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울렁이고 목이 메는 순간도 나이에 따라 변하는가 보다.
늦은 저녁 산책을 나섰다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행렬이 막 지나간 후다. 바삐 지나친 자전거의 뒷모습도 휴대폰 불빛에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는 아이들도 뭉클하지만 그들을 떠나보낸 후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두 여인이 휘적거리며 단지 내로 들어선다. 한 명은 이미 거나하게 취한 게 틀림없다. 무어라 하는 말들이 흩어지는데도 무슨 말인지 들리지 않는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다만 걷는 모습이 갈지 자다.
어릴 때는 주로 골목에서 마주치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모습이고 빌딩숲 대로변의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넓은 주거지에 아이들의 엄마로 보이는 여인이 술에 힘을 빌어 무어라 떠든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팔짱을 낀 채로 그녀와 같이 걷고 있는 동행은 그녀의 말을 받아주며 동과 동 사이 짙은 나무들 사이로 사라진다.
한여름 성난 빛에 타버린 때 이른 낙엽들이 여기저기 밟히는 그 사이 그녀가 울듯이 웃으며 자꾸만 중얼거린다. 등뒤로 들리는 소리가 왠지 서글프고 마음이 아리다.
아이들이 많은 동네에 살면 아이와 함께하는 가족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문 열린 소방서 앞에 넋을 놓은 꼬마 아이와 그 옆에 그 아이를 보고 있는 젊은 아버지. 어둠이 짙어지는 시간에 아이와 공을 들고 나서는 아버지, 형 같은 앳된 모습의 아버지와 아들, 엄마와 꼭 닮은 딸과 대화를 나누며 걷고 있는 엄마, 이모인지 언니인지 모를 외모의 엄마는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대화가 오간다. 키가 큰 아빠의 무등을 탄 환한 얼굴의 아이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엉덩이를 들썩이며 지나고 유모차를 바라보며 웃는 얼굴로 대화를 나누는 젊은 새댁, 유모차 안에는 다리를 한쪽에 걸친 채로 방글거리는 아기가 있다.
그 어느 순간에도 슬퍼서 목이 메이거나 마음이 울렁일 일은 없다. 오히려 그 아름다운 모습에 흐뭇하면 그만일 일이다. 그런데 문득 차오르는 감정이 주책임에 틀림없다. 이런 일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가 아는 그 길이 얼마나 힘겹게 접어드는 길이며 얼마나 긴 시간 애를 써야 하는 일인지 알아서일까?
문득문득 마주치는 평범하고 아름다은 일상이 종종 목울대를 친다. 이 길이 아니더라도 삶이 던져주는 모든 길은 고되다. 그럼에도 '당연함'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들의 속성이 이제야 서러운 건 '인정'의 범위에 들지 않아서였을까?
문득 그 '당연함'이라는, '평범함'이라는 것들이 생각보다 당연하지도 않으며 그리 쉬운 일이 아님에도 마치 누구나가 가능한 일로 치부해 버리는 생각의 오류를 알게 되서인지도 모르겠다. 좁디좁은 편견들이 부풀려 모두의 생각으로 변해버릴 때 그 편견의 틀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또 다른 배척의 대상이 된다. 그 어리석음이 파도처럼 밀려들 때 스스로를 돌아보며 우매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 어이없음이 자꾸 울컥이게 만드는 걸까?
후끈 달아오르며 맺힌 땀이 식을 때쯤 집으로 들어가는 현관의 불빛아래 문득 아까 마주친 그녀의 모습이 다시 아른거린다. 무엇이 그녀를 그렇게 취하게 만들었을까? 길을 걸으면서도 사그라들지 않는 그녀의 감정이 나를 끌어들인다.
평범 자체가 도전인 시대를 사는 아이들과 그 시간을 같이 견디는 부모들과 그 조차도 당연했던 시간들 사이 복잡한 감정들이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정리되지 않은 묘한 난제를 안고 뒤 끝이 무거운 울렁임을 안고 집으로 들어간다. 이런 날도 있다.
https://youtu.be/ulOb9gIGGd0?si=CCqyDCTHPPCbPC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