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하늘HaruHaneul Oct 16. 2024

수요일의 이야기/귀신이 무서워?

사람이 무섭지

언제였는지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 '귀신이 무서워? 사람이 무섭지!'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그 말이 이해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나이 많으신 노인의 독백으로 남아있다. 확실치 않다. 왜 저런 말을 하지?라는 의문이 사라져 갈 때쯤 세상은 조금 더 퍽퍽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다. 우연히 들른 전시회 작가의 작품에 낙서처럼 쓰여있던 말이 중첩된다. '사람이 싫다. 인간다운 것은 좋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다가설 수 없고 인류애만이 황폐해지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는데  본 적도 없는 정체불명의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존재가 된지 오래다. 이해하기 힘들고 가까이하기 어려운 그 거리가 하염없이 벌어지는 중이다. 부정이 긍정을 덮쳐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려는 희망을 꾹꾹 누르는 기분이다.


마주 보고 가까운 사이라면 전화통화는 물론이고 만나서 같이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 과거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 세대는 그리 살아왔지만 기사를 통해 종종 만나는 이 시대의 고민은 전화통화의 공포와 대면해서 하는 대화의 공포가 있다니 가끔 카페나 식당에서 보던 낯선 풍경이 이해가 된다. 같은 공간에서 마주하고 있으며 모두 핸드폰 문자를 주고받으며 대화를 하는 모습. 서로 무심한 건가 하는 호기심에 바라보던 광경의 배후에 그런 문화가 있음을 알게 됐다.


서로 간의 배려와 편의를 표현하는 방식의 차이를 느끼는 요즘. 타인에게 다가서는 일도 낯선 이가 다가오는 것에 대한 반응도 모두 변했다. 길 가다 눈을 마주치는 일도 조심스럽거니와 타인의 아이를 쓰다듬거나 애정을 표현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 존중해야 하는 타인과의 거리를 지켜야 하고 부모 자식 간에도 그 경계를 유지해야 한다. 이웃과 일가친지와 나누던 모호했던 경계가 분명해지며 편리해진 대신 마음의 거리는 좁혀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를 해주고 손을 잡아주던 그 온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덕분에 공동체의 힘은 느슨해지고 그 결과 개인의 불안은 커졌다. 의지할 곳 없이 모두 홀로서기를 원하는 사이 사람과 사람사이 따뜻함을 품었던 연대가 사라져 가고 있음을 느낀다. 아쉽다고 해야 하나 그립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런 마음이다. 그런 마음들이 온라인에서 자생하고 깊어지는 중인지 예전의 따스함을 종종 이곳에서 발견하곤 한다. 메타공간이라는 온라인의 세계로 과거의 온기가 들어와 미래의 언저리에 머물다니 재미있는 일이다.


살아온 날보다 돌아갈 날이 짧아도 아직 본 적 없는 귀신이 더 부담스러운 사람도 있다. 인간이 불편하지만 사람의 온기와 인류애가 그리워지는 날이다.



Somewhere Only We Know


I walked across an ampty land

I knew the pathway like the back of my hand

I felt the earth beneath my feet

Sat by the river and it made me complete

Oh simple thing where have you gone?.......


https://youtu.be/Oextk-If8HQ?si=es2B8h4aerc_2G01





이전 15화 수요일의 이야기/감정의 동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