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하늘HaruHaneul Sep 25. 2024

수요일의 이야기/줄을 긋는다

그리고 지운다

컴퓨터의 새로고침은 편리한 기능이다. 했던 일을 없었던 일로 순간에 되돌려 놓는 일. 그런 기능 따위는 없던 시대에 더 익숙한 사람이다. 그러니 완벽 같은 건 바라지 않았다. 실수를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없던 시대를 살았으니 말이다. 얼마나 많이 오랜 시간 그 실수를 견뎌야 견고하고 안정된 반듯한 줄을 긋게 되는지 알고 있다. 그러니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일은 어렵다. 그러고 싶지 않다. 실수가 반복되어 만들어진 반듯한 줄. 마뜩지 않아도 선명한 한 줄을 위한 긴 시간을 보낸 지금이 좋다.


줄을 긋는다. 맨 손으로 줄을 반듯하게 그어 내려가려면 반복이 필요하다. 울근불근한 큰 근육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시간의 작은 속근육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하며 저절로 갖게 되는 최적화의 상태다. 섣불리 탐하거나 흉내를 낼 수도 없다. 견뎌낸 사람만이 가지는 정직한 결과물이다.


그냥 줄을 그어보자. 삐뚤삐뚤 제 마음대로 그어질 것이다. 지우고 다시 긋고 지우고 다시긋기를 얼마나 해야 반듯하게 할 수 있을까. 아기가 손에 무언가 쥐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 선긋기. 불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선긋기의 달인이 되기 전 자를 사용한다. 그마저도 처음엔 쉽지 않다. 곧 익숙해질 테고 반듯한 선이 만만 해질 것이다. 자를 대고 그은 선에 오만이 차오를 때 문득 맨손 긋기의 시간을 만나면 알게 되리라. 자에 의지해 과하게 뿜어내던 자신감이 홀로 서며 무너져 내림을 알게 되리라. 단정하고 반듯한 선긋기가 만만하지 않은 일임을....


선이 익숙해지고 자가 불편해질 때쯤이면 그냥도 줄을 긋는다. 커다란 운동장도 모래사장도 가뿐하게 줄을 긋는다. 그렇게 손과 팔의 어느 부분이 머리와 마음을 합쳐 적응해 간다. 적당한 속도가 만들어 내는 단단함이 보이는 그 한 줄.


반복하는 일이 주는 힘이다. 쓰지 않으면 제 자라로 가버리는 그 보이지 않는 힘. 무엇이든 해야 결과물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의 이야기다. 컴퓨터 안에서 선 긋기는 대단하다. 알아서 세팅된 기능이 줄을 맞추고 평행을 잡아주고 윗 줄과 질서를 맞춰준다. 마술에 버금가는 선 긋기다. 그런데 거저 주는 건 반갑지가 않다. 아니 귀하지가 않다. 그래서일까, 완벽에 대한 집착을 불러온다. 그럼에도 허기는 가시지 않는다.


손으로 줄을 긋던 시절의 사람은 아직도 그 선을 긋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다시 고치며 시간을 견딘다. 매끄럽지 못하고 순조롭지 않은 시간이 만들어 낸 오늘을 산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삐뚤어진 선을 고치고 튀어나온 곳을 매만지며 묶인 실타래를 풀듯 그렇게 자신을 달래며 산다.


반듯하고 단정한 줄 긋기를 자랑하려는 게 아니다. 무모하리만치 우직스럽게 견뎌온 불완전의 시간을 돌아보는 중이다. 그 불완전함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서두르는 대신 더 느리고 천천히 적당한 속도를 찾아가야 함을 깨닫는 중이다. 엉킴에는 인내가 기본이다. 이미 엉클어졌어도 굳이 바로해야 한다.


원하는 강도의 삶을 견인하는 속도와 반복의 적정함을 찾아내는 중이다. 모두 보이지 않는 형태니 자신과의 싸움이고 내면의 소란스러움이다. 나이가 들어도 실수와 실패와 어설픔은 감추고 싶음이다. 완벽할 수도 없는데 바라지도 않는데 그래도 반듯하게 한 줄 그어내려 보려는 중이다.


선을 긋는다. 다시 지운다. 흔적이 남는다. 다시 긋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단정한 선을 꿈꾸며 그렇게 오늘을 살아간다.






https://youtu.be/HAZJAzCshN4?si=94JEPk7XOuBSeDj_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