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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Sep 18. 2024

수요일의 이야기/미소 지을 수 있다면

누군가를 위한 마음

서울에서 벗어나는 일이 큰 일이었던 새댁이 경부고속도로 시작과 끝을 오가며 젊은 날을 보내고 이제는 며느리를 맞이할 나이가 됐다.


대가족의 시댁식구들은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셨지만 그 긴 여정은 언제나 도전이었다. 무뚝뚝한 남편이 고속도로를 접어들 때면 기분이 좋아 입가에 번지는 웃음을 보며 '고향'이라는 것을 떠올리곤 했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갖지 못한 그런 것, 고향에 대한 향수. 바다만 가까울 뿐 대도시는 매일반인데도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반가워라 했다.서울에서  학업을 마치고 직장을 다닌 남편에게  이미 살아온 날의 대부분을 타향에서 보냈음에도 미소 지을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진 곳이 고향이라는 이름의 그 곳인 모양이었다.


언제나 예상보다 길어지는 귀향길에 대비해서 도시락을 챙기고 아이의 용품을 챙기며 한 짐을 싣고 출발하던 그 길이다. 교통정체의 긴 행렬 사이 헬리콥터가 공중에 떠서 취재를 하고 손을 흔들어 주던 고향으로 가는 길. 아이가 자라며 짐이 단출해지고 자동차로 가던 길을 기차와 비행기를 번갈아 가며 오가던 그 길은 추억이 되었다.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그곳은 점점 멀어지고 근처의 산소에 다녀오는 일로 명절이 지나고 옛 추억을 떠올리는 일로 그 시간을 대신하고 있다.


산소 근처의 커다란 대추나무와 소울음소리, 옛 모습을 신식으로 바꾼 방앗간의 참기름 냄새와 떡을 찌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한적한 시골길을 떠올리는 일. 명절의 그림에 시부모님의 모습이 점점 더 희미해지는 걸 느낀다.


막내며느리는 시집살이도 없다. 그저 어른들 눈에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도 족한 안쓰러운 존재일 뿐. 좋은 날도 궂은날도 있었지만 퇴색되는 기억 속에 어머님의 마음은 그대로 남아 힘들 때마다 울림이 되어 온다. 진심이 느껴지던 그 목소리. "미안하다, 고맙다."..... 힘듦에 제법 익숙해진 나이인데도 그 말만큼은 잊히지 않은 채로 종종 들려온다. 무엇이 미안하고 무엇이 고마운지 모른 채로 말이다.


그 긴 여정의 끝에 어느 날 도색이 된 나들목의 도로가 나타났고 지친 길에 선명한 분홍색의 도색을 따라 시내로 접어들곤 했었다. 유도선이 낯선 곳을 익숙함으로 바꿔주고 환대를 느끼게 한다. 언제부터 생겨났는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한 기분 좋음과 혼동을 줄여 주는 배려를 느꼈다고 해야 하나?




고속도로의 유도선을 따라 낯선 길 나들목을 오가며 그렇게 세월이 갔다. 해가 져서 눈이 감길 때쯤 경기권에 접어들고 늦은 서울로 돌아온다. 친정으로 가는 길이며 귀경이다. 어둠 속에 앞서 가는 자동차의 후면에 붙여진 커다란 두 눈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자동차의 뒷모습이지만 귀엽고 큰 눈을 마주치는 일은 미소 짓게 한다.


마주하는 느낌을 갖게 하는 눈 맞춤. 눈만 맞췄을 뿐인데 미소도 지어지니 좋은 일이다. 명절의 큰 곡선이 꺾이는 지점에 친정식구들을 만나고 그렇게 연휴가 저문다.


따뜻한 한마디와 누군가의 세심한 배려와 두 눈을 마주하며 서로를 들여다보는 일, 명절이 아니더라도 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https://youtu.be/fuKEgOsw4EM?si=EpewWzXWDW0yC1g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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