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 쓴다는 말에는 물질적인 것이 우선 떠오른다. 절약이 미덕인 시대의 사람. 당연히 절약하고 남과 나눠야 하고 저축해야 했다. 넉넉해도 과하면 안 되고 검약함이 몸에 베이면 더 좋은 일이었다.
물질에만 국한되던 그 개념이 이제는 몸과 마음의 기능에도 추가됐다. 아껴 써야 한다. 자발적이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어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
건강이 한정 자본이 됐다. 건강했을 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일이다. 눈이 잘 안 보여 병원을 찾으면 한 뭉치의 약봉지와 함께 ‘ 덜 쓰기’를 처방한다.귀에 바람 소리와 물소리가 드나드니 쉬라고 한다. 모든 소리로부터 멀리해서 ‘쉬기’를 처방한다. 다리가 문제가 생겨 고관절을 지나 대퇴부와 무릎을 훑어내리며 나을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머리가 부서질 듯하여 다시 병원을 찾으니 집에 있는 약을 또 처방하며 소화제까지 인심을 쓰며 ‘쓰지 않기’를 처방한다. 쉬고 덜 쓰고 보지 말고 듣지 말고 움직이지 않으면 좀 나아지려나…. 충치는 없는데 무너진 잇몸을 들여다보던 치과의사. 턱관절을 들여다보며 임플란트를 계획하던 큰 그림이 수포로 돌아갔다. 치아는 멀쩡하니 마구 뽑을 수도 없는 일이다.
돈도 물도 전기도 아껴 써야 한다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시간도 청력도 시력도 아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다 신경 써야 한다.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은 시간이다.
육체적인 건강도 한계를 이야기하고 더불어 마음의 건강도 그 끝을 드러낸다. 긍정도 부정도 모두 소소해져야 한다. 마음의 파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일도 견디기 힘든 체력이다. 내가 아닌 타인에 대한 원망도 불편한 감정도 안고 있을 여유가 없다. 빨리 잊고 늘 새로운 기운을 채워 넣어야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너그러이 떠나보내야 한다. 가능한 일에 마음을 더해야 한다. 그렇게 조금 넉넉하고 여유 있게 살아야 한다.
체력이 받쳐주질 않으니 하염없이 늘어놓을 수도 사들일 수도 없다. 내 관리안에 두려면 무엇이든 줄여야 한다. 소유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중이다.
줄이고 줄인다. 매일매일 숙제처럼 비우고 덜어낸다. 기억하지 못하는 정도의 물건은 이미 과한 삶이라 했다. 기억이 안 나서 또 사는 것들이 종종 있다. 줄여야 한다. 의식이 멀쩡한 동안에 단순함에 길들여져야 한다.
건사할 수 있는 생활반경, 그 안에 포함되는 것들을 명료하게 기억하는 일. 체력이 허락하는 움직임과 정서가 허락하는 인간관계.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우선되는 시간. 나이 듦의 시간이다.
https://youtu.be/olGSAVOkkTI?si=20l35HiVZMGnU13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