰지 못했던 손을 쓸 수 있는 시간이다. 욕망을 꼭 쥔 손을 활짝 펴면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들이 너무도 많음을 깨닫는 시간, 나이 듦의 시간이다. 꼼지락 거리며 무언가 일구어내는 시간들. 빚어내는 작은 결과물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마음을 정화시킨다.
나이가 드니 좋다. 삶의 짐을 내려놓은 자유로운 두 손을 움직여 양팔을 벌려 안아주고 다독여 주고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넉넉한 품이 좋다.
나이가 드니 참 좋다. 알아도 모르는 척 모르는 걸 모른다 할 수 있는 여유와 빈틈이 좋다. 기대하지 않는 사이 조금 더 아이에 가까워지는 순수를 꿈꿔도 되는 이 물러남이 좋다.
https://youtu.be/M1-IG2DI4js?si=Bz8G8zIVWf9YJjM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